2009. 11. 25. 09:26

D+274 071214 커피 농장에 가다, 안티구아.

호텔방이 좋으니 나가기가 싫다. TV로 영화나 보면서 뒹굴대고 싶은 것이다.
아침식사에 나온 건포도 식빵도 맛있었다. 2개 밖에 안 줘서 좀 부족하긴 했다.
오늘이 내 생일이기에 즉석 미역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고 있으니 종업원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참 분위기 좋은 호텔이었는데 왜 사진을 이것밖에 안 찍었을까?
10시나 되서 나가보았다. 식민지풍의 도시인데 돌이 깔린 길이 무척 울툴불퉁하다.
반쯤 무너진 듯한 건물.
스페인 식민지의 수도로 1543년에 건설된 도시로 전성기에는 인구가 6만명이 넘는 대도시였다.
1773년 대지진의 피해를 입어 수도가 과테말라시티로 옮겨졌고 1917년, 1978년에도 지진이 일어났었다고.
음, 그러니까 나는 지금 환태평양 지진대의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 무너진 교회, 건물의 폐허가 있고 이렇게 제대로 된 것도 물론 있다.

ATM을 찾아 국민 비자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려 했는데 안 된다. 당신 은행에서 지불하기를 거절했다는 메세지가 나온다.
어,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어제 인터넷으로 어메리칸 에어라인 결제한 것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파나하첼 ATM이 이상했던 걸까?
갑자기 무척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전세계 ATM 기계에서 돈을 인출했고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카드 결제를 했던 게 잘못된 걸까?
걱정해도 지금 해결할 수 없는 방법은 없지만 마음이 불안한 건 사실, 결국 다른 비자 카드를 사용해 돈을 뽑긴 했다.

투어 사무실에서 오늘 화산 투어와 내일 커피 농장 투어를 예약했다. 
활동하고 있는 화산(역시 환태평양 지진대)을 또 어디 가서 볼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와이너리 투어에는 관심이 없지만 커피는 어떻게 자라고 만들어지는지 궁금했기 때문.
시내 여기 저기를 걷다 누들 코리아 간판을 발견했다. 안티구아의 한국 음식점 얘기를 들었는데 위치를 확실히 몰라 갈 생각을 안 했는데 마침 눈에 띄이는 곳에 있었다.
배도 고프고 오늘이 생일이니 한국 음식 한 번 먹어줘야 할 것 같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젊은 여자가 주인인데 안티구아 온 지는 9달째, 식당을 인수한 지는 두 달 되었다고.
반찬은 총각김치 뿐이었지만 오랜만에 먹는 한국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내가 생일이라고 하니 한국인이 운엉하는 스페인어학원에서 한 달마다 열어주는 생일파티가 오늘인데 같이 가자고 한다.
한국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건 좀 어색하겠지만 생일인데 혼자 보내기도 그러니 같이 가야겠다.
안티구아는 외국인을 위한 스페인어 학교로 유명해 수 십 개의 사설 학원이 있고 여기서 스페인어 연수를 하고 출발하는 중남미 여행자도 많다고 한다. 나야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여기 도착했지만 말이다. 
오늘 가기로 했던 화산 투어를 내일로 미루고 커피 투어를 가기로 했다. 사실 생일 저녁을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화산을 오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파티에 갈 수 있으면 그게 더 좋다.

두 시에 커피 농장에서 차가 왔다. 멤버는 나 혼자 뿐, 운전사 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세 명은 농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커피 농장은 바로 옆 마을  산 뻴리뻬(San Felipe de Jesus)에 있었다.
입구부터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1890년대부터 커피를 키웠다는데 식민지 시대의 거대 농장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호텔, 레스토랑이 같이 있고 승마 등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과테말라에서 몇 년 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딸과 딸을 보러온 이태리인 부모와 같이 가이드 헤수스를 따라 농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커피 나무는 줄도 맞추지 않고 대충 심어져 있었다. 여자, 아이들이 커피를 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커피는 과일이다
-일꾼을 고용해 커피를 따는데 수확량에 따라 돈을 주기에 가족들이 다 동원된다.
-일꾼들은 오두막에서 공짜로 자고 요리할 수 있는 나무도 공짜로 주고 아플 때는 의사를 불러주기도 한다.
-한 달에 대략 600불 정도를 번다. 
현지인을 착취하는 대규모 커피 플랜테이션 얘기를 들었는데 여긴 그런 곳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커피 나무를 접목시키는 곳.
커피를 말리고 있다.
색깔이 짙은 게 거의 다 마른 것일까?
커피를 말릴 때도 15분마다 사람이 뒤집어 줘야 한단다.
여기서 그 향긋한 커피가 나온단 말이지?
발효도 시키고,
이건 어느 공정 중이었더라...?
커피는 무게, 크기, 색깔 등에 따라 분류하는데,
이렇게 물에 뜬 것은 쭉정이.
-분류하는 것만도 다섯 번의 과정을 거치는데 맨 나중에는 사람의 눈으로 골라낸다.
-물론 이건 고급 커피 얘기고 네스카페 같은데 보내는 커피는 수확도 기계로 하고 과정도 무척 간단하다.
-가장 고급 커피를 원하는 바이어는 한 자루의 커피에 5개의 쭉정이만 있어도 거부한다.
-그 나라는? 일본. 하지만 값을 많이 쳐준다.
-커피 맛을 잘 알기 위해서는 살짝 로스팅해야 하는데 스타벅스 같은 데서는 로스팅을 세게 해서 그냥 맛을 쓰게 만들어 버린다.
오, 똑똑한 가이드 헤수스 최고!
정말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한 잔의 커피가 탄생한다는 걸 알고 나니 앞으로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왠지 미안해질 것 같다.
제뉴인 안티구아(Genuine Antigua)커피, 한 봉 사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투어의 마지막은 이 곳에서 수확한 커피 한 잔, 정말 맛있었다.  이 커피 한 잔을 위해 쏟았을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생각나서 더 그럴 수도 있고.

이태리인 부모는 이 먼 곳에서 몇 년이나 일하고 있는 딸이 무척 안스러운 것 같았다. 벌써 두 번째 딸을 방문하고 있다고.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하니 모두 축하해주었다.
헤수스가 나를 데려다주며 한국어로 자기 이름을 써달란다. 
-올해 들어 한국인 투어 참가자는 네가 두 번째인 것 같아.
-그것 밖에 안 왔어? 안티구아에 한국인 많이 온다는데 왜 그럴까? 어쨌던 너는 좋은 가이드였어(One of the best).
커피에 대해 많이 배운 유익한 투어였다.

좀 쉬다가 7시쯤 누들 코리아에 갔다. 7시 20분쯤 가게 문을 닫고 간다고 했기 때문. 
그런데 벌써  문이 닫혀있다. 내가 투어 스케줄을 못 바꿔 오지 못할지도 모르니 기다리지는 말라고 했는데 그냥 가버렸나 보다.
오늘 내 생일인데...갑자기 외로움이 훅 밀려온다.
중앙 광장에 가니 종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도 이런 연주를 하는 구나.
좀 구경하다 맥주 한 병 사가지고 들어와 푹신한 침대에서 TV 영화 이것저것 보다가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