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0. 23:56

두 번의 저녁식사

아까 구경왔던 아줌마가 닥터 Key의 손을 잡아끈다. 뭐라는 건지 알수는 없지만 이 어수선한 학교에서 언제 될 지 모르는 저녁밥을 기다리기보다는 나을 것 같아 나도 아줌마를 따라 나섰다.

벌써 주변은 어두워져 손전등 없이는 걷기도 어려웠다. 진짜 칠흙 같은 어둠이었다.

어떤 집으로 들어가니 바닥은 흙바닥, 밥을 하는 모닥불이 주변을 밝혀주고 있었다. 나무로 된 동그란 의자를 권하며 불빛으로 다가앉으라고 한다.

차가운 시골 소년 막내 아들, 뭐라 말을 걸어도 눈길 하나 안 준다.

어둠 속에서 다른 아줌마가  닭 두 마리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저게 아마 우리의 저녁 식사 거리인 듯, 지금 닭 잡으면 언제 먹지?

나무로 벽을 세운 침실 같은 공간이 있고 나머지는 부엌, 거실 겸용이다. 나무로 요리를 하기에 공기가 매캐하다. 저녁이라 많이 쌀쌀해져 저절로 불 가까이 다가앉게 된다.

강아지들도 불 가까이로.

자리를 옮겨 앉아도 시크한 소년.

몇 십 번, 몇 백 번 밥을 했을 솥단지.

벽에는 부적 같은 게 붙어있다. 라오스 사람들 대부분 불교를 믿지만 토속신앙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밥이 다 된 것 같은ㄷ데 아까 아줌마가 오더니 솥단지쨰로 들고 간다. 아, 저것도 우리 일행 주려고 한 거였구나.

아줌마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채소를 다듬어 국을 끓이더나 맛을 보고 모닥불 위 나무 기둥에서 미원을 꺼낸다. 닥터 Key가 넣지 말라고 완곡하게 표현을 했다. 라오스에는 미원(라오스 말로 뺑누아, ajimoto라고 부르는데 일본 어원인 것 같다)이 대표적인 조미료로 널리 퍼져 있다. 모든 맛있는 국물맛은 미원 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산골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니 대단.

미원을 포기해 아줌마는 좀 아쉬운 눈치였지만 곧 밥상을 차린다.

이게 진짜 시골의 밥상, 고무 다라에 담긴 찬밥, 채소국, 소금으로 간한 죽순 무침, 뜨거운 물.

- 자, 우리는 이걸 먹어야 돼, 우선 숟가락을 뜨거운 물로 소독하고...

닥터 Key의 말.

채소국은 미원이 안 들어갔어도 향이 구수했고 죽순 무침은 좀 짰지만 먹을만 했다. 아줌마는 숟가락을 내려놓지 마자 구석의 나무 침대 위의 물건을 치우면 우리 잠자리를 준비해 준다. 컵짜이, 컵짜이 라이라이~(많이 고마워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보러 다시 나왔다. 이장님댁에 가보니 저녁 먹을 준비가 한창이다.

아까 닭은 이렇게 형체도 없이 요리로 변해 있었다.

닭고기와 밥, 국, 우리 일행이 가져간 김치로 차려진 밥상.

모두 먹는데 열중, 이장님이 어디선가 석유통 같은 걸 들고 오더니 단 두 개 있는 술잔을 채운다. 꼭 두 잔씩 원샷하도록 술잔을 돌린다. 중국술 비슷한 향의 라오라오는 독하다. 두 잔씩 몇 바퀴 도니 정신이 없다.  

아까 밥 먹었지만 또 먹는 중, 김자반에 비빈 밥이 맛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여자들을 끌고 나와서 아까 친절한 아줌마 집으로 갔다. 침낭이 없는 두 명(라오인)은 침대에서, 나머지 네 명(한국인)은 바닥에 침낭에 들어가 누웠다. 아줌마가 방수포를 깔아줘서 축축한 건 덜했는데 땅의 딱딱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술 안 먹었으면 바닥이 더 딱딱했겠지?

잠들었다 깨니 주변이 정말 캄캄한데 주인 아줌마는 벌써 일어나 불을 피우고 있다. 아랫배는 빵빵해져 오는데  어두운 게 나을 것 같아 헤드라이트 갖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사람들 눈에 안 띌까? 하긴 이렇게 캄캄해서 내 발도 잘 안보이니 어딘들 안 괜찮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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