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5. 09:22

D+181 070912 남아메리카에 발을 딛다.마드리드-리마 이동

다시 D+1 이라고 쓰고 싶다.
마드리드에서 20일 넘게 쉬고 나니(중간에 짧은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정착민의 마음이 되어버려 떠나기가 싫다.  
스페인어 공부도 못하고 남미 공부도 안 하고 짐 정리도 제대로 못했으니 더 그렇다.
하지만 가기로 정해 놓은 길이니 가야지. 떠나면 또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그동안 밥해준 오빠, 고마워. 그래도 내가 설겆이는 잘 했쟎아?
마드리드 신공항 표지판. 게이트까지 가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비행기는 한 시가 넘어 출발했다.
단체 관광객인지 중년의 백인들이 꽉 차 있었고 중간중간 페루인인 듯한 가무잡잡한 얼굴들이 끼어 있었다.
12시간이 걸리는 비행인데 동쪽으로 계속 낮을 따라 가고 있다.
옆의 페루비언 여자가 말을 걸어왔으나 의사소통이 안 되었다. 역시 스페인어를 배웠어야 해...
마드리드 시간으로 새벽 한 시, 페루 시간으로 오후 6시 리마 공항에 닿았다.
또 새로운 대륙,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다. 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입국 심사대 아저씨는 친절했다. Corea del Norte(북한)에서 왔냐고 농담을 던진다. 아니요, Corea del Sur(남한)인데요.
여권을 뒤적거리더니 여행 많이 한다고 Muy bien, boram 한다. 잘 하고 있다고요? 내 스페인어는 거기까지.
수많은 국경을 지나왔지만 이렇게 여유있는 관리는 처음 만난다. 페루에 대한 첫인상은 아주 좋다, Muy bien.
인터넷으로 호스텔을 예약하며 공항 픽업 서비스를 부탁해 두었다. 낯선 도시에 저녁에 떨어지니  좀 겁나서.
어, 저기 내 이름 적혀 있다. 아저씨는 내 배낭이 든 카트를 밀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택시 마크가 없는 일반 승용차, 붕~소리가 크게 나는 차였다.
ATM 에 세워 달랬더니 주유소 안의 ATM 앞에 세운다. 길가의 현금 지급기는 위험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보았다.
페루 돈  Sol(태양이라는 뜻)과 달러가 같이 뽑힌다.

40분 달려서 미라 플로레스 지구에 도착.
길은 넓은 데 가로등이 거의 없어 캄캄하다. 카지노인 듯한 건물의 조명만 화려하다.
온도는 한 10도 되려나, 싸늘하다. 또 6시 반인데 이렇게 캄캄하다니 이제 나를 따라다니던 6개월간의 여름은 끝났다.
긴긴 밤, 심심해서 어쩌나.

Home Peru 호스텔은 방갈로 같은 단층 건물. 리셉션의 여자와 젊은 남자는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라도 하듯 아주 친절했다. 방도 깨끗했는데 난방 시설이 없어 춥고 갓 칠한 페인트 냄새가 났다.
추운데 샤워하고(다행히 뜨거운 물이 잘 나와주었다) 현지 시간 저녁 8시부터 잤다.
중간에 추워서 다시 일어나 양말 신고 옷 한 벌 더 입고 잤다. 낯선 추위, 한국의 겨울처럼 쨍한 추위가 아니라 뼛속으로 스물스물 기어드는 한기,  앞으로 익숙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