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9. 23:22

D+48 070502 wed 킬리만자로 셋째날, 키보 헛 9.26km, 4700미터

물에 빠져서 꼴깍대는 느낌이 이럴까? 자려고 누워 있으면 숨이 안 쉬어지고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내 심장과 폐는 잘 움직이고 있는 걸까?
키보 헛까지 9.26 km 를 가야 하고 오늘밤 우후루에 오를 예정.
풍경은 무어랜드에서 점점 사막으로 변해 간다. 낮은 경사인데도 걷기가 많이 힘들다.
우후루 아래까지는 경사가 급하지 않은데 막상 저 봉우리를 올라가려면 힘들것 같다. 지금도 힘든데...
마지막 물이 있는 지점. 포터와 요리사는 여기서 물을 떠 간다.
잠깐 쉬는 시간, 킬리만자로를 수십번 올랐다는 가이드 존도 고산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제 므완자 봉이 옆에 있다.

내려오는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산을 많이 타보신 분 같은데 킬리만자로가 아주 짜증나는 산이란다. 결코 쉬운 산도 아니고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단다.
여기는 헬기 구조를 안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으면 가이드에게 빨리 얘기하라고 겁 잔뜩 주고 가버렸다.
이 아저씨와 일행인 또 다른 아저씨, 길만포인트까지도 못 올라갔다고, 정말 힘들다고.
정상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중요하고 몸이 중요하니까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하고 가버렸다.
여자 한 분까지 셋이 일행인 것 같은데 모두 수건을 둘러쓰고 우산을 쓰고 있었다.
고도가 높으니 햇볕이 강해 좋은 생각인 것 같긴 한데...
이 일행을 만난 이후로 숨이 더 차고 한걸음 한걸음이 더 멀게만 느껴졌다.
봉우리가 더 가까이 보인다. 아프리카의 만년설, 킬리만자로.
이제 정말 사막이네.
뒤를 둘아보니 므완자 봉도 구름에 덮여 있다.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내려오고 있다. 모두 발걸음도 가볍고 즐거운 표정들이다. 나도 내일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그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어디가나 사람 많은 건 싫다.
나랑 같이 올라가는 사람들은 아만다, 신디, 스페인 남자, 중국인 2명이다.
8시 반에 출발해서 2시에 4700미터의 키보 헛에 도착했다. 마지막 언덕은 건물이 눈앞에 바로 보이는데도 너무 너무 힘들었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친구는 여기서 바로 우후루에 올라갔다 내려왔다던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지 이해가 안 된다.
난 그저 주저 앉거나 눕고 싶은 심정 뿐이다.
키보 헛은 군대 바라크 같은 건물에 도미토리 형식이었다. 10개 침대 있는 방에 나 혼자다.
우선 좀 쉬고 이른 저녁을 먹고 초저녁에 잠을 잔 후 12시에 등반을 시작해서 내일 아침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스케줄이다.
물이 없어서인지 씻으라고 더운물도 안 갖다 준다.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 침낭안에 들어가 그 위에 이불을 덮어도 덜덜 떨린다.
하여간 돈내고 이 고생을 왜하나 싶다.
잠깐 눈을 붙였나, 5시 반에 밥먹으라고 깨운다.
스파게티와 수프, 그리고 진라면 젓가락!!! 저 젓가락, 아까 테이블 위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 한국인들이 남겨놓은 것 같다.
존에게 젓가락을 보고 한국 국수가 먹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그러자 젓가락을 챙겨다 준 것이다.
배려가 고맙고, 많이 먹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 젓가락질을 한 것만으로 위안을 삼자.
먹을 수 있는 음식 발견, 파인애플이다. 더 없냐고 물어봤더니 호롱보헛에 남겨두고 왔단다.
아, 이렇게 에너지가 없이 더 오를 수 있을까? 그런데 조금 있으니 요리사가 두 조각을 더 갖다 주었다. 다른 요리사에게 빌어왔나?
정말 고마웠다. 이제 우후루 정도는 쉽게 오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