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9. 13:00

고령화가족,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아웃라이어


오랜만에 아무 일이 없었던 주말, 매일 에어콘 바람 밑에 있다보니 바깥 세상이 이렇게 더운 줄 몰랐다.
케이블 티비에서는 지루한 영화만 틀어대고 노트북은 쿨러가 끊임없이 돌아가는데도 금방 열을 받으니 하는 수 없이 독서 삼매경.

천명관 <고령화가족>
큰아들은 전과자, 작은 아들은 실패한 영화감독에 백수, 막내딸은 이혼녀에 까페 경영, 날라리 손녀딸.
이들이 신도시 변두리 오래된 연립주택의 엄마집으로 기어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생생한 묘사에 가끔 빵빵 터뜨려주는 유머에, 오랜만에 만나는 술술 잘 읽히는 한국 소설.
결국 모두 나름대로 살 길을 찾아 행복해졌다는 해피엔딩.
이런 책을 쓰는 이유는? 읽는 이유는?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사람들 말고 정말 나처럼, 나보다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한 번 잘 살아봐야겠다, 는 교훈을 주는 것?
뭐 심각하게 교훈 같은 거 찾지 말고 재밌으니까 됐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 <고래>도 읽어봐야겠다.

릭 폴리에<나우루공화국의 비극.Nauru, l'ile devastee>
나우루는 태평양 한가운데, 21㎦의 작은 섬나라, 인구는 9000명.
이 작은 섬에 태평양을 건너던 철새들이 흘리고 간 '새똥'이 산호에 섞여 화석화 된 '구아노'가 풍부했고 이것은  천연 비료를 만드는 인산염의 주 원료이다.
인산염 채굴을 둘러싼 서구 열강들의 각축의 역사에서부터 인산염이 가져다 준 엄청난 부를 흥청망청 써대는 정부와 국민들의 이야기가 불안하게 펼쳐진다.
인산염이 고갈되면서 나중에는 난민자 수용소로 땅을 빌려주고, 돈세탁을 하는 유령 은행을 만드는 등 안간힘을 쓰다가 먹을 것이 없어 낚시로 연명하는 시대로 끝맺음한다.
하지만 아직 나우루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인구의 78%가 비만으로 고생하고 당뇨병의 유병률도 굉장히 높은데 기름이 없어 걸어다니고 낚시를 하러 다니며 이런 상황이 좋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인산염 채굴도 다시 시작되고 있으니 말이다. 
물질적인 안락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점점 풍요로워지는 세상에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 지 한 나라의 흥망의 역사를 통해 돌아보게 된다.

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적도의 침묵>이 떠올랐는데...
해양사, 문화사, 고고학, 인류학 등 다방면에 관심있는 저자가 우리나라가 보유한 유일한 대양탐사선 온누리호를 타고 태평양의 섬 탐사를 떠난다.
하와이 이민사에서부터 시작해서 폴리네시아, 마샬 군도 등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책인데 아주 특이한 형식이면서 재밌다. 사진 그림도 많다.
3만 6천원이라는 거금의 책인데 관심있는 분은 도서관에서 빌어 읽으시길...
김영사가 상업적인 책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이런 책도 출판하다니 다시 보게 되었다.






티핑 포인트, 블링크 등으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아웃라이어>.
이 사람의 책은 모두들 이미 알고 있으나 설명할 수 없었던 일을 여러 분석을 통해 보여주는 데, 그게 핵심을 찌르기에 잘 팔린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믿었던 것처럼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
노력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
성공하는데는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환경, 주어지는 기회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좀더 동등한 기회를 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
인상깊었던 것은 한국이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 지를 나타내는 권력간격지수(PDI:Power Distane Index) 세계 2위라는 것. 이런 이유로 조종실 안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비행기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단다.
레지던트 때 연차가 올라가서 아랫년차의 콜을 받게 될 때 항상 맨 처음에 했던 말이 '모르는 게 있으면 무조건 콜해라, 네가 그것도 모르냐고 한소리 듣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만히 있어서 환자가 나빠지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였는데,  잠결에 전화 받고 버럭 화를 낸 적이 없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예의는 지키되 자유롭게 의견교환을 할 수 있어야 좀더 효율적이고 스트레스 적은  사회가 될 것 같다.
아, 아직 논문이 별로 진척이 없다고 어떻게 교수님한테 말씀드리지?

이렇게 주말이 가 버렸다. 써놓고 보니 보람있게 보낸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