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6. 19:38

싱글이 긴긴 연휴를 보내는 방법

설연휴가 닷새나 되길래 여행을 갈까 하고 석 달전에 호치민 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알고보니 베트남에서도 음력설이 큰 명절이란다. 작년 설에 대만 갔다가 재미없었던 기억이 나서 미련없이 예약을 취소하였다.
그래서 연휴에 한 일.

샤갈전, 서울 시립 미술관 12000원.
6시 이후 야간입장이 한가하고 입장료도 2천원 할인해 준다기에 설 전날 6시에 갔다.
그래도 관람객이 꽤 있더라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던 것
이번 전시에서 미는 그림 <마을 위에서>, 러시아 트레차야코프 갤러리에서 왔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화가는 그 순간 얼마나 행복했을까!
<푸른 집> 러시아의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파란집이 하나 서 있다.
파란 집에서 행복한 삶을 꿈꿨던 샤갈은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 정착했다. 50년이 지나 러시아를 방문했으나 고향인 비테프스크에는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번 샤갈전보다는 규모가 좀 작은 것 같았지만 소품부터 대작까지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였다.
시립미술관 정원은 아직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연휴는 나흘이나 남았다, 얏호~!

설날 관악산 등반.
과천 쪽으로 올라가는 길, 날씨가 많이 풀렸지만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개울은 아직 녹으려면 멀었다.
관악산에 케이블카가 있었나? 관광용이 아니라 송전탑을 오가는 업무용.
이런 계단은 전에 분명 없었던 것 같은데...요즘 산에 가보면 거의 이런 설치물들이 있다. 등산하기가 쉽고, 환경 파괴도 덜하겠지만 흙을 밝고 걷는 등산의 재미는 좀 줄어든 것 같다.
산 아래속은 눈이 거의 다 녹았는데 올라갈수록 온통 눈길이다. 아이젠 같은 건 안 갖고 있는데 이거 올라갔다 못 내려오는 건 아닐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
연주암이 보이는 곳에 전망대도 생겼다. 거의 5-6년만에 온 것이니 새로운 것이 많다.
오늘은 구름이 짙어 과천도, 서울도 안 보이고 송전탑만 눈에 들어온다.
어, 이런 표석도 전에 없었던 것 같은데, 관악산이 629m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겁도 없이 겨울산에 오르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는 듯, 정상에 '아이젠 10000원' 팻말이 보여 얼른 샀다.
아이젠 없었으면 이 길 절대로 못 내려갔을 것 같다. 겨울산, 역시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서울대 쪽으로 내려와 고시촌에 가 보았다.
예전에는 하숙집, 주택만 있던 컴컴한 골목이 번화가로 변해 있었다. 불이 꺼진 상점도 있었지만 설에 집에 안 간 고시생들인지 거리에 오가는 젊은 사람도 정말 많다. 여기 걷고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나라 오무쓰비' , 자판기에서 티켓을 뽑는 일본식 음식점.
일본 소설을 읽으며 먹고 싶었던 돈까스와 카레를 한 방에 해결하였다.
한 집 걸러 까페이다시피 한 골목이라 커피 값도 정말 싸다. 위의 것이 다 합쳐서 5천원.
이제는 보기 힘든 비디오 대여점, 서점에 싸고 맛있는 음식점, 까페까지, 갑자기 고시촌 가까운 데 살고 싶어졌다.

훈데르트바서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 15000원.
훈데르트바서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공중에서 보면 초록색밖에 보이지 않게 설계한 온천휴양단지.
<함께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 실크 스크린.
그림 뿐만 아니라 태피스트리, 건축 모형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전시품이 많았는데 만 5천원이라는 가격은 조금 비싼 것 같았다.나와서 엽서를 두 장 골랐는데(독일에서 제작된 아주 빳빳한 엽서였다) 만 원이란다!!! 대도록이 3만원인데...암전히 내려놓고 돌아나왔다.

집에서 빈둥대기.
누워있다가,
앉아있다가, TV 보다가, 책도 읽고.
오쿠다 히데오<올림픽의 몸값>
1964년 도쿄 올림픽 직전 애국심으로 넘쳐나던 도쿄를 배경으로 올림픽을 인질로 폭탄을 터뜨리는 시골 출신 엘리트 청년의 이야기이다. 
일본도 그 당시에는 이랬구나, 우리도 88올림픽 전에 그랬겠지, 중국도 북경 올림픽 전에...? 
일본의 관료주의, 학벌주의, 계급차이 등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당시를 세세히 복원해 가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세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구성도 완벽하게 짜여져 있어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재밌는 소설이었다. 
도서관에 빌린 책은 겉표지가 없어 표지가 이런 줄 몰랐다. 사실 심각하다기보다는 웃긴 이야기다.




밀레니엄 시리즈 두번째 편 <The girl who played with fire>

시리즈의 첫번째 책, <The girl with the dragon tatoo>가 너무 재밌어서 잔뜩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으나 2권은 그것보다는 재미가 훨씬 덜했다.
1권은 한 곳을 항해 달려가는 집중력이 있었는데 2권은 얘기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고 등장인물도 너무 많이 등장해 나중에는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조차 헷갈렸다. 리스베스 살란더는 점점 더 멋진 캐릭터가 되는데 마이클 블롬비스트는 별 발전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1권을 멋지게 마무리한 작가이니 연속된 시리즈에서 또 뭔가를 보여줄 것 같은데 계획된 10권을 다 쓰지 못하고 3권까지 쓰고 죽었으니 그저 흐지부지될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게 연휴가 끝났다. 집에 있었지만 여행하는 기분으로 잘 지냈는데 여름 휴가까지 긴긴 세월을 어떻게 견디지? 석 달 일하고 2주일 놀고, 또는 6개월 일하고 한 달 놀고, 그런 직장 어디 없을까?

'하루하루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문오름 트레킹  (14) 2011.03.30
카페 물고기, 새연교, 제주  (13) 2011.03.23
2/19 제주 가다  (23) 2011.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