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1. 22:54

D+140 070802 쿠사다시에서 빈둥대기

오늘 그리스로 넘어갈까 했는데 어제 너무 잘 놀아서 하루 더 여기서 놀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섬에서 놀 시간은 없고 아테네만 보고 헬싱키 가는데 이미 유적은 질려버려서 아테네는 하루로 충분할 것 같다.

피오나는 오늘 파묵칼레로 떠나서 나랑 또 한 명의 타이완 여자애랑 2인용 방으로 또 옮겼다.
이 호텔이 분위기도 좋고 데니스도 친절한데 예약 시스템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예약이 꽉 차 있어도 직접 오면 다 받아주니 방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점심은 케밥.
집 안은 시원할 것 같다.
나를 보고 있는 거야?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데니스.
나는 일기를 쓰고, 한국에 보낼 엽서를 쓰고,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쓴다.
청소부 아줌마 딸, 귀여운 척 대마왕이다. 실제로도 귀엽고. 
한글이 되는 인터넷 까페를  찾아내 블로그를 업데이트 하느라고 오후가 다 가버렸다.

저녁에 미국, 호주, 남아공 출신이라는 여자애 네 명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주인 아저씨가 와인을 샀다. 꼬셔서 투어를 하게 하려는 목적 같은데...나랑 데니스, 퍽킹 베니는 꼽사리.
그런데 이 네이티브 스피커 네 명이 자기네들끼리만 애기를 하는 것이다.
남아공 친구한테 내가 케이프타운 가봤다고 얘기했더니 'beautiful'하고 끝이다.
베니와 데니스가 터키어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얘네들 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는  데니스가 왜 너희들끼리만 대화하냐고, 같이 얘기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미국 여자애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터키 대통령 부인이 covered girl(히잡을 쓰고 있다는 얘기)아니냐고 했다.
결국 데니스랑 열띤 논쟁이 붙었다. 나는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와인이 떨어지고 네 명의 여자애는 바에 간다고 가버렸다.
데니스와 베니가 얘기하는데 미국은 자기네가 세계를 지배하는 줄 안다고, 거만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스물 몇 살 짜리가 터키 정치에 대해 알긴 뭐 아냐고 비꼰다.
그런 애들 열 명 있으면 나(!) 같은 애 한 명 있단다. 어, 비행기 너무 높이 올라가는데...떨어지겠는데...

이제 두 달간 여행한 중동을 떠난다.
무슬림들의 세계에서 짜증났던 때도 많이 있었지만 그만큼 그들의 친절함에 감동한 적도 많았다.
밖에서만 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지 말 것, 모든 사람에게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음을 인정할 것, 그걸 배웠다.
케밥, 어디 가도 대접받는 차, 담백한 아에시, 나를 쫓아오던 아이들, 이런 것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