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 00:12

D+155 070817 크렘린에 가다

모스크바는 지하철로 어디든 갈 수 있다. 상트에서는 걸어다니느라고 무지 힘들었는데 모스크바에서는 지하철 애용.
참고로 러시아 지하철 노선도.
9호선까지 있으니 뭐 우리나라 서울이랑 비슷한 수준.
1935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니 워낙 오래되어서 갈아타고 이런 게 좀 힘들긴 하다.
하루에 9백만명이 이용하는데 이건 런던, 뉴욕 승객을 합친 것보다 많다.
초기에는 폭탄에 대비하기 위해 역을 깊은 곳에 만들었는데 어차피 핵폭탄은 막을 수 없기에 새로운 역은 깊지 않다.

연결되어 있는 역인데 이름이 다른 곳이 많아 가끔 헷갈린다.
Alexandria 어쩌구 역에서 내렸는데 나와보니 bibliotheca 어쩌구이다.
그래서 이건 러시아 국립 도서관.
세계 어느 곳에서도 피해 갈 수 없는 삼성 광고판.
이 도서관에는 2천만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고. 얼마인지 감이 잘 안 오지만. 도스토예프스키 동상.
언제나 그렇듯, 가는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가보면 사람이 많다. 이 사람들은 다 어떤 길을 통해서 온 거란 말이냐.
표를 사는데도 줄을 서야 하고 입장할 때도 서고. 내 앞, 뒤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 50루블.
Trinity gate tower를 통해 들어간다.
성벽 모습.

크렘린은 러시아 정치의 주요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러시아 교회의 본산이다.
그래서 들어가자 마자 만날 수 있는 건,
황금빛 돔이 빛나는 성당들이다.
다양한 모양의 돔과 꼭대기의 장식물.
20세기를 빛낸 까르띠에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도 있었는데,
평생 볼 보석을 여기서 다 본 것 같다.
그 외 크렘린 안에서 볼 것은,
잘 가꾸어진 화단들,
사과나무도 있고,
태극 모양의 화단도 있다.
그 외 황제의 궁전과 의회 건물등이 있다.
성벽의 탑 위에는 원래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 상이 있었는데 1935년 스탈린이 빨간 유리로 만든 별로 교체했다고.
여기까지,크렘린이라는 단어의 이미지와는 다른 곳, 진짜 크렘린이었다.
성벽 밖으로 나오니 여기도 웨딩 촬영,
시원하게 물을 뿜어올리는 분수.
역사 박물관,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붉은 광장.
어디가나 관광객으로 붐빈다.
1877년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초연됐던 볼쇼이 극장, 지금은 수리중.
어제 같은 방 친구들이 보고 왔다던 발레 공연을 하는 볼쇼이 옆 작은 극장.
오늘 저녁 공연, 호두까기 제일 싼 표 350루블 주고 샀다.
표를 사고 다시 붉은 광장을 보러 가려 했는데 길 건너기가 너무 힘들어(200미터쯤 돌아가야 했다) 충동적으로 트레차야코프(Tretyakov)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레닌 무덤도 오후에는 안 여니까 내일 오전에 가는 것이 낫겠다.
모스크바는 지하철을 타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조명이 어둡지만 운치 있다.
뜨레차야코프 미술관은 시설 면에서는 에르미타쥐나 러시아 뮤지엄보다 좋았다. 단체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19,20세기 러시아 민중의 삶을 보여주는 그림은 좋았다. 그런데 엽서가 없어 지금은 무얼 봤나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때가 되어 발레를 보러 갔다.
극장이 작아서 제일 싼 표라도 무대가 잘 보인다.
역시 여름 시즌이라 2군들의 공연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뭔가 잘 안 맞는다는 인상.
잘 하는 발레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발레는 뭔가 인위적인 느낌이어서 내 취향은 아니니 러시아에서 발레를 봤다는 걸로 만족.

9시 반에 돌아오니 조용하던 호스텔이 북적북적한다.
남자 방이 다 찼는지 원래 여자 도미토리인 우리 방에 남자 두 명이 들어와 있다.
리셉션 가이가 부르더니 커플이 왔는데 남자 방에 자리가 없어서 그 방을 써도 괜찮으냐고 묻는다. 사실상의 사후 통보.
-상관 없어요, 그들이 섹스를 하지 않는다면요.
-아, 그건 걱정말아요. 그들은 하지 않을 거에요(They won't )
-네? 그들이 원한다구요?(They want?)
-아니, 안 할 거라구요.(They won't)
헷갈린다, 영어 발음.

책장에서 해리 포터 7번째, 마지막 이야기, <Harry potter and Deathly Hallows>하드 커버를 발견했다.
호스텔 책장은 대개 책을 교환하는 의미로 읽은 책을 두고 가거나 가져가는 곳.
이게 웬 땡이냐, 안 그래도 읽고 싶었는데, 이런 따끈따끈한 책을 발견하다니.
바로 가방에 챙겼다. 여행 중간이면 무거워서 포기했겠지만 이제 오빠네 가니 문제 없고. 역시 난 운이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