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3. 11:42

D+177 070908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 가는  버스는 아침 9시 출발.
아침의 시청 모습. 포르투, 웬지 떠나기 아쉽다.
숙소 아저씨가 가르쳐 준대로 버스 타러 가는 길. 공사중인 곳이 많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스팔트로 쫘악 깔아버릴 텐데 예전 모습 그대로 돌로 포장하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 사람이 없다.
어제 놀던 곳과는 반대쪽에 이런 보행자 전용거리도 있다. 바닥의 물결무늬가 아름답다.

산티아고 가는 버스는 열 명 남짓의 승객을 태우고 국경을 넘는다.
국경 사무소도 없고 멈추지도 않기에 스페인에 들어왔다는 것은 엘 코르테 잉글레스 간판으로 알았다.
네 시간 걸려 산티아고 도착.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종착지.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북부 지방을 따라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곱이 묻혀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800km의 순례길이다.
900년전 순례자들이 처음 걷던 이 길을 지금은 해마다 50만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걷는다.
나는 도보여행은 나중으로 미루고 그냥 분위기를 느껴볼까 하고 온 것.
오후 두 시, 오늘 밤 마드리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지도를 한 장 얻어 까떼드랄 쪽을 향했다.
민호네 집.
표지판이 나타났다.
오후 두 시의 스페인 도시답게 거리가 텅 비어 있는데 중심가로 다가갈수록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스틱을 들고 교통 정리 중인 아저씨.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은 시원한 스페인의 오후.
좁은 골목이 끝나자 큰 건물이 나타난다. 까떼드랄 가까이 온 것.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상징인 조개껍질을 배낭에 메고 걷고 있는 커플.
그리고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까떼드랄과 광장, 그냥 봐도 멋진데 한 달 여를 걸어 여기 도착한 사람들은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 배가 고파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우선 밥 좀 먹고 다시 오자.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 오늘의 요리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계란 후라이는 왜 나온 거지?
그리고 다시 걷는다.
진짜 사람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여름날에 빠질 수 없는 분수.
이건 무슨 호텔이었다.
다시 까떼드랄 앞에 섰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늦은 오후, 까미노를 끝내고 도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
이 분은 좀 늦으셨네.
걸어온 사람들, 바닥에 키스하고 서로 껴안고 감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갑자기, 나도 까미노가 하고 싶어졌다. 한 달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
몇 년 후가 될 지 모르겠지만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충만한 상태로 다시 이 광장에 서고 싶다.

돌아가는 길..
체 게바라는 어디에서나 영웅.
까떼드랄과 광장을 벗어나면 조용한 소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올 때와는 다른 길로 가려고 하니 또 언덕이다.
멀리 보이는 까떼드랄 모습, 저녁이 되자 바람이 무척 시원하다. 이제 스페인에도 가을이 오는가 싶다.
단체 자전거 순례를 하고 온 사람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9시 30분 마드리드행, 39유로, 59번이라니 거의 버스 못 탈 뻔 했구나.
버스는 만석, 맨 뒷자리, 내 옆의 남자가 스탬프 잔뜩 찍힌 종이를 보고 있다. 까미노 기점마다 스탬프를 찍어준다더니.
-까미노 한 거에요?
-9일동안 자전거로 일주했어요.
-와우, 어메이징, 판타스틱, 그레이트!!!
-땡큐.
끝. 원래 이 정도면 대화가 더 진전되야 하는데 아마 영어를 잘 못하는 듯.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아, 열 시간의 버스 여행이 지루하겠구나.

자리도 안 좋을 뿐더러 터키 버스처럼 도시 여러 곳을 거치며 사람들을 내려주고 또 태운다.
앞의 이태리 여자들은 떠들고 옆의 커플을 쪽쪽 소리내며 키스하고, 휴대폰 통화는 왜 이리 많이 하는지 한 잠도 못 잤다.
6시 반에 마드리드 시내 입성, 몇 군데 정차하며 사람들을 내려주고 있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옆의 남자가 공항 가냐고 묻는다.
-아니요, 알꼬르꼰(Alcorcon), 오빠 집에요(Mi Hermano Casa)
-아, 오빠 집에요(Brother's house)
서로 상대방의 언어에 대한 실력은 이 정도.
여기서 내려서 기차 타면 된단다. 아토차 역이었다.

4박 5일동안 포르투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잘 돌아보고 왔다.
작은 배낭을 들고 떠나는 짧은 여행은 부담이 없는데 이제 장기 여행이 얼마 안 남았다. 다시 힘을 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