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0. 09:45

D+186 070917 꾸스꼬 도착, 고산병에 시달리다.


버스는 9시 반에 꾸스꼬에 도착.
밤새 버스는 꼬부랑길을 달렸다. 예전 대관령 고개 넘는 길을 13시간 달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창밖은 칠흑같이 어둡고 플라스틱이 가로막고 있어 창밖도 잘 안 보인다.
나스카에서 괜히 아저씨가 도와준다고 창가 쪽 좌석을 잡아줬는데 갇혀 있는 느낌이라 굉장히 답답하다.
옆의 페루비언 아저씨 팔은 자꾸 내 쪽으로 넘어온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팔꿈치로 탁 쳐버렸다.
어느 때는 무지 추웠고 또 다음 순간에는 히터가 너무 세고 숨도 막히는 것 같고, 최악의 버스 여행이었다.
다음에는 꼭 복도 쪽 좌석으로 달라고 하고 옆에 남자가 앉으면 출발할 때 미리 얘기해서 바꿔야겠다.
일층은 우등석 개념으로 좌석이 좀 넓으니 그걸 한 번 타보던지...
너무 불편해서 날이 밝은 다음에는 뒷쪽 차장 자리에 가서 서 있었다. 서 있는 게 더 나았다.
나스카 올 때처럼 젊은 여자 차장이 식사를 서빙하는데 버스가 꼬부랑길을 올라가니 흔들려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산길을 달려왔는데 갑자기 큰 도시가 눈 앞에 나타나니 어안이벙벙했다.
오래된 집들, 흐린 하늘에 더러운 거리가 꾸스꼬의 첫인상.
너무 피곤해서 눕고 싶은 마음 뿐. 택시 잡아타고 리마에서 만난 캘리포니아 커플이 준 명함을 보여줬다.
Hospedaje Turistico Recoleta, 택시비는 5sol. 그런데 너무 금방 도착한다. 택시비 속은 것 같다.
도미토리인데 침대 세 개에 나 혼자 뿐이다. 10달러, 웬지 미안하네.
친절한 여자 직원이 마추피추 투어에 대해 설명한다. 기차표를 빨리 예약해야 되고 이런저런 거 합치면 개인적으로 가는 것보다 투어에 참가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어차피 잉카 트레일을 하지 않고 기차 타고 가려 했는데 좀 생각해 봐야겠다.

겨우 샤워를 하고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그래도 여기는 이불이 두 겹이라 리마에서처럼 춥지는 않다.
다섯 시에 깼는데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딘가 몸이 굉장히 안 좋다.
이게 바로 고산병인가보다. 꾸스꼬의 고도가 3150m, 킬리만자로 첫날밤 정도의 고도, 하룻밤에 올라왔으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목도 마르고 뭐라도 먹어야 타이레놀이라도 먹을 것 같아 8시에 나가봤다. 리셉션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고산병이라며 물을 많이 마시란다.

중심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밤거리가 어둡다.
Pollo-뽀요(닭고기)라고 쓰여진 가게에 들어갔다. 이 동네는 온통 Pollo 식당이다. 다른 음식은 없나?
로컬 식당이라 말도 잘 안 통하는데 아줌마가 가르쳐 준대로 1/4(quatro)뽀요를 시켰다.
Sopa-소파(수프)와 샐러드는 셀프. 뽀요는 장작에 구운 건데 표면은 짜고 속은 퍽퍽하다.
이거 먹고 체하는 거 아니야, 죽지 않기 위해 먹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조금 먹었다. 수프가 그나마 나았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안 좋다. 한글로 된 읽을거리가 필요해 오랜만에 마종기 시집을 읽었다.
읽다가 어느 귀절에서인지 조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시집을 어디선가 떨궈야 되는데, 한국 식당이라도 찾으면...
(이 날 사진 한 장도 안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