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31. 09:29

D+197 070928 아레끼파에서 혼자 놀기

어제까지는 북적대면 놀았는데 오늘은 혼자다. 앤디는 7시 반에 타크나로 떠나버리고.
햇빛 내리쬐는 정원 파라솔에서 일기를 쓴다. 친구를 만들어 놀게 되면 일기 쓸 시간이 없다는...
여행 계획도 수정한다. 주말이라 푸노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받을 수 없으니 그렇게 되면 볼리비아에서 산티아고까지 2주일밖에 안 남는다. 이스터 가는 비행기를 1주일씩 늦춰야겠다.
그럼 또 리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1주일만에 돌파해야 한다는건데 거긴 대도시라 교통이 좋을 것이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원월드 항공권의 문제, 마음껏 느긋하게 여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기쓰고 여행 계획을 짜다 보니 벌써 12시, 게으른 하루다.
하긴 지난 며칠간 쉼없이 달려왔으니 좀 쉬는 것도 괜찮다.
치파 레스토랑(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을 먹고 아르마스 광장에 나가 앉아 있는다.
아레끼파는 고도가 2천미터 정도밖에 안 되기에 따뜻한 날씨가 너무 좋다, 꾸스꼬에서 오면 그게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 무슨 날인가? 온 도시의 학생들이 옷을 맞춰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있다.
카드 섹션도 하고,
모여 앉아 구경도 하고,
재밌네.

사람들은 모두 한가하게 공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구두 닦이나 젤리 파는 여인들이 왔다갔다 한다.
핸드폰을 든 사람들이 전화 사용하라고 소리를 치고 다니기도 한다. 아직은 핸드폰 보급이 잘 안 되어 있나보다.
햇빛 아래 나른하게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이 곳에 사는 사람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데스 성지 박물관(Museo Santuarios Andinos)에 화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녀 미이라 후아니타(Juanita)를 보러 갔다.
1995년 한 인류학자가 암파토 산(Ampato, 6288m)에서 한 구의 동결 미이라를 발견했다.
연구해 보니 500년전에 화산에게 바쳐진 12~14세의 소녀였다.
잉카 인들은 화산에 무서운 신이 있어 화산 폭발이나 산사태 등을 일으킨다고 생각해 제물을 바치곤 했다.
화산에 바쳐지는 소녀는 희생물로 바쳐지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기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그 당시 제물을 바치는 순간을 다큐멘터리처럼 찍어놓은 비디오를 보고 가이드 투어를 해야 한다.
미이라 상태가 좋아 그 당시 소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팜플렛을 보았는데 그냥 미이라였다. 무섭기만 했다는.
에어콘이 너무 세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마음대로 박물관 안을 돌아다닐 수도 없다. 꼭 가이드를 따라다녀야 한다.
가이드에게는 알아서 팁을 줘야 하는데 5솔 줬다.

이런 고고학적 유물을 볼 때마다 나는 유물 그 자체보다 그걸 발견한 사람에게 더 관심이 간다.
갖가지 어려움을 헤치고, 많은 헛다리를 짚은 후, 원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또는 원하지 않았던 것이라도), 그것이 자기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이 미이라 소녀도 발견자가 요한 라인할트(독일어, 영어로는  John, 스페인어로는 Juan) 라서 후아니타(Juanita)로 명명되었단고 한다.

로션이 떨어져 약국 겸 화장품 가게에서 크림 같은 걸 하나 샀다. 29솔, 비싸군.
칠레산, 냄새는 고약해도 품질은 좋은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