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3. 10:02

D+201 071002 푸노-코파카바나-이슬라 델 솔 이동, 볼리비아 입성

3일 동안 아침햇살로 나를 깨워준 이 방을 떠나는 날.
핫샤워를 하고-다행히 오늘은 뜨거운 물이 잘 나와주었다-배낭을 챙기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수희양은 벌써 아침을 먹었다고 햇반과 김을 준다. 햇반,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레끼파로 간다는 수희양에게 가이드북을 찢어주었다. 가이드북을 안 갖고 여행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는 가이드북 없으면 불안하던데, 내가 모험심이 좀 부족한 걸까, 신중한 걸까?
200일째를 같이 보내줘서 고마운 수희양과택시를 기다리며 한 장,
택시가 도착하자 오늘 볼리비아 넘어간다는 두 친구와 같이 탔다. 아저씨도 탄다. 왜?
Terminal Terrestre, Colectur 버스 매표소 앞이다. 우리 셋 한테 택시비 1.5솔씩 내라고 한다.
표를 주더니(20솔), 터미널 이용료로 1솔씩 내라고 한다. 그리고 뒷문을 통해 버스 타는 곳으로 안내한다. 
뭔가 이상한데? 사소한 금액이지만 웬지 속고 있는 기분, 그 3솔은 아저씨 돌아가는 택시비겠다.
어쨌든 좌석까지 안내해 주고 돌아가는 리카르도 아저씨, 마지막 3솔은 좀 그랬지만 나쁘지 않은 아저씨였다.

버스는 호수를 왼쪽에 끼고 달린다.
지금이 페루의 봄, 새로 밭을 갈아 놓은 곳, 소가 쟁기를 끌고 지나간 곳에 여인이 씨를 뿌리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티티카카 호수.
두 시간을 넘게 달려 볼리비아 국경에 도착했다. 차장이 뭐라하는데 대춛 알아듣는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건 많이 해봐도 언제나 신기하다. 마음이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것이다.
남은 페루 돈을 볼리비아 돈으로 환전하고 폴리스에서 도장을 받고 페루 국경 사무소에서 다시 도장을 받는다.
내 앞의 사람은 무슨 일인지 20솔을 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볼리비아 국경 관리에게 돈을 뜯겼다는 얘기를 좀 들었는데 내 여권을 보더니 "Muy viaje!'(여행 많이 했군요) 30일짜리 도장을 쾅 찍어준다. 
국경 통과할 때는 약간 신경이 날카로워지다가 통과하고 나면 진짜 별일이 나닌 것이다. 여태껏 수많은 국경을 통과하고 아무 일이 없었다니 내가 운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나는 볼리비아에 입성했다.

버스는 금방 코파카바나에 닿았다.
푸노는 그래도 큰 도시였는데 여기는 그야말로 작은 마을이다.
호숫가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오리보트가 즐비하다.
이슬라 데 솔(Isla de Sol 태양의 섬) 가는 배를 기다리며 맛없고 비싼 스파게티를 하수구 냄새 맡으며 먹었다.
오늘 이슬라 데 솔에 갔다가 내일 나와서 라파즈에 갈 예정이다.
배삯은 10 볼리비아노(1B=130원)
배는 고요한 티티카카 호수를 달린다. 여긴 푸노 쪽보다 물이 훨씬 잔잔하고 맑다.
햇볕은 쨍쨍하지만 바람이 차가워 2층에 있다가 실내로 들어왔다.
두 시간을 달린 후 이슬라 데 솔이 보인다.
관광객들을 태운 배.
부두에 내리니 사람들이 몰려든다.
어떤 꼬마가 sleep 할 거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따라오란다. 모든 투어리스트들이 갑자기 흩어진다.
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10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다른 선택권이 없다.
로드리게스 말로는 25분 걸린다고. 로드리게스가 배낭을 들어주겠단다. 아니 그래도 내가 어른인데 그럴 수는 없지, 작은 배낭만 맡겼다.
쉬고, 또 쉬고, 길이 끝이 없어보인다. 잠깐 쉬면서 찍은 사진, 팁을 줬던가 안 줬던가.
이렇게 언덕을 올라갈 줄 알았더라면 여기 안 왔을 것을, 하지만 섬인데 언덕은 당연히 있는 건데 왜 생각을 못했을까.
그제 타킬레 섬에서 등짐을 잔뜩 지고 언덕을 올라가던 케추아 여인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정말 힘들어 죽겠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로드리게스, 이리 와서 손이라도 좀 잡아줘라. 힘들면 한국말이 막 나온다.
그래서 로드리게스가 안내한 곳이 Hosteria Las islas 인데 론니에 나온 숙소라 그런지 사람이 많다.
로드리게스가 들어갔다 오더니 sin bano(without bath)는 없고 con bano(with bath)는 10달러란다.
모든 사람이 나를 앞질러 지나가더니 방이 그새 차버린 모양.
볼리비아에서 10달러 주고 잘 수는 없다. 다른 데 없냐고 물어봐 간 곳이  Inca Pachu.
 전망은 괜찮다. 침대가 세 개 있고 화장실이 붙어있는데  sin bano는 35볼리비아노고 con bano는 10불이란다.
화장실이 딸려 있는데 어떻게? sin bano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화장실 문을 끈으로 묶어버린다.
알고보니 물을 잉카 샘에서 당나귀가 길어와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따로 쓰면 가격이 두 배가 되는 것이다.
공용 화장실은 세면대에는 물이 졸졸 나오는데 변기에는 물을 퍼 넣어야 한다.
이럴 바에는 우리나라 전통 화장실이 훨씬 낫겠다.

30볼리비아노로 깎아달라고 했더니 5B를 로드리게스에게 줘야 한단다.
그럼  내가 5B를 로드리게스에게 주고 30으로 하기로 했다.
로드리게스는 만족하지 못한 얼굴, 짐을 들어줬으니 더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내가 너한테 돈 줘야하는줄  알았으면 큰 배낭을 들어달라고 했을 거야, 그냥 도와주는 줄 알고 작은 가방 들어달라고 한 거지, mi amigo(my friend)하고 달랬다.
아마 저쪽 호텔에 갔으면 더 많이 받는 듯 싶다, 안쓰럽기도 하고.
자, 우리 사진이나 같이 찍자, 찍고 보니 나랑 키도 비슷, 13살이라는데 그냥 배낭 들어달랠 걸 그랬나? 너무 힘들었다.

숙소도 잡았으니 좀 걸어보자.
이슬라 데 솔은 잉카 신화에서 태양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잉카 유적까지 30분쯤 걸린다니 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겠지.
저기 보이는 섬이 이슬라 데 루나(Isla de Luna, 달의 섬)
알파카.
티티카카 호수가 3820fm 높이니 내가 서 있는 곳으 3900m쯤 되겠다. 햇볕이 강하고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로해진다.
그래도 꾸스꼬 이후 고산에 완전히 적응해서 다행이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길이 위험해 보이는데...
동키, 물 길어나르느라고 수고가 많다. 
분명 계단식 밭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자라는 건 없다.
좀 가까워졌나, 달의 섬? 작은 섬은  Isal Chelleca,
원래는 태양의 섬, 달의 섬에도 나무가 있었을 텐데 오랜 세월 개간해서 없어진 것 같다.
흐음, 이 정도 거리면 헤엄쳐서 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이 얼음처럼 차갑겠지?
이제 이슬라 데 루나가 눈 높이로 보인다.
호숫물은 그야말로 맑고,아무 인적도 없는 곳이 나 혼자 있다. 섬과, 호수와 그리고 나. 

섬의 남쪽 끝을 찍었으니 돌아가야겠다. 잉카 유적이 여기 어딘가 있다던데 체력저하로 포기.
점점 해가 져 가며 바람에 세차지는데 호수로 나아가는 배가 보인다.
다시 이렇게 올라왔다.
하루의 일을 끝마친 농부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저 농부는 몇 백 년 전의 세상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게 아닐까?
지나가면 'Ola!' 하고 인사했더니 미소를 지으며 'Ola!' 하고 받아준다 그 때는 스페인어를 안 썼을 테니 이 분은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