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7. 10:10

D+252 071122 또레스 델 파이네 트래킹

또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버스가 7시 35분에 데리러 왔다.
배낭을 맡기고, 주로 식량만 가득찬 가방을 들고 버스에 탔다. 공원내 산장 식당은 비싸고 취사가 가능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시내를 한바퀴 돌며 사람들을 태우는데 그 이스라엘 인간들이 또 타는 것이다.
으~시끄러운 놈들, 다행히 우리가 제일 앞에 앉고 그들은 맨 뒤, 이른 시간이라 잠자느라고 조용해서 그나마 덜 시끄러웠다.

버스는 두 시간 만에 아마르가 호수(Laguna Amarga Guarderia)앞에 섰다. 입장료 15000페소.

멀리 또레스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레스 산장까지는 5km정도, 걸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산장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 일인당 천 페소.
원래 움직이는 하나하나마다 돈이 들어가는 게 여행의 본질이지만 물가가 비싼 곳이라 돈 나갈 때마다 왠지 억울하다.
나는 먹을 게 들은 작은 배낭과 침낭(침대에 시트가 없단 애기를 들어서)을 들었을 뿐인데 커다란 배낭은 캠핑을 위한 것일테고,
이민가방을 싸온 듯한 이 처자들은 뭘 하러 가는 것인지 궁금.
다리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 또레스가 훨씬 가까워 보인다.
마을 버스 타고 도착.
또레스 산장이 제일 크고 나머지 알베르그(산장)들은 트래킹 루트 중간중간 있는 작은 숙소이다.
그림같은 풍경 안에 자리잡은 또레스 산장.
두 종류의 산장 중 2달러가 싸서 노르떼(Norte)로 예약했는데 가보니 아무도 없고 침대 정리도 하나도 안 되어 있다.
리셉션은 새로 지은 쏀트럴(central)에 있다는 것. 체크인하는데 부엌이 없단다.
에? 나랑 같은 체크인 한 다른 친구도 놀란 눈치.
-그럼 미리 얘기해줬어야 하는 건 아닌가요?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거니 우리는 상관이 없어요.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레스토랑을 이용하라는데 아침식사 구천원, 점심 만 이천원, 저녁 만 사천원이라니 말도 안 된다.
취사는 캠핑하는 사람들이 취사도구를 가지고 왔을 때만 가능하다. 산장에서 자면 불가능.
뜨거운 물은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 컵라면으로 버티면 되겠다.
어쨌든 정리 안 된 6인 도미토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또레스를 보러 출발했다.
날씨가 꽤 쌀쌀해 페루에서 산 털모자를 쓰고 출발.
우선 칠레노 산장까지 두 시간.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우리나라 농촌 모습 같은 길을 걸어간다.
저 언덕을 넘어야 또레스가 보일까?
멀리 눈덮인 산, 호수,
낮은 산 하나를 오르자,
넓은 협곡이 나타난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
협곡 끝에 칠레 산장이 있다.
파타고니아 트래킹의 특징은 눈에 빤히 보이는데 걸어가려면 멀다는 것이다. 협곡을 통과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계곡 끝에 자리한 칠레 산장, 무거운 배낭을 가져올 필요가 없다면 여기 묵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항상 짐의 압박을 느껴 배낭을 놔두고 걷는 일일 트래킹 코스만 선택하게 된다.
Fantastico Sur, 그래요, 이 남쪽이 환타스틱 하긴 해요.
다리를 건너,
계곡물을 바라보며 잠깐 휴식, 한여름에 발담그면 시원할 것 같은데 여긴 여름이라도 온도가 많이 오르지 않을 것이다.
또레스봉이 훨씬 가까이 보인다.
칠레 국기와 같이 휘날리는 기는 파타고니아 주의 깃발이 아닐까?
쉬었으니 다시 출발.
사람이 꾸며놓은 듯한 작은 폭포. 하지만 이걸 만든 건 자연.
아까 버스에서 만난 이스라엘 애들이 폭포 옆에서 큰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쉬고 있다. 저 배낭을 메고 어떻게 이런 산길을 오를까? 군대에도 갔다 왔다니 역시 체력이 장난이 아니군.
계곡을 따라 걷다,
숲으로 이어진다.
길을 표시하기 위한 빨간 페인트칠, 야광일 것 같다.
여기도 죽은 나무.
겨우 30분 왔다. 또레스 봉 아래까지는 아직도 1시간 30분이 남았다.
가까워지지 않는 또레스봉.
또 숲길.
빙하 녹은 물은 계속 흐르고,
눈쌓인 산이 눈높이에 와 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이제 또레스 전망대까지 45분이 남았다고.
역시, 트래킹 코스는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길도 없는 자갈밭을 45분간 기어올라야 한다.
빨간 페인트를 칠한 돌이 길이라는 건데 그 쪽으로 오르기가 더 힘이 든다. 대충 발 닿는대로 올라야지.
포즈를 취한 게 아니라 힘들어 허리에 손 얹은 것임.
마지막 돌산을 오르니,
또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에 도착했다.
와, 멋지다. 마라톤을 뛰고 도착점에서 벌렁 드러누운 느낌. 오늘도 또 뭔가를 해냈다.
또레스 봉 높이는 2800미터. 또레(Torre)는 탑이란 뜻.
남쪽부터 Torre de Agostini, Torre Central, Torre Monzino라는데 어디가 남쪽인지 모르겠다.
1200만년전 땅에서 융기한 화강암으로 겉의 퇴적암이 빙하에 의해 떨어져 나가 지금의 뾰족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피츠로이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역시 멋있었고 바람이 안 불어 느긋하게 쉬기 좋은 곳이었다.
내려가는 게 문제.
어느 쪽으로 가야 그나마 힘이 덜 들까?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폭포.
개울에 그늘이 지기 시작.
그림자가 길어지고.
칠레노 산장 앞의 다리.
피곤해 보이는 대디. 휴우, 돌아오는 길의 협곡은 얼마나 길던지...!
바로 옆에 있는 호수인데 왜 색깔이 다를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해가 길어져 하루종일 트래킹 하기는 참 좋다.
엊그제 봤던 새, 여기도 있다.
드디어 산장에 도착,
빨리 가서 발닦고 쉬어야지.

방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고 들은 얘기와는 다르게 두꺼운 이불도 있었다. 
엄청 냄새나는 신발을 벗어논 서양애들과 같은 방이었다.
식당에 뜨거운 물을 얻으려 갔더니 백발의 서양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산장에는 고급 호텔도 있어 여기 묵으면서 멀리서나마 또레스를 보고 가는 것 같았다.
모두 우아하게 칼질을 하고 있는데 컵라면에 물 받아가려니 조금 뻘쭘했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었던 날에는 라면이라도 한국음식이 최고. 디저트로 시내에서 사온 메론을 먹었는데 이것도 엄청 맛있었다.
따뜻한 침대에 누우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스물스물 밀려온다. 기분좋은 피로,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