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9. 09:56

D+272 071212 과테말라 입성, 산크리스토발-파나하첼 이동

일찍 배낭 싸서 나오는데 아무도 일어나 있지 않다. 어제 그렇게 놀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오늘은 샌드위치를 못 가져간다. 내 아침식사를 돌려줘~!
성모 마리아상과 예수 사진이 모셔져 있는 제단 모습, 일반 가정에 이런 것이 있다니 정말 신앙심이 깊은 나라이다.

7시에 온다던 미니버스는 7시 30분에 왔고 도시 구석구석을 돌며 사람을 꽉꽉 채워 8시 넘어 출발했다.
나는 출발하는 여행사 앞에서 타서 그나마 좋은 자리에 앉았는데 늦게 탄 사람들은 불편한 자리에 앉아 꼬불꼬불한 길이 많이 힘들겠다.
과달루페 성녀를 위한 달리기가 길 곳곳에 있어서 차가 빨리 달릴 수가 없다.
한 명이 달리면 뒤에서 차를 타고 쫓아가다 그 사람이 힘들면 또 다른 사람이 이어 달리고.
멀리서부터 왔는지 아주 꾀죄죄한 옷차림의 사람들도 있고, 남녀 노소를 안 가리고 달린다.
방향도 일정치 않아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가 하면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도 있다.
왕복 2차선의 산길이기에 추월할 수도 없는데 모두 클랙션 한 번 안 울리고 앞차를 쫓아 달린다.
정말 신앙심이 깊은 나라인 것 같다. 그래도 또 드는 생각, 노동력이 너무 낭비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럴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면 나라가 훨씬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레스토랑에서 쉬라고 세워주는데  다른 백인들은 모두 우아하게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동안 나와 아드리안이라는 멕시코 애만 밖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이런 데서 돈 쓰는 건 아무래도 아까우니까.
-아까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뛰고 있는 거지?
-과달루페 성녀에게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야. 스페인 침략 이후 전통적인 신앙이 카톨릭으로 바뀌고 그 믿음이 과달루페 성녀에게 집중되어서 그래.
-그런데 도대체 어디를 향해 뛰는 거야? 가는 사람도 있고 오는 사람도 있고.
-뛰어갔다 뛰어오기 때문에 양쪽 방향으로 뛰는 거지.
영어가 좀 안 되서 명확한 설명을 얻기는 어려웠다. 산크리스토발에서 대학을 다니고 멕시코 시티로 돌아가기 전에 과테말라 여행을 하려는데 돈이 좀 부족해서 걱정이란다.

1시에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에 닿아 스탬프를 찍고 과테말라 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20페소를 주었다.
가이드북에는 국경에서 돈을 요구하는 건 사기라고 영수증을 요구하면 그들이 물러난다고 나와 있었지만 비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그 정도 돈으로 입국 시켜 주면 고마울 뿐이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온 다른 사람들은 대개 께찰테낭고(Quetzaltenango)로 가고 안티구아로 가는 허름한 버스에는 나와 아드리안, 마이애미에서 사회사업을 하러 왔다는 아줌마, 세 명만 탔다.
 
과테말라는 멕시코보다 길도 나쁘고 주변 마을도 더 허름하다.
밤에는 버스를 세우고 금품을 강탈하는 강도 사건도 자주 일어난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상당히 높은 지대롤 계속 달리는데 길이 온통 공사중이라 빨리 달릴래야 달릴 수가 없다.
버스 여행을 많이 해 봤지만 낡은 미니버스에 험한 길을 달리는 힘든 버스 여행은 오랜만이다.
겨우 한 잠 자고 일어나 아드리안과 이것 저것 얘기하기 시작, 얘는 얼굴이 흑인과 비슷하다.
부모님 사진을 보여주는데 엄마는 완전히 백인, 아빠는 흑인이다. 경제학을 공부한다기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멕시코는 뭘로 유명해?
-이민(immigration)으로 유명하지.
미국으로 불법 이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시니컬한 경제학도의 답이다.
-멕시코의 석유 생산량은 이전에는 세계 4위였고 지금은 6,7위 정도 돼.
-그런데 왜 가난해?
앞 좌석에 앉아 있는 마이애미에서 온  아줌마 쪽을 힐끗 보더니
-우리가 하는 말이 있어. 신은 너무 멀리 있고 미국은 너무 가까이 있다고.
이곳의 정치 경제학적 사정을 자세히는 몰라도 그 뉘앙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버스는 호수가 보이는 아름다운 길을 한참이나 달려 내려가더니 6시에 파나하첼(Panajachel)에 닿았다.
여기서 안티구아까지는 세 시간, 지금 가는 버스는 없으니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가는 버스를 이용하라고 한다.
10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길에 시달렸으니 피곤하고 호수가 아름답다니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해서 숙소를 고민하고 있으니 미국 아줌마가 아는 호텔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묵는 호텔이라며 주인에게 그들만큼 할인해달라고 해서 16불에 새로운 시트가 깔려 있고 화장실이 딸린 방에 묵을 수 있었다.
미국 아줌마는 잘난척 해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낯선 도시에 밤에 떨어질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나가보니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 완전 투어리스틱한 곳이다. 호수를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내일 배 타고 호수를 둘러보고 네 시 차로 안티구아로 가야겠다. 이틀간 미니버스에 시달렸더니 무척 피곤하다.


*산크리스토발-안티구아, 여행자셔틀버스, 350페소. 하루내에 가기는 좀 힘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