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6. 22:56

D+38 070422 sun 잔지바르, 스톤타운, 씨푸드 마켓

어제 브리티쉬 가이들 때문에 잠을 설쳤다.
토요일 밤의 YWCA 에는 얘네랑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밤에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결국은 가서 문을 두드리고야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영어도 잘 안 나오길래 그냥 한국말로 조용히 좀 하라고 했더니 다시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나를 비웃는 듯하다.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화가 나서 다시 문을 두드리고 한국말로 '이 XX XX 놈들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텅빈 복도, 다르에스살람의 밤공기에 내 한국말 욕소리가 울러퍼졌다.
아프리카 이후 여정인 영국에 가기 싫어진다. 영국 액센트도 싫고 시끄러운 영국놈들도 싫고...

배는 12시 30분 출발이니 시간이 좀 있다.
다 읽은 책 두 권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제 잠깐 만났던 대학생 안네마리에게 주기로 했다.
도도마에서 유학온 예쁜 여학생인데 나에게 탄자니아말, 스와힐리어를 가르쳐 주었었다.
'Habari?' - 'How are you?'
'Kwa heri' - 'Good bye'
'Asante sana' - 'Thank you' 라는 뜻이었다.
리셉션 아줌마한테 맡기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항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2000실링,
배에 타기전 배낭을 검사하고 어떤 아저씨가 들고 앞장서서 배에 오른다. 이건 친절? 했더니 손을 내민다. 역시~ 500실링 주었다.
배에 승선, 항구 가까이 있는 교회의 모습.
데크에는 그 브리티쉬 가이들이 있다. 이거, 타자라 기차부터 같이 움직이더니 어디까지 따라올거야?
꼴보기 싫어서 일등석으로 갔다.
모두 현지인들뿐이다. 어떤 직원이 오더니 외국인은 VIP 라운지로 가란다.
배표 가격을 외국인이 훨씬 많이 내는 것이다.
VIP 라운지에 갔더니 반가운 얼굴이 있다. 상근과, 에밀리오, 그리고 또 한 명의 한국인, 나처럼 원월드로 세계일주중인 민철군이다.
방향은 나와는 반대여서 북미, 남미,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왔단다. 잔지바르에는 오늘 하루만 있을 계획.
한국인 세 명이 모이니 한국음식 얘기하고 난리났다. 난 어제 영국애들에게 소리지른 얘기를 해주었다.
간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떠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데크에 올라가서 바람쐬기.
사람 많네.
처음 공개되는 스웨디쉬 가이, 에밀리오. 가는데마다 싼 걸 찾고 무리하게 흥정을 해대서 같이 다니는 상근이 좀 질려하고 있었다.
그래도 돈은 아낀다고 당분간은 같이 다닐 거라고 한다.
이 바다는 인도양인 거지?
저기 육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세 시간의 항해 끝에 섬에 가까워지고 있다.
멋진 건물들도 있다.
잔지바르 섬은 한때 동아프리카의 아랍 제국의 수도였으며 노예와 향료 무역의 중심지였단다.
같은 탄자니아인데도 출입국시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다.
스톤타운은 이런 좁은 골목길로 유명하다. 도저히 혼자서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배에서 내리니 삐끼들이 몰려들어 서로 숙소를 안내한다고 난리다.
어떤 삐끼를 따라 잠보하우스에 갔는데 그 브리티쉬가이들이 있다. 여기는 절대 안돼!
다음에 간 곳은 Haven 게스트하우스, 5불 까페에서 보고 가려고 했던 곳이다.
가격은 론니에 나온대로 싱글 10불, 트윈 20불이다.
에밀리오가 단 1불이라도 깎아보려 했으나 아저씨는 완강, 에밀리오는 흥정을 즐기고 있는 듯한데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짜증이 슬슬.
민철군은 오늘밤 떠나야하기 때문에 잔지바르 맛이라도 보려면 빨리 나가야 한다.
이런 큰 길도 있다.
병원도 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
이 그림이 유명한 탄자니아 스타일이라던가?
슬슬 걷고 있는데 낯익은 동양인이 길에 앉아 쉬고 있다. 아, 빅폴 졸리보이스에서 만났던 일본인 나우가 아닌가?
왼쪽부터, 항상 우리를 쫓아오는 삐끼, 나우, 상근, 민철, 에밀리오다. 일행이 6명이 되었다.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
하얀 건물 사이로 보이는 인도양.
민철군은 잔지바르가 왜 유명한지 모르겠단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씨푸드 마켓이 유명하다고 들은 것 같다.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목적지가 가까워 온 것 같은데,
Forodhani Garden 에 있는 씨푸드 마켓에 도착.
배고픈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가재, 새우, 각종 해산물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있다, 물론.
사진 찍으니 1불이라고 말하는 아저씨, 물론 도망왔지.
하나씩 사가지고 모이기.
장기 여행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상근군과 민철군.
남미를 6개월간 여행했다는 나우군. 남미 다녀온 민철군과는 스페인어로 얘기하고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얘기하고.
아, 재밌다. 이게 또 여행하는 맛인것 같다. 혼자서도 즐겁지만 같이 있는 것도 즐겁다.
먹는데 너무 열중해서 사진 찍는 걸 잊고 있었다. 흔적만 남은 아프리카 최고의 만찬.
디저트로 사탕수수 음료까지 마시고 나서 로컬 바를 찾아나섰다.
별빛 아래서 맥주 한 병씩 하고 나니 민철군이 떠날 시간이다. 뜨거운 포옹으로 민철 군을 보냈다.
우리 다시는 못 만나도 함께한 이 짧은 시간은 잊지 맙시다.
'잔지바르에 3시간 30분 있었지만 영원과 똑같다' 는 민철군의 말.
(민철군은 이후 호주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갔다. 연락처도 교환 안했는데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내 블로그를 찾아내었다.
3시간 30분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