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 10:50

D+200 071001 볼리비아 비자 받기, 푸노

잠결에 한국말 소리를 들었다. 꿈인가? 눈을 뜨니 6시, 정신을 차리는데 누가 주인 아저씨와 영어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발음도 꼭 한국식 영어.
아니나다를까, 아침을 먹으러 갔더니 꼬레아나(Coreana)가 왔다는 것이다. 정말요?
방문을 두드리니 추석과 연차를 이용해 2주간 페루 여행을 왔다는 수희양이 나온다.
남미에는 장기 여행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군요.
간만에 한국말 하니 좋다. 이런 외진 곳에서 한국 여자 솔로 여행자를 마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이 내 여행 200일째, 저녁에 만나서 파티하기로 했다. 아직 피스코 사워도 알파카도 꾸이도 못 먹어봤단다.
맥주 꾸스께냐도 아레끼파냐도.

나는 우선 할 일이 있다. 볼리비아 비자를 받아야 하는 것.
론니에 나온 지도를 보고 볼리비아 영사관(Bolivian Consulate)을 찾아갔는데 간판이 작아 그 앞을 몇 번이나 지나쳐 갔다. 볼리비아 비자를 받으려면 홍역, 풍진, 볼거리 등에 대한 예방 접종을 맞았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그 나라 보건 담당자가 전염병에 치를 떨던지, 우리나라를 위생이 안 좋은 후진국으로 생각하던지 둘 중 하나.
실상은 볼리비아가 훠얼씬 지저분하다.

어쨌든 아쉬운 사람은 나니 어쩔 수 없다.
나는 황열병 예방접종 뒷편에 위조로 예방접종을 받았다고 써 갔다. 병원 도장 쾅 한 번 찍어주었고.
영사가 그걸 보더니 rubeola 어쩌고 종이에 적고 가서 예방 주사 맞고 오란다.
그러니까 증명서가 없어도 여기서 예방주사를 맞고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
-에, 그러니까 여기 MMR의 R이 rubeola 거든요.
그랬더니 그냥 30불 내고 12시 반에 오란다. 얏호, 아픈 주사 안 맞아도 되는구나. 
어렸을 때 다 맞았는데 그 기록을 어디서 찾을 것이며 괜히 주사 맞았다 부작용이라도 나면 어쩌란 말이냐.

숙소에 돌아와 빨래를 좀 하고 12시 반에 다시 갔다
여권 앞 장이랑 비자랑 예방접종 증명서 복사해 오란다. 영사관에 복사기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얌전히 주변의 문구점을 찾아 복사해갔다.
-Muy bien(참 잘했어요), 이제 볼리비아에 가도 된단다.
-Muchas gracias, gracias, 이제 나는 볼리비아에 갈 수 있다.

비자를 받고 나니 할 일이 없다.
하릴없이 거리를 걷다가 본 학교, 푸노 외국어 학교 쯤 되겠다.
시험 점수를 공개해 놓았다. 어디나 점수에 목숨 거는 건 똑같다.
시장 쪽으로 걸어가 2솔짜리 로모 살타도(loma saltado, 비프 스테이크 같은 것)을 먹고 돌아올 때는 힘들어서 인력거를 타고 왔다. 1솔. 언덕은 차마 올라가달라고 할 수 없어 내려 걸어올라왔다.

오후에는 다시 낮잠, 가끔은 이렇게 쉬어주기도 해야 하는 것.
다시 저녁이 찾아오고 수희양이 돌아왔다.
수희양도 전망이 좋단 얘기를 보고 왔는데 방이 다 차서 창문 없는 방을 쓰고 있다. 내 방에서 한참 같이 떠들었다.
그리고 수희양이 아는 정보대로 식당 ELCO bar 에 갔다. 
알파카 스테이크와 송어 요리를 먹고 피스코 사워도 한잔. 
2차는 바에 가서 꾸스께냐 하나씩 먹고 돌아왔다. 혼자였다면 가지 못했을 텐데 둘이라서 마음 놓고 마실 수 있었다.
페루에서의 마지막 밤, 200일째 밤이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