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6. 16:59

D+279 071219 눈부신 푸른빛 카리브해, 뚤름 유적

계란 후라이 냄새에 깼다. 마당이 식당 겸, 부엌 겸, 라운지로 주인 할머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띠야에 계란 후라이를 아침으로 먹고 해변 바로 옆에 있다는 뜰룸 유적으로 출발했다. 
나오다 보니 주인 알베르또가 스쿠터를 타고 들어오고 있다.
-뜰룸 유적에 어떻게 가죠? 택시 타는 거 말구요.
뒤에 타라고 손짓을 한다. 오호, 택시만 40-50페소 들텐데 땡잡았다.
스쿠터가 작고 앉는 곳이 진짜 좁아 불편했으나 공짜인데 이런 것쯤은 감수한다.
시내에서 유적까지는 15분쯤 걸렸다. 스쿠터 소음 사이로 소리질러가며 대화를 나눴다.
알베르또는 43세, 캘리포니아에서 8개월간 일하며 영어를 배웠고 아직 미혼.
-Porque? 왜요?
-I'm ugly.
-Oh no, you are just looking like a mexican guy.
사실 키 작고 못 생긴 건 맞지만 거기다 대고 '그래, 너 못생겼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자 친구를 찾고 있다는 알베르또, 부디 좋은 여자 만나기 바란다.
뚤룸 유적 들어가는 길,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1200년부터 1542년까지 번성한 이 도시는 항구도시로 교역의 중심지였고 또한 요새의 기능도 갖추고 있었단다. 
지금은 깐꾼에서 단체 관광객이 데이 트립으로 많이 들르는 곳이란다. 지금까지 본 많은 유적 가운데 제일 단체 관광객이 많은, 꼭 유원지 같은 느낌이었다.
푸른 색의 카리브해 바다가 보인다.
이 유적은 그 자체로는 별로 볼 게 없는데 바닷가에 있다는 게 특이한 점.
이건 이구아나? 너도 여기 사는 거야?
모래사장도 있어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놀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이런 색깔의 바다에 발을 담그는 것도 마지막일 것이다.
시원하다. 풍덩 뛰어들고도 싶지만 혼자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용기는 터어키에서 다 써버렸다.
바다는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무척 더운 날씨인데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세다.
아름다운 카리브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뚤룸 유적.
어디 가나 단체 관광객.
너무 더워서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처럼 혼자 오는 여행자는 별로 없는지 마을에서 직접 오는 버스는 없다.
큰 길에서 지나가는 미니 버스를 세웠다. Playa del carmen과 뚤룸을 오가는 버스였다.
한낮의 마을은 무척 조용했다. 그리고 덥다, 정말 덥다.
뭐라도 사먹을까 하다가 모두 투어리스틱 식당이라 비쌀 것 같아 그냥 호스텔로 돌아갔다.
예약 사이트에서 퍼온 호스텔 사진. 방갈로 타입의 방도 있고 옥상에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도 있다.
바나나로 허기를 때우고 미국편 론니를 보며(어디선가 주워온) 공부하고 있는데 알베르또가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을 몰고 온다.
아줌마와 십대 아들 두 명인데 아줌마가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알베르또가 같이 먹겠냐고 물어본다. 나야 땡큐지.
곱창 볶음이다.
돼지 냄새가 좀 나지만 라임을 짜서 뿌리고 피클과 붉은 소스(salsa rojo)를 넣어 또띠야에 싸 먹으니 먹을만하다.
알베르또가 맥주도 갖다 준다.
-어, 이거 공짜야?
-응.
-고마워.
-I like you.
그래도 난 당신 여자친구가 될 수는 없는 걸.
아줌마와 두 소년은 멕시코 시티에서 여행 왔고 오늘 깐꾼으로 간단다. 영어 절대 안 되지만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설겆이는 내가 한다고 우겨서 내가 했고 삼모자는 떠났다.
-Buen viaje~!

맥주 한 병에 알딸딸해져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나가서 인터넷을 하고 돌아왔다.
다시 호스텔로 돌아오니 알베르또와 이스라엘 여자애 두 명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Beer?
-물론이지.
알베르또는 이스라엘 여자애들에게는 이상한 술을 주고 나에게만 맥주를 가져다 준다. 역시 격려와 칭찬은 고래라도 춤추게 하는 것이다.
한 병 더 먹겠냐는 걸 사양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알베르또가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