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6. 21:24

D+52 070506 sun 펍에 축구보러가다.

역시 몸이 안 좋다.
어제 말라리아 약을 한 번 먹고 춥고 떨리고 열나는 것은 좋아졌으나 혈색소 수치가 낮으니 어지럽고 메스껍다.
아침에 수박 몇 조각을 먹고 들어와서 자는지 깨어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아픈데 누구 하나 들여다봐주는 사람도 없고 객지에서 아프니 더 서럽다.
오후 두 시가 지나서야 배가 고프기도 하고 약도 먹어야 할 것 같아 나왔다.
호텔 복도에서 본 풍경. 우리나라의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그래, 여기 피자집이 있었다. 호텔 바로 앞의 인도-이탈리아노 식당에 갔다.
자원봉사자들인 듯한 서양인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있다.
나는 혼자다. 외롭다. 아무도 나에게 좀 어떠냐고 물어봐주지 않는다. '나 아파요'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피자를 주문했는데 역시 늦게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행, 음식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떄울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할 것을 이미 다 해버린 여행자인 것이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드니 앞에 프랭크가 있다.
-오늘 나도 몸이 좀 안 좋아서 늦게 일어났어. 네가 걱정되서 와봤어.
이거 진짜일까? 뭔가를 원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어쨌든 내 외로움을 좀 달래줬으니 믿어준다, 믿어줘.
-피자 좀 먹어. 너무 커서 다 못 먹어
-난 달걀에 알러지가 있어
-뭐라구? 진짜야?
-전에 먹었는데 막 토하고 혼나서 다음부터는 안 먹어.
그렇지. 아프리카 흑인이라고 음식물 알러지가 없으라는 법은 없겠지.
그런데 왜 나는 이들이 먹을 것만 보면 달려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프랭크 팔에 AMANDA 라고 씌여 있는 문신을 전부터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차라 물어봤다.
-그거 네 여자친구 이름이지?
-아니, 내 막내 여동생 이름이야.
-그런데 그걸 왜 새기고 다니니?
-몇 년 전에 죽었거든. 기억하려고 문신을 새겼지. 정말 귀여운 아이였어. 내가 집에 돌아가면 오빠 하면서 뛰어나왔다니까.
-왜 죽었는데?
-뜨거운 물이 쏟아져서 거기에 데었어. 병원에 갔는데 너무 심해서 죽었어. 정말 예쁜 아이였어.
-뭐라구? 그게 진짜야? 그렇게...죽었어?
목에 메어 말이 안 나왔다. 이게 뭐야,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지는군.
하지만 그 작은 흑인 소녀가 화상을 입은채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병원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죽어가다니, 얼마나 아팠을까?
그 소녀를 보는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동생을 기억하기 위해 문신을 새긴 프랭크 마음은 어땠을까?
프랭크는 케냐 국경 근처의 마을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독실한 이슬람교도.
케냐 몸바사에서 대학공부까지 했으나 일자리가 없어서 몇 년 전 모시로 와서 혼자 지내고 있다.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 내가 vocabulary 공부하던 단어를 가끔 구사해서 나를 웃긴다.
-다시 호텔에 들어가서 쉴 거야?
-글쎄, 할 일도 없고 그러네.
-오늘 저녁에 첼시와 아스날의 축구경기가 있는데 같이 보러갈래?
-나야 좋지. 그런데 어디서 보는데?
바로 여기였다. 우리가 어제 같이 밥먹은 식당에 텔레비젼과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꼭 우리 월드컵때 같다. 집에 티비가 없는 집이 많아서 그런가? 뭔가 놀 거리가 충분하지 않으니 이런데 집중하는지도 모르겠다.
좀 있으니 자원봉사자라는 두 명의 여자가 와서 합류했다.
프랭크는 혹시나 고객이 될까 해서 모든 외국인에게 말을 걸기 때문에 모두 친구가 되는 스타일이다.
프랭크가 시킨 콜라, 내가 시킨 크레스트 비터 레몬. 탄산음료밖에 마실 것이 없는데 이것이 그래도 제일 덜 달아서 애용했다.
처음에는 시들하게 보다가 나중에는 나도 같이 소리지르고 그랬다. 몸도 좀 나아지는 것 같고 기분도 많이 나아졌다.
음료수는 내가 계산. 프랭크는 당연히 돈이 없겠지. 그래도 웬지 찜찜하다.
나는 얘를 친구로 생각하지만 혹시 나를 돈많은 관광객으로 보고 친한 척 하는게 아닌가 하고.
설마 그렇다 하더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멀리 있는 지금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