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25. 19:19

첫째날-3 비내리는 중정기념관

우선은 아리산 가는 기차표를 사야 한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삼림철도를 타고 올라가셨는데 무척 인상적이라고 하셔서 처음 타이완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곳이다.
그런데 타이완 중앙역 매표 창구는 텅텅 비어있다. 우리나라는 명절에 역이 북적북적하고 임시열차도 운행하고 하는데 여기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창구에 가서 물어보니 아리산 삼림철도 입구인 자이에 한밤중에 떨어지는 아주 애매한 시간대의 기차표가 남아있을 뿐이다. 
또 아리산 삼림철도의 표는 못 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설 명절에 사람들이 고향에 안 가고 다 놀러가나 보다. 벌써부터 여행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애매한 표라도 한 장 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이제 MRT로 두 정거장 떨어진 중정기념관에 가보자.
중앙역 주변의 고가도로와 오토바이의 행렬.
중정기념관 역에 내려 걸어가는 길, 문을 연 가게는 몇 개의 까페 뿐.
비가 많이 오는 날씨라 그런지 건물 1층이 인도로 연결되어 비를 안 맞고도 걸어다닐 수 있게 해 놓았다.
애국동로, 적이 있는 나라이니 애국을 강조하는 건 우리나라와 똑같다.
점심도 못 먹어서 잠깐 쉬었다 가기로 했다.
이까리(Ikari) 커피숍, 일본에서 온 것 같은 체인점.
카푸치노와 홋카이도 바닐라케잌-두 개 준다는 말에 덥석 시켰는데 카스테라에 크림이 들은 것이었다- 99원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배낭에서 우산을 빼기 귀찮아 그냥 왔는데 큰일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는다.
중정기념관은 무슨, 그냥 지하철역까지 뛰어가서 숙소로 돌아갈까? 열심히 여행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두 시간이나 기다리고서야 빗방울이 조금 잦아들었다.
중정기념관 옆문으로 들어가는 길.
우와, 정말 크긴 크다. 장개석이 대단한 독재자이긴 했나보다. 지난 십 년간 정권이 바뀌어서 장개석에 관한 것을 많이 축소시켰다는데 이 거대한 구조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공룡은 뭘까?
중국식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 일층, 사람이 많다.
신년 분위기는 제대로 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다 뭐하러 온 걸까?
전시관이 있어 다빈치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편에는 장개석의 유품 전시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받은 훈장,
박정희 대통령과 찍은 사진 등등
38년간 계엄령 치하에서 타이완을 지배한 장개석 총통, 어렸을 때 슈바이처, 링컨 등 위인전 사이에 장개석 총통도 끼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어떤 독재자도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이후에는 역사의 재평가를 받게 되는 법.
이런 전시관은 금방 시들해진다. 나가보자.
공룡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같이 열리고 있었던 것 같다.
휴일의 수많은 인파.
저 문으로 들어왔던가?
넓은 뜰에 어린이 놀이터와 오락실 같은 것이 있다. 사람 많은 곳에는 언제나 잡상인이 꼬이기 마련.
장개석 총통의 동상이 있다는 2층에 올라가보자. 마침 정시가 되어가니 한시간마다 열린다는 근위병 교대식도 볼 수 있겠다.
국립희극원과 국립음악원이 나란히 서 있다.
6.3미터 높이의 동상, 워낙 홀이 넓고 높아서인지 그렇게 커보이지는 않는다.
근위병 교대식을 하긴하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사진 한 장 찍을 수가 없었다.
이 비오는 날씨에 모두들 예쁘게 차려 입고 나들이를 나왔다. 살아가는데 별로 재밌는 일이 없는 사람들인가보다.
근위병 머리 꼭대기만 보다가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매니저 탐을 만날 수 있었다. 
보자마자 '니가 나를 더 괴롭혔거든' 하고 얘기해주려 했는데 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다.
이메일로 싱글룸을 예약했는데 오버 부킹되어 다른 건물의 싱글룸으로 가거나 여기 도미토리에 묵으란다.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숙소가 세 개 쯤 있는데 탐은 자기가 안내해주기 귀찮으니까 여기 묵으라고 꼬신다.
-원래 350인데 200에 해줄께.
싱글룸은 500원(만오천원)인데 200원이라니 첫날부터 단단히 돈을 아꼈구나 하며 '그럼 그러지 뭐' 해 버렸다. 
어차피 싱글룸도 딱 잠만 잘 수 있는 크기일거라는 예상이 들었기 때문.  
저 문 두 개가 싱글룸이고,
나는 여기...
축축한데 에어콘을 계속 틀어놓아 춥고, 침대에는 얇은 이불 한 장, 몸에 닿는 감촉이 선뜩하다.
역시 호텔을 예약했어야 하나봐...
지하철역에서 사온 떡이라도 몇 개 먹고 다시 나가봐야겠다.
보기에는 꼭 인절미 같은데 쫄깃한 맛보다는 물컹하게 씹히는 맛이 그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