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9. 23:49

D+174 070905 파티마(Fatima), 고해성사.

파티마는 일반적인 여행지는 아니다. 1917년에 세 목동에게 성모님이 나타나 기적을 보인 곳으로 카톨릭의 성지.
나도 여행 오기 전에 영세를 받아 카톨릭 신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고 뭔가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가보기로 했다.
 
오리엔트 역에서 파티마 행 기차표를 샀다. 자동판매기라 이용하기가 아주 편하다.
제일 낮은 등급의 기차로 8.5유로, 비싼 건가? 물가가 헷갈린다. 스페인보다는 물론 싼 거다.
라마로사 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제일 낮은 등급의 기차인데 매우 좋았다. 전광판으로 내릴역 안내 표시도 나오고.
기차는 포르투갈의 시골 풍경을 달린다. 간이역에서 할머니들이 타고 내리고 나무가 많고 곳곳에 개울이 흐르는 시골 풍경.
9시 50분에 타서 11시 반에 라마로사 역에 내렸다.
그런데 역이 진짜 썰렁하다. 역사도 없고 주변에 건물도 없고 사람도 없다. 어떤 기차를 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 말고 역에 있던 단 두 명, 한 쌍의 젊은 연인에게 물어보니 코임브라 가는 다음 기차를 타면 된단다.
역 전광판에 코임브라 행 기차온다고 뜨고 잘 살펴보니 시간표도 벽에 붙어 있다. 이러면 무인역도 가능하겠다.
다음 기차를 타고 파티마 역에 내리니 12시 15분. 시골 간이역, 이번에도 나 혼자 내렸다.
파티마는 기차역에서 20km정도 떨어져 있다. 어떻게 가야 할까?
앞의 까페에 가서 물어보니 1시 15분에야 버스가 있단다. 가는데 한나절 걸리겠다. 택시는 18유로면 간다는데 그건 아니지.
아이스티 하나 시켜 놓고 기다린다.

아저씨들이 커피나 맥주를 시켜놓고 한담을 즐기는 동네 까페.
터키랑 비슷하다. 거기서는 차를 마신다는 점만 빼놓고.
벽에 걸린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하고 있다. 중요 경기가 아닌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잘 보니 U-17 월드컵. 준결승전, 가나와 스페인의 경기. 어,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경기다. 내 나라의 잔디밭도 반갑다.
저거 우리나라에서 하는 거에요,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이건 터키와 다르군.

버스가 왔다. 카페 주인이 문 밖까지 나와 친절히 가르쳐 준다. 좀 무뚝뚝하긴 해도 정이 많은 시골 아저씨다.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편리함은 유럽과 비슷한데 정이 남아있는 나라, 이 나라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버스는 작은 마을들을 거쳐 40분만에 파티마에 도착했다.
큰 가로수 길에 호텔들만 있다. 대충 걸어가니 성당과 광장이 나타난다.
목동들이 성모님을 만났을 때는 여기가 황무지였다는데 그 이후 성당을 짓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순례지가 되었다.
파티마의 인구는 8000명인데 순례자 10000명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이 있고 남자 수도 공동체는 15개, 여자 수도 공동체는 67개가 있단다.
중앙의 바실리카와 바티칸을 닮은 회랑, 작은 성당,
버스에서 내려 이 쪽으로 걸어온 사람은 나 뿐이었는데 또 어디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든 걸까?
순례지니 관광버스를 타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미사가 하루에 몇 번씩이나 있고 묵주기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무릎걸음으로 지팡이를 짚고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도복을 휘날리면 걸어가는 신부님들, 중세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았다.
자, 이제 무얼 해야 할까? 돌아보다 보니 각 나라 말로 고해 성사를 할 수 있단다.
영세 이후 한 번도 고해 성사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왠지 여기서 해야 할 것 같다.
고해소 앞에 갔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직도 고민중, 영어로 해야 하는데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망설이고 있는데 한 신부님이 나오시더니 'What language?' 라고 묻는다. 'English' 'Come'
거의 끌려들어가다시피 들어갔다. 망설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눈에 띄었던 걸까? 나 말고도 이런 사람이 많은 걸까?
신부님이 잘 대해 주셔서 마음이 편해졌다. 성모송 세 번만 외우라는 말씀. 찡그린 건 햇빛 때문.
그렇게 나는 내 첫 고해 성사를 파티마에서 했다.
촛불을 붙여 기원하는 곳. 나도 세 자루 사서 세 가지의 바램을 말했다.

올 때는 버스를 타고 (9유로) 한 시간 반 만에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본 스타디움.
오리엔테 역이 아닌 다른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는데 여기도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어 편하게 돌아왔다.
리스본은 대중교통이 참 잘 되어 있다. 정류장마다 노선표와 시간표가 나와있고 기차와 트램, 메트로, 버스가 잘 연결되어 있다. 작은 도시라 그런 것도 있지만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인데 잘 돌아가고 있는 도시라느 느낌을 받았다.

저녁 먹으러 로씨우 광장으로 갔다.
광장의 많은 노천 레스토랑 중 하나에 앉았다.
우선 맥주 시키고,
구운 생선(Grilled Cod fish)가 나왔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맥주를 왜 이리 많이 마신거지?
옆의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아저씨랑 얘기했는데 20년 전에 부산에서 6개월간 현대와 일했단다.
불고기가 정말 맛있었고 야채 샐러드는 맛이 너무 강해 보름쯤 뒀다 먹어야 했다고. 김치인가? 뒀다 먹으면 맛이 더 강해지는 거 아닌가?
다시 한국에 가 보고 싶은데 이제 너무 비싸져서 가기 힘들다고. 우리나라도 이제 꽤 물가가 비싼 나라에 속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더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겠다. 그 동안 지은 죄를 다 용서받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