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 10:00

D+250 071120 눈이 시리도록 흰 빛, 모레노 빙하

8시 반에 빙하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연일 강행군이다.
터미널에 갔더니 뿌에르또 나딸레스 가는 특별 버스가 4시에 출발한단다. 오늘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레노 빙하는 칼라페테에서 80km 거리.
눈 덮인 설산.
나무가 자라지 않는 평원에,
철책이 쳐져 있다.
양을 키우는 목장이다. 이런 척박한 기후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양을 키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개울물도 흐르고,
낮은 관목이 자라고 있는 곳도 있다.
'estanscia'라고 부르는 대농장의 집, 바람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은 것 같다.
한 시간 쯤 달려 모레노 빙하에 도착.
배를 타고 빙하 가까이 가는 투어, 빙하 위를 걷는 투어 등도 있는데 우린 그냥 보고만 오기로 했다.
빙하가 녹아 만든 호수.
드디어 빙하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레노 빙하, 파타고니아 여행의 하일라이트라는 그 곳에 와 있다.
나무 계단을 통해 빙하 가까이 내려간다.
모레노 빙하는 총길이 35km, 끝부분의 폭은 5km,  높이는 60m나 된다.
남극, 그린란드에 이은 빙하 면적을 갖고 있고 겨울의 최저 기온이 높아 얼음이 녹고 얼기를 짧은 싸이클로 반복하는 활발한 운동을 하고 있는 빙하다.
빙하의 끝부분,
하루에 중앙부에서는 2m, 양쪽 끝에서는 40cm,씩 이동하고 이 움직임으로 인해 빙하가 무너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끼익끽 들리고 빙하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조용했던 호수 전체가 술렁대는 느낌이다.
빙하 길이가 35km이고 하루에 2m씩 움직인다니 이 얼음은 17500일, 47.9년을 이동해 온 것이다.
다시 호수는 고요해졌다. 원래의 모습, 물로 돌아간 빙하를 보며 지구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지층처럼 보이는 빙하의 결, 매년 기후 조건에 따라 쌓이는 형태가 다를 것이다.
어제의 피로도 잊고 즐거워하고 있다.

빙하 이모저모.
흰 눈이 위에서 누르는 압력에 의해 푸른빛으로 변했다.
칠레 아타카마 소금사막에서 비슷한 것을 보았다. 음, 흰 물질은 압력을 받으며 푸르고 투명하게 변하는구나.
빙하 쪽에서 찬바람이 불어 무척 추웠다. 카페테리아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셨다. .
돌아오는 길에 작은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점점 멀어지는 빙하,  눈이 시리도록  흰 빛을 기억하며 돌아섰다.

엘 칼라파테에 돌아와서 점심.
음식맛보다는 장식에 신경을 쓴 듯한 레스토랑.
이 안에 뭐가 들었더라?

나탈레스 가는 버스를 타러 터미널에 가니 어떤 동양 여자애가 '한국 사람이에요?'말을 건다.
한국 억양은 아닌데 어디 사람이에요?
일본 여자애 아야꼬,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말을 배웠고  소지섭을 보러 마포구청에 가기도 했단다.
-마포구청에는 왜...?
-소지섭이 거기서 군대 생활을 하고 있었쟎아요.
아, 그렇구나. 웃겨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혼자 여행하고 있다고 해서 'strong woman'이라고 했더니 '독한 여자?'라고 되묻고-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 '물고기'를 먹고 싶다는 귀여운 일본 아가씨였다.

버스 출발,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자리를 잘못 잡은 게 확실해졌다.
바로 앞 좌석에 이스라엘 애들이 몇  명 있었는데 수학 여행 온 중학생들처럼 떠들고 있다. 왔다 갔다 자리도 바꾸고 정신이 없다.
마치 자기네가 버스를 전세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스라엘 여행자의 악행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만난 것은 처음, 정말 정이 다 떨어졌다. 숫자가 많으니 몰려다니는 건 좋은데 남들 생각도 좀 해줘야 되지 않느냔 말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자는 2년, 여자는 1년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하고 이후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배낭여행을 많이 한다.
가는 곳마다 가격을 심하게 깎고 예의 없는 짓을 많이 해 아예 이스라엘인을 받지 않으려는 호스텔도 있다고.
버스에서 본 외로운 건물, 무서운 이야기가 숨어있는 호텔일 것 같다.

나는 중간에 앞에 앉은 아야꼬 옆자리로 옮겨가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를 섞어 대화하며 왔다.
국경 사무소, 아야꼬와 얘기 중, 그 옆에 몰려 있는  이스라엘 애들.

칠레 국경은 볼리비아에서도 넘어가 봤고 산티아고 들어갈 때도 거쳤는데 항상 짐검사가 심하다.
나 보고 '음식 없어요?'하길래 좀 찔렸지만-라면, 햇반 등등- 없다고 하니 그냥 보내줬다.
아빠 짐을 펼치려 하기에 'Mi Padre' 하고 웃어줬더니 무사 통과, 역시 남자보다는 여자가 여행하기 편하다.

9시 30분에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자 삐끼 아줌마들이 달려든다.
아야꼬를 따라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호스텔에 갔더니 도미토리 밖에 없다고 해서 아야꼬는 거기 있어라 하고 우리는 아까 삐끼 아줌마한테 받은 전단지 보고 찾아갔다.
그냥 가정집에 묵는 민박 같은 것, 일인당 5000칠레페소니 싸긴 한데 벽이 얇아 물소리, 말소리 다 들린다.
손님이 우리 밖에 없으니 상관 없긴 하지만.

아줌마가 또레스를 투어로 할 거냐고 설명을 잔뜩 한다. 산장을 예약하기 힘들 것 같다고.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내일 하루 쉬면서 알아보고 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