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7. 14:17

남삐 마을을 떠나다

새벽 어둠 속에서 얇은 벽 너머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렸다.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 돼지 멱 따는 소리.

어제 의논하기를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하기로 했는데 그 돼지를 잡고 있는 모양, 그런데 왜 우리집 옆에서...

불쌍한 돼지의 신음 소리에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와보니 그 새 돼지 다리 네 개를 한 데 묶어 놓았다.

우리가 슈퍼에서 보던, 공장에서 찍어나온 듯한 고기와 달리 이렇게 살아있는 생명을 먹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세수하고 빈둥대다 이장님 댁으로 가보니 어두운 집안에서 돼지 해체 작업이 한창이다. 나뭇가지를 잔뜩 깔아놓고 돼지 배를 가르고 고기를 부위별로 분리하고 있었다. 부인들은 물을 끓이고 아이들도 덩달아 신나서 마구 뛰어다니고.

역시 우리의 기사 아저씨들이 고기를 얻어다 요리를 시작하였다. 돼지고기 내장탕(?) 

이건 바베큐, 나무를 엮어 만든 그릴이 예술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고기가 구워지자 먹어보라고 한 점 준다. 아, 이게 아까 그 살아움직이던 돼지의 살이구나. 먹어보니 어떻게 양념을 해서 구웠는지 짭잘하고 연기 냄새도 나고 맛있다.   

바베큐를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랍(고기와 채소를 잘게 썰어 양념을 넣고 무친 라오스 요리)을 만들기 시작한 미스터 폰.

칼질을 이어받은 쑥사반과 정부장님.

고 

그래서 완성된 랍. 그동안 식당에서 먹은 랍보다 훨씬 맛있었다.

마당에 차양을 치고 잔치를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

아직 음식이 다 준비 안 되어 막간을 이용해 소싸움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장님이 사나워 보이는 소를 데리고 오셨다. 

상대방 소가 겁을 먹고 도망가버려 싱겁게 끝나버렸다.

 

돌아오니 진짜 마을 잔치다.

모든 마을 사람이 나와 음식을 먹고 있다.

여자와 남자는 따로 앉아야 한다.

돼지고기 요리 두 가지, 고깃국, 각자 갖고 나온 밥과 숟가락, 보기에는 볼품 없어도 어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식사.

 

라오라오가 몇 바퀴 자리를 돌고나자 이제 마을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말은 안 통해도 손짓, 몸짓으로 그 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는데 다큐멘타리 주인공 고샘이 먼저 눈물을 보이기 시작한다.눈물은 전염되는 것이어서 촬영팀 모두 눈이 빨개졌고 그동안 얼굴이 익은 마을 주민들도 같이 눈물을 쏟았다. 몽족 사람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고 했는데 이 분위기는 뭐지? 특히 어제 악기를 연주했던 어르신께서 '나 좀 한국에 데려가 주면 안 돼"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말씀하신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먼 곳에 살기로 스스로 결정한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큰 길 가까이 나가서 살 수도 있지만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가진 사람이 왜 없겠는가, 멀리 멀리 가 보고 싶은 사람이 왜 없겠는가?

적절한 교통수단이 없기에 고립된 삶을 영위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는 처음에는 불청객이었는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친구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가지 결심한 게 있다.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면 다시 이 곳에 와서 상영회를 해야겠다. 캄캄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스크린을 치고 영화를 보여주면 화면에 나오는 자신들의 모습에 즐거워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벌써 눈 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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