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5. 22:10

D+123 070716 시리아 알레포-터어키 괴레메, 길고 긴 여정

알레포에서 국경을 넘어 터어키 안타캬(Antakya)까지 가는 버스는 새벽 5시에 출발한다.
네 시에 일어나 나왔다. 새벽 거리는 인적이 뜸하다. 국제버스터미널이 멀지 않아서 다행.
버스를 타려다 하마에서 만났던 윤-이 커플을 다시 만났다. 무척 반가웠다.
국경을 넘는 건 지루하고 신경쓰이는 일이라 일행이 있으면 좋다.
라타키아(Lattakia)는 습하고 별로 재미없었단다. 가는 기찻길은 좋았다고.

버스는 달리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터어키에서 온 보따리 장수가 많은 버스.
6시 반에 국경 도착, 차장이 여권 가져가고 내렸다 다시 타라고 하더니 출국 수속도 없이 여권에 도장 찍어왔다.
터어키 국경 넘어가자 이번엔 짐 검사, 짐칸에 있는 짐을 다 내려서 열어보라고 하더니 쌀, 차(tea)등이 도랑으로 버려진다.
길 옆 도랑은 버려진 상품으로 가득했다. 아깝네, 물건 주인은 얼마나 더 아까울까?
입국 수속도 금방 끝났는데 가다 경찰이 또 차를 세우더니 다시 짐 검사. 그러느라 시간 다 갔다.
이래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 같다. 이른 아침에는 검사가 좀 덜하고 다른 사람도 없어서 빨리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구경 마을에서 내리는 어떤 아저씨가 사탕을 하나씩 나눠준다. 짐을 잘 숨겨 넘어왔다는 얘긴가?

9시에 안타캬 버스 터미널에 도착, 내리자마자 버스 회사 직원들이 달려오더니 어디 가냐고 묻는다.
나는 카파도키아에 가려했는데 지금 버스가 출발하니 바로 가잔다.
환전도 하고 버스 가격도 비교해 봐야하는데...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버스는 출발해버렸다.
터어키 주요 교통수단은 장거리 버스고 경쟁이 심해 서비스가 좋다더니 경쟁이 심하긴 심한 것 같다.
윤-이 커플은 안타캬에 좀 있겠단다. 또 어디선가 만날 수 있겠지?
환전하고 버스 시간 알아보니 직접 가는 버스는 오후 2시에나 있다.
아다나(Adana) 가서 갈아타면 된다고 해서 우선 거기까지 가보기로 했다.

터미널-오토가르라고 불리는-풍경,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와 비교할 수 없이 좋다.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거의 문화적 충격을 느끼고 있다.
무척 넓은 땅덩어리라는 느낌이 팍 든다. 왼쪽에 바다를 끼고 잘 닦여진 도로를 달리고 있다.
제복을 입은 차장이 뜨거운 차도 따라주고 간식도 준다. 흠, 이베리아 항공보다 서비스가 훨 낫군.
2시간 반 달려서 아다나 도착. 다시 니데(Nigde)까지 버스를 탔다.
바닷가를 벗어나 내륙으로 향한다. 고지대인지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휴게소에서 본 터어키 국기.
중동여행하며 메마른 땅만 봤는데 나무가 자라는 산을 보니 한국 풍경이 생각난다.
차장도 여자, 여자가 공식적인 직업을 갖고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
니데에서 네브쉬르(Nevsehir)까지 다시 버스, 버스가 점점 안 좋아진다. 5시 반 네브쉬르 도착.
여기서는 돌무쉬(터어키 마을버스)타고 괴레메(Goreme)까지 가야한다.
안타캬-아다나-니데-네브쉬르-괴레메까지,2시간 30분, 3시간, 1시간 30분, 15분, 차를 네 번 갈아타고 7시간이나 걸려 괴레메에 도착했다.
돈도 37.5 터어키리라(YTL)이나 들었다. 안타캬에서 네브쉬르까지 오는 버스는 25리라였는데 말이다.

터어키 남자와 결혼한 한국분이 운영한다는 마론 펜션을 찾아가는데 길가에 앉아있던 어떤 아줌마가 방 있다고 부른다.
방 2개 밖에 없는 작은 펜션, 이혼하고 아줌마가 혼자 경영한단다.30달라고 했는데 20까지 해준단다.
우선 마론 펜션에 가보고 다시 오기로 했다.
마론 펜션에 갔더니 모두 한국인이다.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 만나는 건 여행 떠나고 처음이다.
카파도키아 명물인 동굴 안에 있는 펜션인데 동굴 특성상 컴컴하고 습기가 많은 것 같다. 싱글룸 25인데 무척 좁고.
아까 그 방으로 가기로 한다.
1층엔 부엌과 아줌마가 지내는 방이 있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멋진 침대와,
넓은 창으로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방이 있다.
터키풍의 벽걸이.
벽을 뚫어만든 수납공간. 200년된 집이라는데 동굴보다 이쪽이 훨씬 낫다.

아까 네브쉬르 오토갈에서 일본인 미노루를 만났다.
도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 여름 휴가 10일 동안 터어키를 여행하고 있다고.
어차피 서로 혼자니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약속을 했다. 빨리 씻고 나가야지.
저녁 바람이 차갑다.
카파도키아의 명물 버섯 바위가 보인다.
화산으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돌이 풍화작용을 거쳐 이런 지형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이 거기 다시 구멍을 내 고유한 풍경과 문화를 만든 곳이다. 내일부터 펼쳐질 풍경이 기대가 된다.

이 동네의 명물 항아리 케밥을 먹으려고 SOS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미노루와 약속을 했다.
와, 모든 손님이 한국인이다. 단체 관광객도 있고. 한국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곳이긴 한데 이런 광경 정말 낯설다.
혼자 미노루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국에서 식당에 혼자 앉아있는 듯한 서글픈 기분이 든다.
미노루는 30분 늦게 도착했다.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이 다른 곳에도 있어 거기 갔다가 늦었단다.
항아리 케밥을 시켰다.

바로 구운 빵이 먼저 나오고,
터어키 입성 기념으로 에페스(터키 유적 이름을 딴) 맥주도 한 잔 한다.
항아리 케밥이 나왔다. 항아리를 스스로 깨야 하는데...
난 물론 한 번에 깨끗하게 깨버렸다.
해물 케밥, 새우가 야채가 잔뜩 들었고 스파이시한 양념이 정말 맛있다.

미노루는 재밌는 친구다.
4년전 한국에 갔는데 아침엔 닭갈비, 점심엔 돈갈비, 저녁엔 돼지갈비 먹었단다. 갈비가 정말 맛있었다고.
명동에서 배용준 스타일의 안경 맞췄는데 2시간 걸린다고 해서 한증막 가서 때밀고 왔단다.
한국 배우를 나보다 더 많이 안다. 전지현, 차태현 나오는 '엽기적인 그녀'를 제일 재밌게 봤고, 이영애가 제일 좋고 그 다음에 손예진이란다.
나 또 이렇게 한국에 관심 많은 일본인은 처음 만난다. 오랜만에 한국 얘기도 하고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움직인데다 맥주까지 마셨으니 바로 쓰러졌다. 터어키 첫날이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