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30. 21:33

D+18 070402 mon 트럭, 모래구덩이에 빠지다.

여행을 시작한지 아직 20일도 안 되었다.
그런데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썼고 아주 오래전부터 떠나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새롭기 때문이겠지.
부쉬캠프라 물이 없어 얼굴은 물티슈로 대충 닦았고, 간이 화장실은 너무 더러워서 가지 못했다.
아랫배가 빵빵해 오는데 얼마쯤 더 버틸 수 있을까?

원주민들이 그려놓은 벽화를 보러 갔다.

난간잡고 올라가기, 내가 좋아하는 거다.

높긴 높구나.

근데 이건 뭐? 이게 벽화야? 잘 보이지도 않네.

풍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자, 빨리 다음 캠프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가야할텐데...
트럭이 갑자기 멈춘다.

뭔일?

어제 내린 비로 길이 모래밭으로 변해버렸는데 트럭이 거기 빠져버렸다.
심바가 아무리 차를 움직이려 해도 안 된다.
오버랜드 투어 브로셔에 '트럭을 모래에서 건져내는 것이 가장 큰 경험일 수도 있다'라고 나와있었는데 그게 현실에서 일어났다.
니키 말로는 극히 드문일이라는데.

모두들 내려서 흙을 파내기도 하고 돌로 바퀴를 고이기도 하고 트럭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아무리 밀어도 안 된다. 바퀴가 헛돌기만 하고 그럴 수록 모래에 더 깊이 파묻힌다.
동네 사람들도 나와서 도와준다. 뭔가 도구가 필요할 것 같다. 지렛대 같은거.

저기 울타리 발견.

울타리에서 나무 기둥을 뽑아왔다.

차 밑에 괴고,

모두들 힘을 합쳐,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써서,

겨우 차를 모래에서 구출해낼 수 있었다. 한시간 반의 사투였다.
트럭이 모래에서 빠져나오자 너무 기뻤다. 우리가 힘을 합쳐 해낸 것이다.
이 오버랜드 투어는 국토대장정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가지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서로 도우면서.
참, 즐겁다, 그래, 즐겁다. 사소한 마찰이 있고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같이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요른이 도와준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좀 걷어주자고 했다. 가이드 니키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10불씩 걷어주었다.
어쨌든 울타리도 망가뜨렸고 이건 동정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논두렁에 차가 빠졌을 때 도와준 마을 사람들에게 막걸리나 드시라고 드리는 것처럼 말이다.
니키는 우리가 쉽게 빠지는 감상적인 동정을 경계하는 것 같은데 물론 경험이 많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가끔 보면 너무 쌀쌀맞다.
그런데 차가 달리기 시작하니 잊고 있었던 아랫배의 감각이 느껴진다.
으으~

어두워지고서야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젯밤 나무 뒤에 숨어서 볼일 본 후 15시간만에 화장실에 갔다. 오, 놀라워라, 괄약근의 힘!

오늘 누울 자리를 만들고 48시간만에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씻는다는 게 사람에게 의미하는 게 뭔지, 물이 없는 환경의 사람들은 안 씻고도 잘 사는데 콸콸 나오는 수돗물에 길들여진 우리는 하루라도 안 씻으면 컨디션이 엉망이 된다.

하늘이 보이던 샤워장.

오늘 심바가 제일 수고했다. 빨간 티셔츠 심바, 심바를 만나러 온 마을 사람.
돌이 발등에 떨어져서 아프다고 구급상자를 가져다가 어떤 약을 발라야 되냐고 묻는다.
저 하얀 상자, 허접한 구급상자군. 쓸만한 소염연고가 없다. 이럴 땐 파스가 딱인데 챙겨오지 못했다.
조엘 커플이 동남아제 호랑이 연고를 가져온다. 에고,정식 의사가 이런 걸 권할 수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제 심바랑 얘기를 나누었다.
짐바브웨인, 고향은 모잠비크 국경 쪽의 작은 마을 이란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와이프랑 산단다. 이번이 올해 처음 나오는 투어란다.
일 안 할 때는 고향 가기도 하고 하라레에서 남아공 비자를 기다리며 애들은 위한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한단다.
와이프는 원래 웨딩플래너 같은 일을 했는데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 쉬고 있고,
아이를 원하는데 세 번 유산했고 안 생겨서 이제 traditional medicine 을 시도해 볼거란다.
그렇다.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티비에서 보는것처럼 줄줄이 애를 낳는 건 아니다.
이렇게 몇 달 여행한다고 해서 아프리카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여긴 모기가 많다. 말라리아 위험지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방약 라리암을 열심히 먹고 있고 아직까지는 아무 부작용이 없다.
하지만 아주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트럭에서는 눈 감고 자려 해도 잠도 안 오고 온 몸이 무겁다.
뭔가 서양애들한테 체력적으로 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기를 덜 먹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