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5. 10:10

D+191 070922 꾸스꼬 돌아가는 길

9시 30분이 체크아웃 시간이라니 기차는 두 시에 떠나는데 뭐해야되나...
두 명의 청년, 워싱턴과 움베르또가(한 명은 미국 이름, 한 명은 이탈리아 이름이라니 진짜 weird하다)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사 갖고 온 영어로 된 스페인어 교재를 주었다.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만 힘들고 공부도 안하니 어딘가 버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얘네 영어공부나 하라고 준 것. 영어를 할 줄 알면 아무래도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오니 갈 데가 없다.
배는 고픈데 투어리스트 레스토랑 아침 메뉴는 10솔이 넘어갈 게 뻔하고.
결국 광장 벤치에서 졸다 꺠다 하며 두 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밥먹을 곳을 찾아 헤매다 우리나라 함바집 같은 식당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 걸 가리키며 얼마냐고 하니 5솔.
옥수수 맛이 나는 커다란 갈빗대가 들어있는 수프가 나오고,
주요리는 이것, 페루 음식답지 않게 기름도 별로 없고 야채가 많이 들어 담백하다.  거기다 양파, 고추로 만든 피클까지 반찬으로 주니 완전 만족. 후식도 주는데 미지근한 포도 쥬스 같은 것.
자 이제 점심값 아꼈으니 분위기 좋은데 가서 커피나 마시며 일기를 써야지.
개울 옆 ToTo 레스토랑에 갔다. 발코니에 앉으니 분위기는 좋은데 안에 단체 손님이 있어 소다와 쥬스 밖에 안 된다고.
쥬스보다는 물에 더 가까운 걸 마시며 두 시간 정도 앉아있었다. 역시 이건 자리 값이지.

누가 옆에 오더니 반갑게 'Ola!' 한다. 어, 전에 만났던 사람인가?
아, 어제 마추피추에서 걸어내려오며 만났던 멕시코인 부자가 있었는데 그 아버지다. 무릎이 아프신지 자꾸 뒤에 처져 나랑 똑같은 속도로 걷던 아저씨, 나중에는 아들이 부축하며 내려왔는데 그 때 몇 마디를 나눴었다.
내가 이후 멕시코에 갈 거라고 했더니 주소를 적어준다.
Hermosillo 라는 미국 국경에서 400km 떨어진 곳에 사는데 멋진 해변이 있다고 꼭 한 번오란다.
아들은 참 잘 생겼는데 그런 말 안 하더니, 역시 나는 아저씨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타입인가보다.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나에게 먼저 메일을 보내 준 몇 명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겨우 기차 시간을 기다려 오이에이땀보까지는 잘 왔는데 많은 버스 중 올 때 타고온 꾸씨 회사 버스가 없다.
여기서 집에 못 가는 거 아니야, 걱정하며 돌아보는데 어떤 사람이 내 이름이 씌여진 종이를 들고 있다.
그거 내 이름이에요, 지금 갈 건지, 좀 있다가 갈건지 묻는다. 지금 간다고 하니 어떤 차를 가리키며 타라고 한다.
미니 버스 맨 앞자리, 나중에 더 타는 사람이 있어 가운데 자리로 옮겨서 좀 불편했지만 앞이 잘 보이니 좋다.
그래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산에 글자 새기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무가 없어 새기기도 쉬울 것이고.
저 숫자가 무엇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란다. 712, 713 학교도 있는데 학생들이 석 달마다 올라가 색칠을 다시 한다고.
중간 중간 마을을 지난다. 세 발 달린 택시도 달리고 있다.
꾸스꼬가 가까워 오자 산 위의 눈이 보인다. 점점 높은 지대로 올라가고 있는 것.

2시간 후 꾸스꼬에 닿았다. 그런데 아르마스 광장에서 내리라고 한다.
난 분명 호스텔 앞까지 태워다 주는 걸로 알고 표를 샀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아 버스는 그냥 꼴렉띠보.(여럿이 나눠 타고 가는 택시 같은 것)이고 투어 버스가 아니었던 것.
안 내리고 버티니 꾸스꼬를 한 바퀴 돌며 다른 사람들 다 내려주고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와서 내리라고 한다.
이 아저씨랑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투어 사무실과 얘기해야지.
나를 태워주고 얼마 받았냐고 했더니 3.5달러 받았단다. 왕복 18달러를 냈으니 9달러만큼 태워줘야 하고 그건 당연히 호스텔 문 앞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역시 투어 회사 같은 걸 이용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 터무니 없는 가격이다. 여행이 길어져서 그런지, 여기 물가가 싸서 그런지 발로 뛰는 게 점점 적어지고 편한 길만 가려고 하는 경향이 생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내일 회사 가서 따져야지.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이미 깜깜한 길을 걸어 돌아왔다. 어제 산행의 후유증인지 무척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