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 10:59

D+232 071102 아, 심심하다, 몬테비데오

느지막히 일어나 라면을 끓여먹고 나왔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조용하다. 가게들도 다 닫혀 있다. 이상하다, 오늘 분명 금요일인데...
뮤지엄 앞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오늘 휴일이란다. 
이런, 배낭 여행자에게 휴일은 쥐약과 같다. 박물관도 다 닫고 가게들도 닫았으니 어디 가서 뭐하고 노나?
알고 보니 '죽음의 날'(Dia de los Muertos)이다. 꽃을 들고 묘지에 찾아가는 날, 우리로 치면 한식 같은.
어쩐지, 어제 성당 미사가 그렇게 화려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자지 말고 미술관을 돌아볼 걸, 문화의 나라고 미술관도 공짜라고 그랬는데 너무 아쉽다.
목적지 없이 걷다 만난 벼룩 시장. 집에서 쓰다 필요 없는 것을 들고 나온 진짜 벼룩시장, 쓸만한 물건은 전혀 없어 보인다.
몬테비데오는 라플라타 강(Rio de la Plata) 하구에 발달한 도시.
강가에 아파트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우리나라처럼 강변을 바라보는 아파트는 비쌀까?

거리가 텅텅 비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쨌든 메르카도에 가보았다.
다행히 여기는 사람도 많고 북적댄다. 그래, 휴일에는 외식을 해야 하니까.
시장이라기보다는 고기를 눈 앞에서 구워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한 식당가.
아직 배가 안 고프다. 강가에 가서 한참을 걷고 호스텔에 가서 시간을 죽이다 배고픈 낌새가 오자마자 다시 시장에 갔다.
소의 모든 부분이 구워지고 있다.
웨이터들이 호객행위도 한다. 1/2메뉴가 있는 곳에 들어가 Asado rico 라고 rib부분을 시켜봤다. 245페소(10000원)
크긴 크다. 그런데 갈비뼈에 붙어 있어 먹기가 힘들고 먹다 보니 핏물이 너무 많이 나온다.
-저...다시 좀 익혀 주실래요?
역시 나는 고기 체질은 아닌 것, 어설픈 입맛으로 고기는 아르헨티나가 나은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아저씨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 직접 보며 먹는 재미는 있었다.

같은 거리를 계속 걷고 있으니 지겹다.
이따 밤에 갈 FunFun바에 가봤는데 아직 문을 안 열었다.
독립 광장이 제일 중심가인데 이 주변에서 한국어 간판을 세 개나 발견했다.
민박집일까? 여행자가 묵는 곳은 아닐 것 같다.
한국 식당 가야금,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한국음식이 별로 땡기지 않는다.
오늘도 맴돈다, 독립광장 주변을.
원래 우루구아이의 국호는 '동방우루구아이공화국'
심심해, 우루구아이의 첫인상, 마지막 인상까지 심심해.

또 호스텔에 돌아와 공짜 인터넷을 열심히 하다 8시에 FunFun 다시 가 보았다.
지금 막 문을 열고 있는데 쇼는 11시반에 시작한단다. 그럼 그 때 다시 와야지.
배는 안 고팠는데 낮에 먹은 고기가 느끼해 비빔면을 먹고 11시에 나왔다.
호스텔에 공짜 인터넷과 부엌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더 심심했을까?

어느새 바에는 사람이 가득찼다. 혼자 왔다고 문간에 앉으란다. 공연 시작하면 보이지도 않게 생겼다. 나갈까 하다가 그럼 우루구아이에서 한 일이 하나도 없쟎아,  꿋꿋이 앉아 있었다.
또 우루구아이 사람들은 탱고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니라 몬테비데오에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니 어떤지 궁금.
어떤 중년 커플이 내 바로 옆에 앉더니 아저씨가 Miss하고 부른다.
어디서 왔냐고, 자기네는 페루에서 왔다고.
-페루 가봤어요, 정말 좋은 곳이었어요.
난 맥주만 한 병 시켰는데 아저씨네 안주, 과자랑 치즈, 계속 먹으란다. 역시 맥주는 안주랑 먹어야 제 맛.

11시 반이 되자 아코디언, 기타 반주자가 나타나고 음악이 시작된다.
아저씨가 웨이터를 불러 협상을 하더니 'Vamos!'(갑시다)
바로 무대 앞 좋은 자리로 옮겨갔다. 신난다.  누군가 예약하고 안 온 자리인 듯.
탱고는 그저 그랬다.  노래하는 여자 목소리가 너무 걸걸했나? 라파즈 포크로레 공연 같은 감동은 없었다.
아르헨티나 가서 다시 들어봐야겠다.
1시쯤 페루 부부가 나오길래 같이 나왔다. 조용한 도시라 밤에 돌아다니는 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피곤하다. 오늘 한 일도 별로 없는데 왜?
몬테비데오는 내게 조용한 도시, 심심했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몬테비데오 탱고 공연, FunFun 공연 50페소(2200원)음료수는 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