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2. 09:47

D+258 071128 파타고니아를 떠나며, 우슈아이아-뿐따아레나스 이동

아침식사가 7시 30분부터라고 해서 못 먹고 가겠다 했는데 7시에 짐싸서 나오니 벌써 차려져 있다.
부지런한 호스텔이네, 잠깐 동안 커피, 쥬스, 크로와쌍을 최대한 많이 먹고 나왔다.
뿐따 아레나스 가는 버스는 7시 45분에 출발, 손님은 달랑 여덟 명.
습관처럼 맨 앞 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어떤 아줌마가 앉았다. 편하게 혼자 앉게 뒤로 갈까 하는데 아줌마가 뒤로 간다, 좋다.
바로 3일 전 봤던 풍경을 되짚어 가려니 재미가 좀 없다.
그런데 양 떼.
역시 파타고니아의 주인은 너희들이었구나. 지나가는 차가 꼼짝 없이 기다리고 있다.
양치기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이는데 어디서 양떼를 돌보는 걸까?
다시 돌아오는 그 날까지 양들아 안녕,
파타고니아여 안녕. 다시 올 때까지 이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를...

버스 여행은 지루했으나 그래도 중간에 국경도 건너고 바다도 건너 그나마 나았다.
3일 전에는 대디랑 이 길을 함께 했었는데...
버스는 10시간을 달려 6시에 뿐따 아레나스에 닿았다.
산티아고 가는 비행기는 새벽 4시 20분에 출발한다. 왜 그 시간에 출발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호스텔에 가서 하룻밤 숙박비를 내고 새벽에 나오기도 아깝고 시내에서 시간을 때우다 공항으로 미리 가야겠다.
공항도 썰렁할 게 예상되니 될 수 있으면 늦게 출발하는 게 낫겠고
여느 남미 도시처럼 시내 중앙에는 광장.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돌아다녀야 하니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여행사를 찾아가 공항으로 가는 방법을 물으니 셔틀은 벌써 끊어졌고 택시를 타야 한다고.
인터넷 까페를 찾아가다 본 한국 옷가게, 이 곳의 패션을 보니 우리나라 옷이 훨씬 다양하고 아기자기해 인기가 좋을 것 같다.
인터넷을 두 시간 하고 허름한 가게에서 핫도그를 먹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아직 8시 반 밖에 안 됐다.
마젤란 해협이 발견되어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배들이 이 곳을 지나갈 때는 무척 번성한 도시였는데 1914년 파나마 운하가 뚫린 이후 다시 조용한 도시가 되었다는 뿐따 아레나스, 썰렁하다. 앉아있을 만한 까페도 발견할 수가 없다.
어둡기 전에 공항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공항, 더 썰렁하다. 직원도 아무도 없고 불도 다 꺼져 간다. 청소하는 분만 걸레를 밀며 왔다갔다 하고 있다.
문 닫은 까페 테이블에서 일기를 쓴다. 실내가 어두워져 남쪽 땅의 긴 저녁해에 비춰 쓰고 있다. 
지금은 청소 아줌마라도 있는데 이따 아무도 없으면 무서울 것 같다. 추울 것 같은데 그냥 침낭 꺼내서 아무데서나 자도 될까?

75일간의 남미 여행, 본 것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짜증낸 적도 별로 없고 재미있었다. 
나중에는 식민지 풍 도시나 성당 등에 질리기도 했지만.
또 온다면...글쎄, 콜롬비아 부터 시작해야 하나, 아니면 볼리비아부터 거꾸로 베네주엘라까지 올라가야 할까?
그러나 그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10시가 넘어 실내가 완전히 어두워지자 불이 몇 개 들어온다. 화장실이 제일 환하다. 
2층에 올라가 긴 의자에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어느새 잠이 들어 맞춰 두었던 삐삐 소리에 꺤 시각이 세시, 이런 알람 안 맞춰 놓았으면 비행기 놓칠 뻔했다.   
아까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던 공항에 사람이 북적북적한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 있다 비행기를 타러 온 걸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일까?
아, 피곤하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어디선가 떨어뜨려 다 깨져버린 시계,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으니 다행.
눈과 산, 빙하, 양떼의 세계 파타고니아를 떠나는 비행이 곧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