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3. 10:54

D+264 071204 인류학 박물관, 멕시코 역사와 문화를 엿보다.

멕시코 시티에 머문지 벌써 6일째다.
슬슬 떠나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호스텔이 내 집 같고 도시도 익숙해져 떠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낯선 도시로 배낭을 메고 가야 하는게 여행자의 본분인데 가끔은 정착민이 되어보고 싶은 것이다.
타마라는 오늘 태평양 연안의 리조트 도시 Puerto Valleta로 떠난다. 해변에서 서핑을 하며 며칠 쉰 다음 과나후아토(Guanajuato)에 가서 어학연수를 받을 예정. 이후 중미를 9개월쯤 여행하고 우루구아이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이 곳에 오니 까만 머리에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는 타마라, 스위스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 눈에 너무 잘 띄었단다.
아직 어리버리해서 좀 걱정이지만 스페인어도 할 줄 알고 명랑한 성격이니 금방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호스텔 주인 앙헬과도 한 장. 전형적인 멕시코인 다운 큰 얼굴, 짦은 다리,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

오늘은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에 가야 한다.
타마라도 멋지다고 했고 아침을 먹다 만난 캘리포니아 중년 커플도 꼭 가봐야 한다고 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는 인수르헨떼스(Insurgentes)지하철역 모습. 둥그런 광장인데 주변 거리보다 한층 아래에 있다.
낮에는 분위기가 괜찮은데 밤에는 좀 이상한 사람들도 많고 특히 게이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경찰관들이 신기한 걸 타고 있다. 몸을 숙이며 이동하고 똑바로 서면 멈추는 것 같다. 어떤 동력을 사용하는 걸까?

박물관까지는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인데 조나 로사를 통해 슬슬 걸어가보기로 한다.
조나 로사는 레스토랑, 호텔, 쇼핑가 등이 모여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같은 곳이다.
멕시코 시티 한인촌이 이 곳에 있는지 한글 간판이 많이 보인다.
당구장까지 있다.
멕시코에서 한인 마피아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마피아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워낙 마피아가 많은데 중국 마피아, 멕시코 마피아 등은 주로 마약을 거래하고 한국 마피아는 상권을 장악하고 있단다.
매운 걸 많이 먹어 한국 음식이 특별히 땡기지 않기에 오늘은 한국 식당도 그냥 패스.
큰 거리는 대개 가운데 가로수가 있는 모습이다.
차풀떼펙 공원 안의 동상.
공원 안의 호수, 호수에는 오리배가 있다는 것도 세계 공통. 주변에는 솜사탕, 치차론(돼지껍질) 등을 파는 노점상이 가득하다.
이 공원은 1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멕시코 시티 시민들의 휴양지로 사랑받고 있다고.
쌍둥이 빌딩.
드디어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에 도착, 입구의 석상부터 포스가 다르다.
박물관 앞에서 전통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
학생 할인도 안 해줘 45페소를 고스란히 냈다. 4천원, 재미없기만 해봐라,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중앙 안뜰의 거대한 캐노피가 우선 눈에 띈다. 한 개의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중심부에서는 물이 떨어진다.
높이는 11m, 캐노피 길이는 84m, 그러지 않을 줄 알면서도 혹시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전시실은 캐노피를 중심으로 ㅁ자 형으로 되어 있는 2층 건물.
1층에는 멕시코 역사의 여러 문명-올멕, 마야, 아즈텍-에 관해 전시되어 있고 2층은 여러 부족의 생활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1층 전시실과 2층은 서로 댓구를 이루는데 예를 들면 1층에 마야 문명의 도시 빨렝께에 대한 전시가 있으면 바로 윗방에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는 마야 후예들의 생활상이 전시되고 있는 것.
결론은, 전혀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방대한 전시품도 그렇고 정리도 무척 잘 해 놓아 각 문명의 발생, 소멸, 각 부족의 생활상 등을 잘 알 수 있었다.
 
2층부터 돌아보았다.
'멕시코 의학의 역사'라는 그림.
'죽은자의 날'을 위한 제단.
죽은자들은 1년에 한번씩 이승의 친인척을 방문할 수 있는데 산 자들은 꽃, 진수성찬, 그들이 좋아했던 걸 바치며 환영한다고.
우울한 날이 아니라 평화와 행복의 의식이란다. 우리나라 제삿날과 비슷한 의미겠다.
남미 여러 곳의 카톨릭도 그렇지만 특히 멕시코에서 카톨릭은 전통 문화와 결부해 독특한 색채를 띄는 것 같다.
장인, 예술가 등은 죽음을 유머러스하고 심지어 동경의 대상으로까지 묘사하는데 이 날을 위해 제작된 물건들은 일년 내내 상점에서 팔린다.
멕시코 인들은 정말 죽음하고 친하다. 유명한 시인인 옥따비오 빠스는 '멕시코는 죽음과 친하고, 죽음으로 농담을 하고, 죽음을 애무하며, 죽음과 같이 자고, 죽음을 축하한다'라고까지 말했다고. 정말 이해가 되는 얘기다..
반대쪽에서 본 캐노피, 위에서 걸어서 당기고 아래의 기둥이 받치고, 양쪽으로 지지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불안해...
전시실의 모든 평면 티비는 LG 것이다. 다른 나라 박물관에서도 몇 번 본 기억이 난다.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LG.
꽃과 해골, 부엉이. 너무 특이한 이미지.

1층으로 내려 왔다.
떼오띠우아깐이 쇠퇴하면서 떠오른 뚤라 사람들이 만든 아뜰란떼라 불리는 조각상.
그들은 군사학의 전문가였으며 이 인물상은 사원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다고.
카이로 국립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돌들의 향연. 그래도 거기보다는 훨씬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태양석(Piedra del Sol), 직경 3.6m, 무게 24톤.
1790년에 쏘깔로에서 발굴된 이 돌은 아즈텍 세계의 생성을 설명하고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에게 멸망당한 역사도 예언되어 있을까?
한국인 단체 관광객 발견, 개별 여행자를 만나면 반가울텐데 단체니 그냥 모르는 척 피해 다녔다.
이건 어느 문명이었더라? 드디어 머리에서 쥐가 나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
아마도 아즈텍 인들의 수공예품.

번성했던 아즈떽 문명이 몇 천명(몇 백 명인가?)의 정복자들에게 멸망당하고 원주민들은 2등 국민으로 차별을 겪다가 19세기에 독립을 하게 되고 지금은 자신들이 아즈떽 문명의 후예라고 생각하고 정복자 꼬르떼스는 역적 취급을 받고 있다.
그래서 멕시코-떼노츠띠뜰란(아즈떽 문명의 수도)여 영원하라, 는 구호가  나오게 된 것.
페루, 볼리비아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긴 식민지 시절을 겪으면서 스페인, 카톨릭 문화가 많이 남아있지만 진짜 아메리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문 닫는 시간까지 봐도 다 못 보겠으니 이쯤에서 나가야겠다.
박물관 이 쪽은 공사중, 아무래도 불안해...
오늘도 공부 많이 했다.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남의 나라 역사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아 좀 찔린다.
한국 가면 중앙 박물관 같은 데도 가고 그래야겠다.
자라나는 꿈나무들도 관람 왔다가 돌아가는 길.

배가 고파 노점에서 햄버거 하나 사 먹고 나니 어둑해져서 걸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 hidalgo 가는 버스가 오길래 탔다.
알라메다 공원 앞에 내려 예술 궁전 앞에 앉아 있는데 어떤 남자애가 오더니 마야 달력으로 내 생일을 찾아주겠단다.
-공짜야?
-그럼.
생일을 말해 주니 마야 달력으로는 4/sol(태양)이고 어쩌고 저쩌고, 좋은 소리를 많이 해준다. 마야 달력이 어떻고 정화하는 의식이 어떻고, 너무 열렬히 얘기해서 약간 사이비 같기도 했는데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그리고 헤어지는데 왜 그랬는지,'팁 줘야지?'하고는 10페소를 내밀었다. 괜찮다고 거절한다. 
그 순간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U'ciyan이라는 이 사람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그걸 나는 돈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시 돈을 받고 정말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안 좋았다. 그 동안 친절인 줄 알았는데 돈을 요구한 적도 많았지만 그냥 순수한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도 많았는데 오늘따라 내가 왜 그랬을까?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서일까? 나도 어쩔 수 없는 돈 뿌리고 다니는 여행자에 불과한 걸까?호스텔에 돌아와 적어준 이메일 주소로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이메일을 보내고서야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U'ciyan도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인터넷 사용하고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오늘은 안또니오 말고 다른 젊은 남자가 리셉션에 있다.
무슨 영어 문서를 번역하고 있길래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는 어디서 배웠는데?
-학교에서 조금 배우고 미국 여자 친구를 일 년 정도 사귀었거든. 지금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여기서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거야.
역시 외국어 습득에는 친구를 사귀는 게  좋은 방법, 이성 친구를 사귀는 건 제일 좋은 방법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은데 어떨까?
-응, 요즘은 외국인 교사가 많지.
-월급이 아주 좋다고(decent) 들었어.
-그럴거야. 하지만 난 단지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잘 대접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런데 모두 백인 원어민을 원한다며? 나같은 영어 하는 멕시코인들은 어떨까?
-잘 모르겠지만 스페인어도 같이 할 수 있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은 했어도 그럴 것 같진 않았다. 백인을 원하는 건 사실일테니 말이다.
어쩌다 멕시코 사람들에게까지 한국에서 영어 선생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떠나야겠다. 아직도 나에게는 가야할 길이 남아 있으며 낯선 길 위를 떠도는 것이 여행자의 본분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