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8. 16:54

D+84 070607 thu 세비야 축제, 알카자르, 플라멩고

아침 식사는 커피와 씨리얼 뿐이었다. 영국과 달리 safety box 나 Deposit 도 없고.
역시 스페인은 이렇게 대충(?)하는게 어울린다. 그만큼 자유로운 것 같기도 하고.
호스텔 문을 나서니 벌써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군인들이 줄을 맞춰 지나간다.
이 뒷골목은 조용한데...
이게 바로 까떼드랄.
성당 가까이 오자 완연한 축제 분위기다. 사람들이 무리지어 행렬에 참가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성당 뒷문으로 들어가 앞문으로 나오는 게 순서인 듯.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종교 축일인가 보다. 보통 인자한 예수상과는 좀 다른 얼굴이 좀더 검고 고통받고 있는 인상의 예수상이다.
(후에 남미에서 본 많은 예수상이 이렇게 생겼다.)
세빌랴의 주민들이 다 거리로 뛰쳐나오고 관광객까지 합세했으니 군중들 사이를 빠져나가기도 힘든 지경.
9시반에 성당 앞에서 애런을 만나기로 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 하다. 그냥 축제나 즐겨야겠다.
10시반쯤 되니 군인들을 마지막으로 축제 행렬이 다 지나갔다.
더워서 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나타나는 낯익은 모습.
애런이었다. 늦게 일어나서 왔는데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시계를 안 가지고 여행한다는 특이한 친구.
자 이제 본격적으로 세빌랴를 돌아볼까?
성당 외부, 내부.
유태인인 애런에게 유태교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더니 그냥 전통이라고 생각한단다.
우리가 추석, 설날에 차례 지내듯이 유태교의 명절을 지키고 전통을 따른다고.
무슨 성인의 상이라는데 왜 뒷모습을 찍었지?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 빠질 수 없는 마차.
알카자르 보러간다. 스페인은 어느 도시나 성당(까떼드랄)과 성(알카자르)가 있다.
입구.
학생은 공짜, 나. 애런은 7유로.
알함브라를 지은 사람들이 이 알카사르도 지었다고 한다. 똑같은 형식의 중앙 정원. 관광객도 적고 좀더 소박하다고 할까?
보존도 더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특이한 천장.
알함브라 궁전 위를 날던 새가 여기까지 온 걸까?
여기도 정원이 잘 꾸며져 있고,
물을 저장해 두었던 지하창고도 있다.
성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
분수는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필수.
내가 아무데나 사진기를 올려놓고 셀카 찍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애런.
음..키가 좀 크군. 나보고 왜이리 작냐고 해서 너는 대머리 아니냐고 말해주었다.
점심은 또 타파스, 애런이 시킨 또띠야, 내가 시킨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
축제 행렬이 지나간 자리를 청소차가 뒤따르며 열심히 청소하고 있다.
여기도 햇볕을 막는 차양이 있긴 한데 그라나다보다는 훨씬 덜 조직적이다.
축제가 끝난 게 아니었나보다.
새로운 행렬을 준비하는 사람들.
더운데 계속 돌아다녔더니 지쳐버렸다. 애런은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선물을 사러 가겠단다.
나는 숙소에서 잠깐 낮잠을 자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저녁, 다시 술집을 전전할 시간.
우선 하몽에 맥주.
정말 얇게 잘라 기름을 발라 준다. 아래 깔렸던 건 파인애플이었던가? 기억이 안 난다.
하몽보다 밑에 깔려서 약간 짭짤해진 그것이 더 맛있었다. 하몽은 너무 짜.
세비야의 마지막 밤이라 플라멩고를 꼭 보고 싶은데 너무 상업적인 공연장은 싫다.
애런이 바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더니 공짜로 플라멩고를 볼 수 있는 바가 있다고 한다.
골목골목을 돌아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호프집 정도 되겠다.
뚱뚱한 가수가 나와 발장단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아, 이런게 플라멩고구나. 아저씨의 기타 연주도 멋지다.
여름 한낮의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나라, 같은 유럽에 있어도 변방에 위치한 나라, 그래도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나라의 정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애런은 앞에 앉은 호주 아저씨들이랑 토론에 열중한다. 부시가 어쨌느니 토니 블레어가 어쨌느니...
내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이런 토론을 다 이해하고 끼여들기는 무리다.
부시가 미국을 20년 전으로 돌려놔서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거란다.
한 시가 넘어서야 까페를 나왔다. 어디나 이렇게 밖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
갈림길에서 애런과 헤어졌다. 둘 다 내일 마드리드에 가지만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하루를 같이 지내다 보니 이제 할말도 다 떨어지고 다시 혼자만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메일을 교환하고 굿 럭을 빌어주고 헤어졌다.
어쨌든 나는 그라나다보다 세비야가 좋다.
스페인에서 해야 하는 것들(타파스 먹기, 저녁식사 전에 한 잔하기, 플라멩고 보기)을 여기서 다 해보았고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