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30. 22:33

2014년 7월-12월 읽은 책

7월

미야메 미유키 <모방범 1,2,3)

너무 섬뜩한 이야기, 이렇게 나쁜 놈도 존재하는구나. <케빈에 대하여> 이후 또 이렇게 나쁜 놈을 만나다니...! <화차>는 감동스럽기까지 했는데 이건 그냥 끔찍할 뿐.

기 들릴<굿모닝 버마>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다니며 아기를 키우고 만화를 그리는 이야기. 군부독재 시대의 버마 상황을 유머스럽고도 진지하게 묘사했다. 근데 왜 난 이런 얘기가 재미없지?

김사과<천국에서>

20대 후반 모 양께서 요새 뜨는 소설은 김사과 스타일이라고 해서 읽어봤는데 재미는 없었음. 88만원 세대의 소설화라고 할 수 있음. 이런 책이 20년 후까지 읽힐까, 내가 20년 전에 읽던 신경숙, 윤대녕 등은 지금도 읽히나?

강신주<상처받지 않을 권리>

이 분 책 처음 읽어본다. 제목만 보고 자기계발류의 책인 줄 알았는데 묵직하고도 여러가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 언제부터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이 되어버렸나, 나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의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감동하곤 하는데 그것 또한 내가 '돈'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장하준<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한국을 떠날 때 못내 아쉬워서 인천공항 서점에서 사 온 책. 이전 책보다는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경제학이란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8월

정유정<28일>

이 작가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는 탁월한 재능이 있지만 그걸 해소하는 능력은 부족한 것 같다. 끝까지 읽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극도의 피곤이 몰려온다.

요시모토 바나나<막다른 골목의 추억>

같은 요자로 시작한다면 나는 요시다 슈이치.

서명숙<식탐>

고향에 길을 내었는데 그게 '올레'길이 되어버린 사람의 먹는 이야기.

기욤 뮈소<구해줘>

재미없음. 영화화를 노리고 썼다는 게 빤히 보이고 우연의 남발이 너무 심함.

히가시노 게이코<갈릴레오의 고뇌>

조금 썰렁한 단편 모음집. 작가가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쓴 것 같다.

남종영<북극곰은 걷고 싶다>

여행을 하고 나서 책을 내려면 이 정도는 써야 한다. 물론 기자가 취재여행을 간 것이긴 하지만. 북극에서 남극, 가라앉고 있는 섬 투발루까지, 기후변화의 현장을 직접 가서 보고 쓴 책으로 지식과 더불어 생각할 거리도 제공한다.

윤태호<미생>

도서실에 셋트가 있어 점심 시간에 한 권씩 읽었다.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읽어서 다행, 지금은 누가 가져갔는지 없어졌다.

 

9월

파스칼 메르시어<리스본행 야간열차>

아주 오래전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읽지 않은 책, 이 책이 요새 영화 때문에 뜬 건가? (출장자가 사다 준 네 권의 책 중 하나였는데 두 권은 이미 읽은 것이었고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사유와 수사가 가득한 역시 내 취향은 아닌 책. 여행했을 때 포르투갈과 리스본이 꽤 맘에 들었기에 그 거리를 떠올리며 겨우 끝까지 읽음. 영화를 한 번 봐야겠다.

피터싱어, 짐 메이슨<죽음의 밥상>

'잡식주의자의 딜레마'등 이런 주제를 다룬 책 중 가장 급진적인 것 같다. 실용적인 면 보다는 윤리적, 철학적인 면에서 육식에 접근하고 있다. 라오스의 국도를 달릴 때 갑자기 나타나는 엄마소, 아기소, 엄마 돼지, 아기돼지, 엄마닭, 병아리들은 동물 중에서는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닭똥이 묻어 있어서 동네 달걀을 안 사고 케이스에 들어있는 태국산을 샀는데 이제 다시 라오스산 달걀로 돌아가야겠다.

손미나<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작가가 어디서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에 대해 알려준 책은 하루끼의 <먼북소리>가 유일했다. 거기에 한 사람 추가하자면 손미나, 파리에 머물며 그녀의 첫소설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썼다. 신변잡기보다는 조금 발전된 이야기이긴 했지만 뭔가 아쉬운 이야기. 아니 이건 그냥 질투일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3년이나 먹고 살 걱정 없이 쓰고 싶은 책을 쓰며  살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

무라카미 하루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어느 새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하루키, 그래도 아직 변하지 않았다. 마라톤에서 종아리에 나이를 적다니 이해가 가는 조치이면서도 너무 싫다.

허영만<식객 5-17>

책나눔터에 17권까지 있어 그게 완결인 줄 알았는데 27권이 완결이다. 아직 읽을 게 남아 있어 좋지만 어디서 찾아 읽지? 주말에 뒹굴대며 읽기 좋았는데...

 

10월

Ann Patchet<Bel Canto>

위기의 한 배를 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이야기. 인질과 인질범이 음악을 매개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결말을 알기 전에 소설의 모티브가 된 페루 일본 대사관 인질 사건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슬펐다. Epilogue는 좀 황당했으나.

 

11월

서경석<나의 서양음악 순례>

음악에 빠져있는 나를 위해-사실 그건 아니고 심심해서 피아노를 샀을 뿐- 고샘이 한국 갔다가 가져다 준 책. 나를 위해 가져온 건 아니고 누가 줬는데 다 읽었다나? 20년 전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았던 <서양미술순례>에 비해 작가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림은 보면서 작가의 감상을 따라가면 되지만 음악은 그렇지 못해 감동이 덜했다. 오페라 같은데는 워낙 관심이 없기도 하고.

김연수<소설가의 일>

지난 번 출장자가 다시 오면서 급하게 책 네 권만 찍으라고 해서 고른 책, 급하게 고르느라 대충 골랐는데 이 책은 아주 재밌었다. 하루키와 손미나 이후로 작가가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세 번째 책, 가장 진지하고도 진짜 소설 쓰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장 뭐라도 쓰기 시작해야 할 것 같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시도해 보고 싶어진다. 김연수의 소설은 몇 권 읽었으나 기억에 남는 게 없는데 에세이는 무척 재미있다.

 

12월

요시다 슈이치<사랑에 난폭>

출장자에게 부탁한 네 권의 책 중 한 권, 처음으로 소유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책, 아마 곧 어디에 기증할 것 같지만. 줄거리는 '사랑과 전쟁'이지만 요시다가 쓰면 '드라마 게임'은 된다.

다카노 다즈아키<제노사이드>

나름 biology관련 학과 출신이라 그나마 이해가 되었던 듯,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까? 구성이나 이야기 흐름이 완벽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지만 그럭저럭 읽을만했다. 미국 정부에서 콩고 공화국 내전, 제약산업까지 자료조사의 방대함은 인정함.

안드레아스 빙켈만<지옥계곡>

추리소설이 읽고 싶어 시도했는데 재미 없음. 희생자도 살인자도 행동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김연수의 말을 빌리자면 핍진성이 떨어진다. 이 책 전에 시도했던 피에르 르메트로의 <Irene>는 너무 끔찍한 장면이 나와 읽다 중단한 상태, 아마존에서 9.99불이나 주고 이북 샀는데...스칸디나비아 스릴러 만한 것이 없는 듯.

Micheal Pollan<Cooked>

10월에 우돈타니 서점에서 정가 715밧를 세일가 399밧에 사서 석 달 동안 읽었다. 불, 물, 공기, 흙의 4장에서 각각 바베큐, 수프, 빵, 발효식품을 설명한다. 요리에 대한 자연과학적이고 또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작가의 요리체험과 같이 펼쳐진다. 이 책을 읽으면 요리의 욕망이 마구마구 솟아올라 책에 나온대로 양파를 볶아 토마토 수프도 만들고 배추김치, 깍두기 등 김치를 두 종류나 만들었다. 한국의 양념을 그대로 사용해도 동남아 스타일의 김치맛이 나는 것은 이 동네 유산균 때문이다. 요리하는 시간이 길수록 날씬하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혼자 요리해 혼자 다 먹어야 하는 나에게는 안 맞는 이야기. 마지막장의 소제목이 'Hand Taste'였는데 이게 우리나라의 '손맛'의 영역이었다는 것은 반전이었다. 손맛은 사랑이라는 맨 마지막 문장은 진부했지만 진실이다.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하고 구할 수 있는 책을 읽다보니 도서 목록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손에 잡히는 한국책을 읽다보니 영어책도 많이 못 읽었다. 내년에는 동네 헌책방에라도 가서 책을 골라봐야겠다.

 

20대에 정말 정말 좋아한 두 명의 프랑스 작가가 있었는데 한 명은 르 끌레지오였고 다른 한 명은 파트릭 모디아노였다. 르 끌레지오가 한국에 왔을 때는 강연을 들으러 가서 책에 사인을 받아오기도 했고 몇 년 전 그가 노벨 문학상을 탔을 때는 오랜 팬으로서 진심 기뻤다. 그러면서도 모디아노는 노벨상 스타일의 소설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는 더 기뻤다. 나만의 보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느낌. 내심으로는 모디아노를 끌레지오보다는 조금 더 좋아해서 한창 빠져 있을 때는 이 분의 'Quartier Perdu'('잃어버린 거리'로 번역되었는데 지금은 절판이다) 불어책을 필사하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이들의 새 소설이 나와도 더 이상 찾아읽지 않지만 언젠가 그 동안 못 읽은 책을 또는 읽었던 책을 천천히, 불어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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