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1. 00:16

D+130 070723 파묵칼레 석회봉에 오르다. 파묵칼레-이스탄불 이동

일찍 간다고 서둘렀는데 8시 반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점점 더 더워질텐데.
큰 길이 아니고 뒷길로 접어들어 어떤 아저씨한테 길을 물었더니 오토바이 태워주겠단다. 나야 땡큐지.
내려줄 때 보니 역시나, 호텔 경영하는데 이따 와서 차나 마시잔다.
-You are beautiful
-I know, see you later.
오토바이는 벌써 얻어탔고 안 가면 그만.

입장료 5리라를 내고 석회봉을 따라 올라간다.
사람이 없어 내가 너무 일찍 왔나 했더니 윗쪽에는 사람이 많다. 너무 늦게 온 것.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는 안내판이 있다.
하얀 석회암이 보기에는 물렁할 것 같은데 딱딱하고 부스러기가 있는 곳은 발이 아프기까지 하다.
몸에 좋은 온천물이 흐른다니 벗고 나서는 애들.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풍경.
동굴의 종유석 같은 모양이다. 같은 석회암이 흐르는 물에 섞인 침전물에 의해서 만들어지면  이런 모양이 나오나보다.
처음에는 물렁한 석회가 햇볕에 말라 딱딱하게 된다. 계속 물에 잠겨 있으면 이끼도 끼고 더러워지는데 마르면 깨끗한 흰색이다.

이 곳은 로마시대 때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라 불리는 유명한 온천장(spa resort)였단다. 
역시 중동 여행은 페허를 피해가기 힘든 걸까?
마른 땅에 삐죽삐죽한 침엽수가 특이하다. 바람을 막기 위해 일부러 심은 걸까?
두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문.
뭔가 정리가 안 되어 있는 유적. 그래도 이래야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진짜 유적 같다.
점점 더워진다. 그늘은 오로지 저 나무 아래 뿐.
응,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냥 다 귀찮다고?
아치 세 개짜리 문.
낯익은 풍경, 데쟈뷰(Deja vu), 팔미라, 제라쉬, 지금까지 거쳐온 유적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벌판 사이 난 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로마 원형극장.
참, 로마는 대단한 나라인 것 같다. 넒은 곳을 지배하고 일관되게 그들의 문화를 심어놓았다.

자, 이제 내려가자.
이쪽 마저 보고.
전에는 물이 많이 흘렀다는데 지금은 거의 말랐다. 이 물도 수도물을 끌어올려 흘러가게 해 놓은 건 아닌가, 의심이 갔다.
모두들 내려가고 있다.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40대의 부부가 남매를 데리고 이란을 거쳐 왔단다.
이란이라니 대단하시군요. 딸이 이란에서 자신감을 얻어왔단다, 대부분의 동양여자가 그렇듯이.
아저씨가 찍어주신 사진, 뭘 보고 있었던 거지?
아저씨, 싸게 여행했다고 자랑하시는데 어제 더블룸 45리라 주고 잤다고 해서 나는 10줬다고 하니 약간 주춤.
여기 도미토리가 있냐고 해서 싱글룸이라고, 화장실 공동이냐고 해서 방 안에 있다고 했더니 무척 억울해 하신다.
-아침도 안 주고 티비도 없고 에어콘은 고사하고 팬도 없어요.
겨우 수긍이 간다는 표정, 괜히 미안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싸게 했다는 걸 자랑으로 삼는지 모르겠다.
물론 비용도 중요하지만 아주 사기당하지 않는 한 비싼 건 그만큼 좋을 것이다.
쓰고 싶을 땐 쓰고 누릴 건 누려야지 모든 것의 기준이 비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한낮, 이스탄불 가는 버스는 9시 반에 출발하는데 그 때까지 시간을 어떻게 때우나?
우선 점심 먹고.
한국 가이드북 <팔로우 미>에 나온 무스타파 식당 닭고기 볶음밥.
내가 첫 손님이었는데 별로 친절하지 않아 기분이 안 좋았다. 기름이 너무 많았지만 맛은 괜찮았고.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 들렀다가 인터넷 카페에 갔는데 갑자기 정전이다. 이따 다시 와야겠다.
우선 호텔에 들러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체크아웃시간 같은 건 따로 없고 거의 이틀을 쓴 건데 10리라 주려니 미안했지만 저녁값까지 20이니까.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달라고 명함을 준다. 글쎄...별로 추천할만한 장소는 아닌데.
버스 정류장까지 동생이 오토바이로 태워준다고 해서 기다리며 삐끼 아저씨랑 얘기를 좀 했다.
팬은 꼭 있어야 한다니까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돈이 없단다. 그렇지, 언제나 돈이 문제다.

인터넷 2시간 해서 핀란드, 에스토니아,러시아 숙소를 다 예약했다.
여름 휴가철이다 보니 벌써 예약이 다 찬 곳이 많아 대충 자리가 있는 곳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러시아는 좀 걱정이 된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가 아는 척을 한다. 어제 데니즐리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판 아저씨다. 
-파묵칼레는 너무 경쟁이 심해요.
5년전에는 여기가 북적북적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다 다른데 묵고 데이 트립으로 여기 오죠.
그래서 경쟁이 더 심해지고 서로 미워하죠.
-나도 그 얘기 들은 것 같아요. 미노라는 사람이 여기 살면서 쓴 책이 있는데...
-아, 그 책 알아요. 미노 친구 나즐이 내 친구였죠. 지금은 교통사고로 죽었지만.
그 책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나즐 호텔에만 가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미워했어요.
지금은 그 호텔 문 닫았어요.
-미노씨는 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한 권 더 썼죠.
-그렇군요. 한국 사람들은 여기서는 터키가 좋다고 하고 한국 가면 터키 욕을 많이 해요.
-그런지 어떻게 알아요?
-이스탄불 투어 회사에서 일할 때 들었어요. 한국사람들은 shy하고 영어를 잘 못해서 나중에 불평을 많이 한다구요.
-다 그런 건 아닐 거에요. 터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파묵칼레에서 느낀 쇠락해 가는 분위기는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파묵칼레가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버스가 왔다.
데니즐리- 이스탄불 버스는 밤새 수많은 도시에 들러 사람을 내려주고 다시 태우고, 11시간만에 이스탄불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