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 00:04

D+156 070818 붉은 광장, 레닌 마솔레움, 모스크바-마드리드 이동

어제는 크렘린 성 안에 가봤으니 오늘은 붉은 광장에 가 봐야 한다.

역시 지하철 타고, 조명이 예사롭지 않다.
벽화도 역시, 뭔가 혁명이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데, 오늘도 역시 엄한데로 나와버렸다.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지하철역에 내렸을 때도 똑같을 것 같다. 우리나라도 지하철 노선이나 갈아타는 역으로 보면 꽤 복잡한 편이니.
앞에 붉은 벽이 보이니 붉은 광장으로 가고 있는 게 맞나보다.
역시 그렇다.
붉은 광장, 오전 9시 50분.
붉은 광장은 원래 주변 키타이 고로드(Kitai Gorod) 상업지구의 시장(market place)였는데 크렘린 궁에 살던 사람들이(황제,정치가 등) 축하할 일이 있거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일이 있을 때 선택했던 장소이다. 우리에게는 구 소련이 군사 퍼레이드를 했던 장소로 각인되어 있고.
지금은 한가한 관광객들만이 서성대고 있다.  
한쪽 끝에는 성 바질 성당.
16세기에 이반 황제가 타타르족의 요새 카잔을 함락한 기념으로 만든 건데 다시는 이런 성당을 못 만들도록 건축가의 눈을 멀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상트에서 피의 성당을 보고 왔기에 좀 식상하지만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이 칼라풀한 성당이다.
남동쪽에 있어 오전 내내 역광.
붉은 광장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19세기에 지어진 백화점 굼(GUM).
한 때 무너져가는 사회주의 경제의 나쁜 예로-긴 줄, 텅 빈 진열장-알려져 있던 곳인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갖가지 물건이 가득찬 진짜 백화점이 되었단다.  난 안 들어가봤다.
GUM이라고 읽는다.
LENIN이라고 읽고. 붉은 광장 한가운데 위치한 레닌의 무덤.

붉은 광장에 온 이유는 레닌의 마솔레움(Mausoleum, 영묘라는 뜻)에 가기 위한 것.
1924년 53세의 나이로 레닌이 사망한 이후 많은 참배객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이를 본 스탈린이 신성한 존경의 의미로 그의 시체를 보존하자고 제안했다. 레닌 자신은 상트의 어머니 옆에 묻히길 원했고 그의 부인도 무척 반대했으나 스탈린은 시체를 그대로 보존하는 법을 알아내라고 과학자들을 닦달했다.
6개월후 과학자들은 부패를 막는 법을 알아냈고 레닌은 이후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람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패를 막는 법은 국가 기밀이었는데 소련 붕괴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며칠마다 시체를 닦고 18개월마다 파라핀 왁스를 포함한 용액에 담근다고. 1년 유지 비용이 40만불이 든다는데 서양의 도움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을 진행하던 연구소는 이제 불멸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백만달러에 서비스하고 있단다.

1953년부터 61년까지는 스탈린 무덤이 여기 같이 있었는데 61년 원로 볼셰비키 마담 Spiridonava 가 꿈에서 레닌을 봤는데 스탈린하고 같이 있기 싫다고 해서 스탈린은 이 무덤 뒤로 옮겨져 안장됐다고.
사전 지식은 여기까지, 모두 론니에서 얻은 것. 10시부터 입장한다는데 사람들은 다 어디 있는 걸까?. 
이런, 나도 일찍 왔는데 줄을 이 쪽에서 서는지 몰라서 붉은 광장에서 놀고 있었는데.
가는 길도 막아놔서 역사 박물관쪽으로 빙 돌아가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역시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나라 러시아.
한 시간 기다려서 들어갈 수 있었다. 요금은 무료인데 들어가기 전에 카메라를 맡기는데 60루블을 내야 한다.
컴컴한 계단을 내려가면 근엄한 경비대에 둘러 싸여서, 공기조차 음산한 곳에, 유리관 안에 그가  있다.
난 좀 더 미이라 같을 줄 알았는데 진짜 사람 같다. 어둠 속에 하얗게 빛나는 그의 얼굴.
괴이한 경험이다. 대학 시절 귓등으로만 들었지만 그 이름을 말하는 선배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존경심,한 시대의 영웅이었던 레닌을 80년의 세월을 넘어 직접 보다니.
내가 본 레닌은 평화로운 잠을 자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이제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를 묻어주자는 의견도 많다는데 이제 나는 봤으니 그를 어머니 곁으로 돌려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역시 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어두운 무덤을 벗어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질 성당 예쁘게 찍고 싶었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은 붉은 광장.
꼭대기 장식이 신기해서 찍은 것. 역사 박물관.
그 옆 성당.
붉은 광장 한 쪽에 기념품 노점이 늘어서 있다.
마뜨뤼시카(인형이 몇 겹으로 들어있는 러시아 특산품) 한 개 사러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구호소리.
낫과 창이 그려진 구소련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웬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레닌 무덤 줄 서느리 진이 다 빠져버렸다. 이제 러시아를 떠나야 할 때인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뜨 거리로 돌아간다.
이 조명등도 예쁘다.
혁명을 상징하는 부조, 지하철역 여기저기 지난 세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러시아에서 마지막 식사는 무무 레스토랑. 맛있고 싼 러시아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은주가 꼭 가보라고 했던 곳이다.
젖소가 러시아에서는 무무 하고 우나보다.
남은 러시아돈을 다 써야 하기에 푸짐하게 시켜봤다. 샐러드, 돼지고기, 가스파초, 디저트까지 212루블. 다 먹어버렸다.
아저씨 안녕, 나 이제 러시아를 떠나요.
호스텔 가서 짐을 찾아서 Domodedovo 역으로 갔다. 거기서 Domodedovo공향으로 가는 미니버스가 출발한다.
역을 나오니 온통 버스와 미니 버스인데 나처럼 배낭을 메거나 캐리어를 갖고 공항으로 가는 듯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시 끝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여러 사람에게 싸말롯, 싸말롯(비행기) 물어물어 공항버스가 서는 곳을 알아냈다.
아까 레스토랑에서 포식해 주머니에 단돈 47루블 있는데 미니 버스에 70루블이라고 써 있다. 이런...
잔돈을 다 써버리고 그 나라를 뜨려 하는 내 습관이 이런 일을 가끔 만든다.
달러로 내야 하나 고민하는데 큰 시내 버스 같은 게 온다. 50이라고 써 있다.
아저씨, 나 돈 이거 밖에 없어요 하는 표정을 지으니 40만 가져간다. 어디나 이 정도의 인심은 있어야지.
내릴 때 어차피 7루블이 필요 없어 아저씨에게 팁으로 주려니 안 받는다. 나 진짜 필요 없는데...
모스크바 공항 풍경,  바깥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앉아 있는 공항은 또 처음 본다. 안에 의자가 부족해서일까?
이용객 수에 비해 공항이 작은 것 같다.
수속하고 짐 부치는데 배낭은 다른 곳에 가서 부치란다. 그런 곳이 가끔 있다. 훨씬 큰 슈트케이스도 그냥 팬벨트에 실어보내면서 배낭은 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한다.
가라는 데로 갔는데 직원이 러시아말로 계속 뭐라고 한다. 뭐 어쩌라구? 가방 내려 놓으라구?
무겁게 들고 왔는데 가방 받아주지도 않고 뻔히 외국인인 걸 아는데 영어로도 안 해준다.
갑자기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공항에 오면 좀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동안 러시아에서 쌓인 것이 폭발한 것. 길찾기도 어렵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유명한 곳마다 줄이 하염없이 늘어서 있고 등등.
어느 여직원이 나와 그냥 여기에 두고 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짐이 제대로 가는 지도 의문.
출발 구역으로 들어가니 의자는 몇 개 없는데 사람은 바글바글, 여자 화장실에는 바깥까지 줄이 길게 서 있다.
면세점에서 사람들이 물건만 파느라고 난리다. 이게 인간을 위한 사회주의의 마지막 모습인가? 인간을 위하다가 지금은 돈만 위하는, 그래서 적절한 돈을 내고도 제대로 서비스도 못 받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지금은 러시아를 빨리 떠나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다시 러시아를 여행할 기회가 온다면 그 때는 도시 말고 시골을 여행하고 싶다. 그러면 러시아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세계일주의 두 번째 부분, 70여일의 중동, 북유럽, 러시아 여행이 끝났다.
재밌는 일도 많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또 그만큼 힘든 일도 있었다. 벌레의 공격, 사람, 체제에 대한 실망 등
어쨌든 지금은 익숙한 곳으로 가는 기쁨, 낯선 곳을 헤매 봤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그 기분이 너무 좋다.
나 여행을 좋아하는 건 맞나? ㅎㅎ
재충전 열심히 해서 세계일주 마지막 부분도 즐겁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