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8. 09:38

D+184 070915 리마-나스카 이동, 나스카 걷기

새벽 세 시에 깨서 뒤척뒤척했다. 가방 잃어버리는 꿈도 다 꾸고. 좀 불안하가 보다.
6시에 자명종 소리에 정신차리고 일어나 6시 반에 택시를 잡아탔다.
Cruz del Sur 버스 터미널까지는 10분 걸렸다. 기사 아저씨가 계속 스페인어로 말을 건다. 내가 'no abla espanol'스페인어 못해요, 계속 말하는데도 말이다.
어제 호스텔에 부탁해 미리 이카(Ica)까지 버스표를 끊어놓았다. 55솔.
버스 회사 안에는 벌써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일본인 가족, 일본인 남자 두 명이 보인다. 아직까지는 남미는 일본인의 여행지, 우리나라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기는 하지만.
2층 버스, 상당히 고급 버스다. 스튜어디스 같이 예쁜 옷을 입은 여자 차장이 아침 식사 까지 준다.

비록 뻑뻑한 빵조각이었으니 맛있게 먹었다.
하늘이 계속 흐리다. 도시를 벗어나니 바로 사막이다.
해안가를 따라 있는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를 따라가는 길, 꼭 이집트 사막 횡단하는 기분이다. 거긴 햇볕이 쨍쨍했고 여기는 흐려서 땅이 젖은 느낌이라는 게 다르다.
중간 중간 보이는 가건물 같은 집. 과연 사람이 살기는 하는 걸까? 산다면 정말 가혹한 환경일 것이다.
3주 전에 큰 지진이 났었단다. 길도 무너졌는지 돌아가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아, 그리고 부서진 집들이 보인다. 엉성하게 천으로 겨우 벽이라는 걸 만들어 놓았다.
여기는 건물이 다 짓다 만 것처름 철근이 노츨되어 있고 벽돌로 허술하게 지어져 있다.
지진이 나면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 운동장인 듯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구호품을 나눠 주는 것 같다. 다리에 기브스를 한 소년도 보이고.
이렇게 지진이 날 것을 알면서도 집을 튼튼히 짓고 예방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가난한 나라의 한계인 것 같다.
일본 같은 나라는 엄청난 방진 대책을 쓰고 있는데 말이다. 마음이 안 좋아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는 내달려 이카에 이르렀다.
이카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로 샌드보딩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들르려고 했던 곳인데 날씨도 안 좋고 샌드보딩할 기분도 아니어서 나스카까지 바로 가기로 했다. 이 버스가 나스카까지 가는데 차장한테 물어보니 표를 다시 사야 한단다.
이카에서 나스카까지는 35솔, 합치면 90솔인데 리마에서 나스카까지는 75솔이다. 15솔 손해 봤다.
옆에 앉은 아저씨가 리마에서부터 영어책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어서 말을 붙여 보았는데 몇 마디 이어지질 못했다.
이카에서 내리면서 이카가 좋은 도시인데 놓쳐서 아쉽단다. 지진으로 지금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고.

페루 사람들은 이카에서 거의 내리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관광객.
이카, 나스카는 해안가에서 떨어져 내륙에 위치한 도시,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하늘이 파래지기 시작한다.
고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마른 땅이 확연히 드러난다.
DVD 를 연속 네 개나 틀어줘서 서비스가 좋다고 해야할지, 7시간 걸려 오후 두 시에 나스카에 닿았다.
터미널 나오니 바로 삐끼가 따라붙는다. 어, 오랜만이네.
세자르라는 친구, 원래 다른 곳으로 안내했는데 론니에서 봐둔 Yemeya가 어떠냐고 했더니 데려다 준다.
주인에게 커미션 좀 받겠지, 내가 제 발로 찾아온 건데. 30솔, 만원이 안 되니까 싸긴 한데 페루 물가에 비하면 비싼 거 아닌가? 화장실 딸려 있는 우리나라 여관이랑 똑 같다.

짐을 내려 놓고 나가본다. 내일 나스카 라인 비행 예약도 해야 하고 낼 저녁 쿠스코 가는 버스표도 사야하고.
나랑 같이 내린 사람 중에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늘밤 쿠스코로 간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럼 너무 피곤할 것 같다.
나스카 첫인상, 깨끗하다.
작은 읍내 정도의 크기인데 보도 블록도 제대로 깔려 있고 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다.
나스카 라인을 보러 몰려드는 관광지니 그렇기도 하겠다. 투어리스틱 레스토랑도 즐비하다.
나스카 라인을 본따서 만든 버스 정류장 표시.
고급 호텔인 것 같은데 몇 개 안 되는 국기 중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일본 국기 없이 태극기 있는 데는 또 첨 본다.
전화 카드를 사러 뒷골목에 있는 Telefornica Peru(전화국)에 갔다.
페루의 택시는 90% 이상이 티코 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찬밥인(지금 나오기는 하나?) 티코가 애쓰고 있는 걸 보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다.
중심가를 한 블록만 벗어나자 허름한 페루의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새털구름은 포근하게 펼쳐져 있는데,
마른 개울가의 집은 거의 판잣집 수준.
중심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수많은 관광객들이 뿌리고 가는 돈이 여기까지는 오지 않나보다.

대부분 페루의 집은 이렇게 짓다 만 채로 남아 있다. 노출된 철근이 위험해 보이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후지모리 대통령 시절(일본계 페루 대통령) 집을 짓는데 보조금을 지급했고 계속 짓고 있어야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어 미완성으로 남겨 둔 것이란다.)

나스카 비행은 45불, 회사를 잘못 고르면 별로 보여주지도 않고 비행이 빨리 끝난다고.
언제나처럼 대충 골라 들어가 예약했다.
쿠스코까지 버스는 140솔, 어떤 느끼한 아저씨가 같이 가서 도와주었다.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자, 내일의 일을 다 해결했으니 저녁을 먹어야 한다. 
젊은 여자 삐끼가 꼬시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내가 첫 손님. 투어리스트 메뉴 10솔. 
우선 스프. 치킨과 야채가 듬뿍 들어가 있고 국수가락도 들어있어 꼭 우리나라 잔치 국수 같다. 좀 짜긴 했지만 맛있었다.
갖고 다니는 론니 지도 복사본.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두 발로 걸을 때 가장 즐겁다.
주 메뉴는 페투치네 파스타를 골랐는데 이건 별로. 페투치네가 원래 이렇게 건더기가 없는 거였나, 국수 가락만 먹으려니 뻑뻑하고 맛이 없다.
내 뒤로 아까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일본인 가족이 들어왔다. 벌써 나스카 라인을 보고 오늘밤 푸노로 간다고.
나도 시간을 절약하려면 그랬어야 하겠지만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었는지 무지 피곤하다. 또 밤버스를 타는 건 너무 무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