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5. 21:58

D+243 071113 엽서 속 풍경, 바릴로체 자전거 트래킹

아침 식사에 따뜻한 빵을 주는 곳은 처음 봤다. 방금 구운 토스트, 크로와상도 따뜻하게 데워 준다.
찬 음식을 싫어하시는 아빠 정말 좋아하신다.어젯밤 히터도 좋아하시더니...
주인 할머니가 시골 외할머니집에 놀러간 것처럼 잘 해 주신다.

10시에 공짜 버스를 타고  Cerro Otto에 올라가려 했더니 지금 곤돌라 보수 중이라 올라갈 수 없단다.
그럼 어쩌나? 자전거 트래킹을 해 볼까?
이 주변은 나우엘후아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스키, 캠프, 낚시, 크루즈, 트래킹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란다.
인포메이션도 꼭 산장처럼 꾸며져 있는데 무척 친절하다.
여기에서 자전거를 빌리는 것보다 버스를 타고 트래킹 코스 가까이 가서 빌리라고 미리 전화해서 예약까지 해 준다. 

20번 버스는 만원, 호숫가를 따라 꽤 긴 거리를 달린다.
Cerro Campanario가 제일 가까운 정류장인 것 같아 거기서 내렸더니 1km쯤 걸어가야 했다.
자전거 빌리는 곳도 호스텔이었는데,
자전거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헬멧도 빌려주고 물도 주고 지도를 보고 무척 자세하게 하이킹 코스를 알려준다. 
이렇게 프로페셔널한 직업 정신은 여행 이후 처음 만난 것 같다.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가 20km쯤 되는데 빨리 달리면 2시간 반이면 된다고.
-길은 평평한가요?
-바릴로체에 평평한 길은 없어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
자전거 하이킹 시작.
날씨도 적당히 따뜻하고 그늘이 많은 숲길, 비포장이라 좀 울퉁불퉁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탈만 하다.
멋진 풍경이 나올 때마다 멈춰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시는 아빠.
모델은 물론 나,  뭔가 라이더의 포스를 풍기지만 이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산에는  눈이 쌓여 있는데 아래쪽은 봄, 민들레가 가득하다.
민들레는 북반구나 남반구나 똑같게 생겼다.
이건 무슨 노란 꽃일까?
아르헨티나식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샤오샤오'라고 읽는다.
샤오샤오는 호수 한 가운데 멋진 호텔이 있는 곳.
한 번쯤은 자 보고 싶은 호텔. 엄청 비싸겠지?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갈대숲이 있는 습지.
이런 데서 골프 치는 것도 한 번 해볼만 하겠다. 물론 난 골프를 쳐 본 적이 없지만.
눈 돌리는 곳마다 멋진 풍경.
자전거나 말타기가 금지되어 있는 숲길. 끌고 가기가 답답해 아무도 없을 때(대개 그렇다)는 타고 가기도 했다.
소풍 온 학생들을 만났다.
외국인을 만나 무척 즐거워하는 학생들.
작은 호수가 있다. Largo Perdido, 잃어버린 호수, 주변에 인적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산과 물과 우리 뿐.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진부한 표현 밖에 할 수가 없다.
틈만 나면 지도 탐색.
앉아서 쉬고 있는데 하이킹을 하는 다른 일행이 걸어들어왔다. 역시 이 호수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마법의 순간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잃어버린 호수'를 떠났다.
죽은 나무들이 밀려와 있는 호숫가 모습.
이제 슬슬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는 중.
점점 페달에 힘이 덜 들어가기 시작한다. 에고, 힘들어.
대부분은 잘 달리지만,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고,
집에서 매일 자전거를 타시는 대디가 유유히 달리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나는 낑낑대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 도착한 전망대.
아름다운 호수와 산이 펼쳐져 있는 풍경.
샤오샤오 호텔은 바로 한가운데 있다.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것보다 여기서 보고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대디는 사진찍는 데 열중하고 계시고,
나는 지쳤다. 저 뒤 군고구마 드럼통에서 굽고 있는 소시지를 하나 사 먹었다. 무척 맛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자전거 빌린 곳에 도착한 시간이 5시 20분. 두 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다섯 시간 걸렸다. 
자전거 돌려줄 시간이 남아 Colonia Suiza게 가보려 하다 너무 멀 것 같아 포기했다.
스위스에서 온 이민자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곳이  Colonia Suiza.
나라를  떠난 사람들은 고향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곳에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곳에 스위스 이민자의 거주지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스위스 마을 대신가까운 곳에 있는 Cerro Campanario에 갔다.
리프트는 6시까지 운행한다는데 거의 막차를 타고 올라갔다. 일인당 20페소.
올라가는 건 괜찮은데,
뒤를 돌아보니 무섭다. 1052m까지 올라간다.  
360도, 어디를 돌아봐도 엽서에 나올법한 풍경이다. 
풍경을 기억해 두려 애쓴다. 숨을 힘껏 들이마셔 이 공기의 느낌도 기억해 두자. 
나는 곧 도시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고 빌딩숲이 답답해질때 이 기억으로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도록.  
마지막 리프트를 타고  내려올 때는 정말 무서웠다는...

6시 반에 자전거를 돌려주었다.
수고했다고 에너지바도 한 개씩 주고 바로 자전거를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이 정말 프로다운 서비스였다.
일인당 45페소(13000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는 또 만원, 여기는 버스가 자주 안 다니는지 사람이 항상 많다. 

저녁은 이 지역 전통 음식이라는 사슴 (ciervo)고기 스튜와 송어(Trucha) 구이를 먹었다.
사슴을 숲에서 잡는 걸까, 키우는 걸까?
송어는 호수에서 잡는 거겠지?
양은 적었지만 둘 다 아주 맛있었다.
음값이 60페소인 것 같았는데 거스름돈 받고 나와보니 30페소만 낸 것. 아주 잠깐 고민 후, 빨리 걸어서 집에 왔다.

6시간이나 자전거를 타서(끌고 걸은 시간이 더 많았지만) 무척 피곤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어 뿌듯한 하루였다.


*바릴로체 자전거 하이킹, 인포메이션에서 안내를 받는다. 하루 대여료 45페소, 체력이 받쳐준다면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Cerro Companario 리프트 왕복 20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