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0. 10:16
D+281 071221 불친절한 미국에 도착하다, 깐꾼-마이애미 이동
2009. 12. 10. 10:16 in 2007세계일주/미국
도미토리의 다른 세 남자가 밤새 어찌나 들락날락하는지 잠을 설쳤다.
아침 식사는 셀프, 계란 후라이를 두 개나 해서 먹었다.
짐을 다 챙길 때까지 방 사람들은 다 자고 있었는데 어제 데이빗에게 멕시코 가이드북을 주기로 했기에 여행 잘하라는 쪽지와 함께 머리 맡에 두고 8시 50분에 나왔다.
35페소짜리 공항 셔틀은 2터미널에 내려준다. 내가 타야하는 비행기는 3터미널에서 뜨고.
다시 무료 셔틀 같은 걸 타고 3터미널로 갔다. 왜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체크인 아저씨는 친절했다. 같이 셔틀 타고 온 단체 여행객(독일인으로 추정됨)과 떨어져 앉게 해달라고 했더니 옆 카운터를 슬쩍 넘겨보더니 비상구 창가 좌석을 주었다. 오호, 그런 자리는 처음 앉아본다.
공항은 무척 화려했다. 역시 국제적 브랜드의 면세점이 가득했고 마리아치들이 전통 음악을 노래부르며 팁을 챙기고 있었다.
약국에 들어가봤는데 우리나라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들도 마구 팔고 있었다. 이 곳의 약값이 싸기에 관광객이 많이 사가는 것 같았다.
남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들어간느 비행기는 대개 마이애미를 거친다.
쿠바 여행하기 제일 좋은 곳이 깐꾼이라는데 정말 가깝다. 이번 기회에는 못 가보고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비행기는 이륙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마이애미로 기수를 내리고 있다.
비상구 자리 정말 좋다. 다리도 뻗을 수 있고(다리가 짧긴 해도) 바깥도 잘 보인다.
음, 마이애미가 이렇게 생긴 도시군. CSI마이애미에서 많이 보긴 했는데 비슷한가?
한 시간 10분 만에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그런데 패스포트 컨트롤이 무척 오래 걸린다. 사람은 굉장히 많고 한 줄 서기도 아니고 마구잡이로 줄을 서는데 사진도 찍고 지문도 찍어야 하니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뒤에 벽이 있어 길게 늘어설 수 없는 창구는 빨리빨리 줄어드는데 내 줄은 진짜 안 줄어든다. 막판에 다른 줄로 옮겼는데 내가 창구에 다 와서 어디선가 두 사람이 나타나서 내 앞의 창구로 걸어간다.
-내 차례라구요!
소리를 질렀다. 창구 직원이 가만히 있으란다. 그러더니 두 사람을 처리하고 교대를 하느라고 시간을 끈다.
-저 사람들이 무슨 특권을 가졌던 거지요?
원래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이란다. 내가 옮겨가기 전에 그 줄에 서 있다가 어디 가서 쉬고 온 듯.
창구 직원은 휴가지 않느냐, 웃어봐라 등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했으나 무지 화가 나서 퍽킹, 퍽킹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속으로만 했다. 결국 두 시간 반동안 서 있은 다음에 같이 타고온 사람들 중 맨 마지막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러면 창구를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닐까? 불편함을 줘서 미국에 대한 위압감 같은 걸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걸까?
멕시코 여행하면서 줄곧 읽었던 책은 <Give me my father's body> (번역서: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이었고 마이애미 오는 비행기 안에서 끝냈다. 한국에서 읽었던 책인데 어느 호스텔에선가 영어판을 발견했다.
북극 탐험가로 잘 알려진 피어리가 미국으로 돌아오며 자연 탐사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에스키모 여섯 명을 데려오는데 낯선 기후에 네 명은 병에 걸려 죽고 한 사람은 북극으로 돌아가고 나이 어린 소년 미닉만 미국에 남아 살아가게 된다.
미닉의 아버지의 유해는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에 표본으로 전시되는데 이를 돌려받기 위한 미닉의 싸움(물론 실패로 돌아간다)과 미국에서도, 북극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쓸쓸한 미닉의 죽음까지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
에스키모를 인간이 아닌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할 표본 정도로만 생각한 미국의 오만과 위선에 대해 반미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한 상태로 입국하게 되었다는 얘기
두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짐이 먼저 도착해 있다.
계속 돌아가도록 놔둘 수 없으니 짐을 다 내려놓았다. 내 배낭은 어디 있을까?
제복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거기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비행기 편수를 말하니 8번 벽쪽에 있는 것 같다는 말, 짐만 따로 내려 정리해 놓는 직원이 있는 듯, 그들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자, 이제 J버스를 타고 M버스로 갈아탄 후 마이애미 비치에 있는 호스텔을 찾아가야 한다.
버스가 서는 곳에 가서 자동판매기에서 티켓을 사려고 하니 그 표가 아니라고 누가 옆에서 말한다. 잔돈교환기는 고장나 있다.
그 때 J버스가 왔는데 잔돈이 없다하니 휙 가버린다. 이거 정말 열받는다. 스타벅스에 가서 물을 사고 겨우 2달러를 만들 수 있었다. 커다른 트렁크를 두 개 든 젊은 여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다음 J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그 여자는 독일인으로 에콰도르에 4주간 있었는데 계속 비가 오고 추워 제대로 휴가를 즐기지 못한데다 지갑까지 소매치기를 당해 지금 단돈 5불 있단다. 에콰도르에서는 신용카드를 쓸 수 없었다고.
그 옆에 앉은 남자도 참견을 하는데 이라크에서 돌아오는 중인데 연결 비행기가 떠나버려 단돈 16달러를 가지고 여기 떨어졌단다. 수속이 길어지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
독일 여자와 같이 41street에 내렸다. 그 여자는 곧 도착한 C버스를 타고 떠나버렸고 M버스는 오지 않는다.
한참이나 기다렸는데 M버스가 휙 지나가려 한다. 뛰어가서 손들어 세워 탔는데 주머니를 보니 호스텔 주소를 적어놓은 수첩이 없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연락처를 적어놓은 소중한 것인데 그거 잃어버리면 안 된다. 기사 아저씨한테 세워달라고 했다. 다행히 아저씨는 아까 냈던 표를 다시 줘서 다음 버스에 또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해준다.
500m쯤 돌아오니 아까 내가 앉았던 벤치에 수첩이 있다. 정말 다행이다.
고급 자동차가 씽씽 달려가는 거리의 외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진짜 띄엄띄엄 온다.
30분을 넘게 기다려 다시 M버스가 왔다. 비행기가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한 시 40분이었는데 거기서 호스텔까지 가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버스는 어두운 길을 달리는데 지도를 보며 거리 이름을 확인해 Washington Avenue에 있는 Miami beach International Travelers Hostel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자 6인 도미토리에 짐을 내려 놓는데 앞 침대에 한국 이름이 두 명 씌여 있는데 마침 그들이 들어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전혀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눈치가 아니다. 이상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 본다.
그래, 여긴 미국이다. 한국 사람들이 버글버글한 곳이니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괜히 말 섞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그렇게 쌀쌀맞게 대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왓 더 퍽킹 걸들이다, 왓 더 퍽킹 아메리카에서 만난.
호스텔 앞의 야외 테이블에는 탱크탑을 입은 여자애들과 반바지를 입은 젊은 애들이 노트북을 보며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양인처럼 보이는 애들도 몇 명 있었는데 모두 썬탠을 한 까만 피부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나처럼 배낭을 메고 도착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여행 처음 시작할 때 느꼈던 소외감, 외로움을 미국에 와서 다시 느끼고 있다.
배낭에 아껴두었던 전자렌지용 떡볶이(사실 전자 렌지를 발견할 수 없어서 그런 거지만)와 즉석 미역국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시도했으나 기분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나는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특별 대우를 해주지 않는 강대국 미국에?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은 끝나가는 여행에? 일 년의 유예 기간 후에도 혼란스러운 나의 미래에 대해?
어쨌든 나는 미국이 싫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날이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인 것 같다.)
아침 식사는 셀프, 계란 후라이를 두 개나 해서 먹었다.
짐을 다 챙길 때까지 방 사람들은 다 자고 있었는데 어제 데이빗에게 멕시코 가이드북을 주기로 했기에 여행 잘하라는 쪽지와 함께 머리 맡에 두고 8시 50분에 나왔다.
35페소짜리 공항 셔틀은 2터미널에 내려준다. 내가 타야하는 비행기는 3터미널에서 뜨고.
다시 무료 셔틀 같은 걸 타고 3터미널로 갔다. 왜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체크인 아저씨는 친절했다. 같이 셔틀 타고 온 단체 여행객(독일인으로 추정됨)과 떨어져 앉게 해달라고 했더니 옆 카운터를 슬쩍 넘겨보더니 비상구 창가 좌석을 주었다. 오호, 그런 자리는 처음 앉아본다.
공항은 무척 화려했다. 역시 국제적 브랜드의 면세점이 가득했고 마리아치들이 전통 음악을 노래부르며 팁을 챙기고 있었다.
약국에 들어가봤는데 우리나라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들도 마구 팔고 있었다. 이 곳의 약값이 싸기에 관광객이 많이 사가는 것 같았다.
남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들어간느 비행기는 대개 마이애미를 거친다.
쿠바 여행하기 제일 좋은 곳이 깐꾼이라는데 정말 가깝다. 이번 기회에는 못 가보고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비행기는 이륙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마이애미로 기수를 내리고 있다.
비상구 자리 정말 좋다. 다리도 뻗을 수 있고(다리가 짧긴 해도) 바깥도 잘 보인다.
음, 마이애미가 이렇게 생긴 도시군. CSI마이애미에서 많이 보긴 했는데 비슷한가?
한 시간 10분 만에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그런데 패스포트 컨트롤이 무척 오래 걸린다. 사람은 굉장히 많고 한 줄 서기도 아니고 마구잡이로 줄을 서는데 사진도 찍고 지문도 찍어야 하니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뒤에 벽이 있어 길게 늘어설 수 없는 창구는 빨리빨리 줄어드는데 내 줄은 진짜 안 줄어든다. 막판에 다른 줄로 옮겼는데 내가 창구에 다 와서 어디선가 두 사람이 나타나서 내 앞의 창구로 걸어간다.
-내 차례라구요!
소리를 질렀다. 창구 직원이 가만히 있으란다. 그러더니 두 사람을 처리하고 교대를 하느라고 시간을 끈다.
-저 사람들이 무슨 특권을 가졌던 거지요?
원래 내 앞에 서 있던 사람이란다. 내가 옮겨가기 전에 그 줄에 서 있다가 어디 가서 쉬고 온 듯.
창구 직원은 휴가지 않느냐, 웃어봐라 등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했으나 무지 화가 나서 퍽킹, 퍽킹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속으로만 했다. 결국 두 시간 반동안 서 있은 다음에 같이 타고온 사람들 중 맨 마지막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러면 창구를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닐까? 불편함을 줘서 미국에 대한 위압감 같은 걸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걸까?
멕시코 여행하면서 줄곧 읽었던 책은 <Give me my father's body> (번역서: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이었고 마이애미 오는 비행기 안에서 끝냈다. 한국에서 읽었던 책인데 어느 호스텔에선가 영어판을 발견했다.
북극 탐험가로 잘 알려진 피어리가 미국으로 돌아오며 자연 탐사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에스키모 여섯 명을 데려오는데 낯선 기후에 네 명은 병에 걸려 죽고 한 사람은 북극으로 돌아가고 나이 어린 소년 미닉만 미국에 남아 살아가게 된다.
미닉의 아버지의 유해는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에 표본으로 전시되는데 이를 돌려받기 위한 미닉의 싸움(물론 실패로 돌아간다)과 미국에서도, 북극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쓸쓸한 미닉의 죽음까지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
에스키모를 인간이 아닌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할 표본 정도로만 생각한 미국의 오만과 위선에 대해 반미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한 상태로 입국하게 되었다는 얘기
두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짐이 먼저 도착해 있다.
계속 돌아가도록 놔둘 수 없으니 짐을 다 내려놓았다. 내 배낭은 어디 있을까?
제복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거기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비행기 편수를 말하니 8번 벽쪽에 있는 것 같다는 말, 짐만 따로 내려 정리해 놓는 직원이 있는 듯, 그들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자, 이제 J버스를 타고 M버스로 갈아탄 후 마이애미 비치에 있는 호스텔을 찾아가야 한다.
버스가 서는 곳에 가서 자동판매기에서 티켓을 사려고 하니 그 표가 아니라고 누가 옆에서 말한다. 잔돈교환기는 고장나 있다.
그 때 J버스가 왔는데 잔돈이 없다하니 휙 가버린다. 이거 정말 열받는다. 스타벅스에 가서 물을 사고 겨우 2달러를 만들 수 있었다. 커다른 트렁크를 두 개 든 젊은 여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다음 J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그 여자는 독일인으로 에콰도르에 4주간 있었는데 계속 비가 오고 추워 제대로 휴가를 즐기지 못한데다 지갑까지 소매치기를 당해 지금 단돈 5불 있단다. 에콰도르에서는 신용카드를 쓸 수 없었다고.
그 옆에 앉은 남자도 참견을 하는데 이라크에서 돌아오는 중인데 연결 비행기가 떠나버려 단돈 16달러를 가지고 여기 떨어졌단다. 수속이 길어지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
독일 여자와 같이 41street에 내렸다. 그 여자는 곧 도착한 C버스를 타고 떠나버렸고 M버스는 오지 않는다.
한참이나 기다렸는데 M버스가 휙 지나가려 한다. 뛰어가서 손들어 세워 탔는데 주머니를 보니 호스텔 주소를 적어놓은 수첩이 없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연락처를 적어놓은 소중한 것인데 그거 잃어버리면 안 된다. 기사 아저씨한테 세워달라고 했다. 다행히 아저씨는 아까 냈던 표를 다시 줘서 다음 버스에 또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해준다.
500m쯤 돌아오니 아까 내가 앉았던 벤치에 수첩이 있다. 정말 다행이다.
고급 자동차가 씽씽 달려가는 거리의 외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진짜 띄엄띄엄 온다.
30분을 넘게 기다려 다시 M버스가 왔다. 비행기가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한 시 40분이었는데 거기서 호스텔까지 가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버스는 어두운 길을 달리는데 지도를 보며 거리 이름을 확인해 Washington Avenue에 있는 Miami beach International Travelers Hostel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자 6인 도미토리에 짐을 내려 놓는데 앞 침대에 한국 이름이 두 명 씌여 있는데 마침 그들이 들어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전혀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눈치가 아니다. 이상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 본다.
그래, 여긴 미국이다. 한국 사람들이 버글버글한 곳이니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괜히 말 섞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그렇게 쌀쌀맞게 대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왓 더 퍽킹 걸들이다, 왓 더 퍽킹 아메리카에서 만난.
호스텔 앞의 야외 테이블에는 탱크탑을 입은 여자애들과 반바지를 입은 젊은 애들이 노트북을 보며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양인처럼 보이는 애들도 몇 명 있었는데 모두 썬탠을 한 까만 피부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나처럼 배낭을 메고 도착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여행 처음 시작할 때 느꼈던 소외감, 외로움을 미국에 와서 다시 느끼고 있다.
배낭에 아껴두었던 전자렌지용 떡볶이(사실 전자 렌지를 발견할 수 없어서 그런 거지만)와 즉석 미역국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시도했으나 기분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나는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특별 대우를 해주지 않는 강대국 미국에?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은 끝나가는 여행에? 일 년의 유예 기간 후에도 혼란스러운 나의 미래에 대해?
어쨌든 나는 미국이 싫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날이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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