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2. 09:49

D+283 071223 마이애미 보트 투어

마이애미에서의 둘째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셀레브리티들의 별장을 볼 수 있다는 보트 투어를 가기로 했다. 어제 리셉션에 33불을 내고 예약을 해서 아침에 픽업 버스가 왔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다운타운으로 가서 베이 사이드 마켓 플레이스(Bayside marketplace)에 내려주더니 보트 투어 표를 끊어 준다. 보트 투어는 부두에서 22달러를 내고 할 수 있으니 그냥 여기까지 이동하는데 11달러를 지불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완전히 속았다. 가이드북도 없고 정보도 없어 대충 투어를 신청했더니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쨌든 배는 떠난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높은 빌딩들.
시원한 바다 한 가운데로 나오니 11불에 대한 아픈 마음도 조금 사라지는 것 같다.
이 투어는 마이애미에 별장을 갖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의 집을 돌며 설명해 주는 것인데, 누구의 집인지는 다 까먹었다.
보트가 정박해 있는 하얀 집
바람막이 나무를 심은 저택,
멋진 집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차피 나는 꿈도 못 꿀 멋진 집을 돌아본다는 게 사실 별 의미는 없어 보였다.
자본주의 메카 미국에서는 와, 나도 언제 한 번 저런 집에 살아봐야지,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그냥 푸른 바다와 하늘을 즐긴 것으로 만족한다.
내릴 때가 다 되어 옆의 어떤 여자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는데 멕시코에서 왔단다.
-아, 나도 방금 멕시코에서 왔어요. 정말 멋진 곳이었죠.
와하까니, 뚤룸이니, 멕시코 음식에 대해서까지 재밌게 얘기를 나눴다. 6개월후 필리핀 친구랑 한국도 여행할 거라고 한다.
-내가 당신 나라를 사랑하듯이 당신도 우리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기는 오늘 워싱턴으로 일하러 간다고 마이애미 지도도 주고 시내에 가면 공짜 전철이 있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지도를 갖게 되니 마음이 좀 놓인다. 이제 시내를 좀 돌아봐야겠다.

부둣가의 Bayside market은 큰 쇼핑몰로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도 많고 사람이 북적북적한데 전철 타러 가는 길은 텅 비어 있다. 가끔 홈리스만 보인다. 오늘은 일요일, 설마 여기도 리오 같이 휴일에는 다운타운이 썰렁한 건 아니겠지?
College/bayside역.
진짜 공짜. 마이애미에서 처음으로 맘에 드는 것을 발견했다.
가로 다섯 블록, 세로 여덟 블록 정도를 순환하는 순환선이 있고 시내 바깥으로 나가는 노선도 있다.
한 칸, 또는 두 칸 정도의 전철이 오는데 무인으로 운행되고 양쪽 끝이 유리창이라 꼭 놀이공원 같다.
뒷 창으로 본 것.
신난다. 마주 오는 전철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Government center역에 내려 마이애미 아트 뮤지엄(Miami art museum)에 갔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흑인들이 여럿 모여 서성대고 있다. 홈리스 같아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들하고 얘기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우선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아.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갔다. 쿠바 레스토랑이다.
우유니에서 만난 쿠반 가이 루이스의 가족도 마이애미에 산다고 했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영어만큼 스페인어가 들리는 동네가 마이애미다. 버스 안내판에는 영어, 스페인어, 크레올어(아이티에서 쓰이는 언어)가 같이 씌여 있다.
샐러드를 시켰더니 엄청 많이 나왔다. 역시 미국은 음식 양에 대해서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물도 공짜로 줘서 만족.

뮤지엄에서는 'killing machine'이라는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설치 미술, 단편 영화 등을 보여주는 좀 이상한 전시였다.
나오니 네 시 반, 바로 앞에 시립 도서관(Miami-Dade public library)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도서관 같은데 들어가 본 것이 영국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책도 많이 구비되어 있고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표지가 신기했다. 공공 장소, 공원 등에서 음식을 먹는 것에 유연한 미국인데 샌드위치 등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성'등 일본 만화가 꽉 차 있는 코너가 있는 것도 재밌었다.
5시에 문을 닫아서 빨리 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좀 아쉬웠다.

괜히 전철을 타고 한 바퀴 돌고 베이사이드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잔돈을 내는데 계산을 잘 못해 조금 적게 냈나보다. 기사 아저씨가 부른다. 요금이 기계에 찍히고 동전을 넣을 때마다 금액이 줄어들어 정확히 요금을 내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처럼 우르르 동전을 넣으면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참, 이렇게 사람을 못 믿고 전자 장치로 행동을 통제하다니 역시 미국은 미국이다.

호스텔에 돌아와 빨랫감을 챙겨 코인 세탁소에 갔다. 작은 세탁기 2.5불, 큰 세탁기 4불, 7일 내내 밤 열 한 시까지 문을 연다.
창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을 스페인어를 쓰는 쿠바계 같은 같은 여인이다.
영국에서는 5시가 지나면 문 여는 가게가 없었다. 종업원들의 삶의 질도 보장하고 있다는 얘기.
난 무척 심심했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 일하고 쉰다는 게 좋았다.
이집트에서는 상점이 늦게까지 열었지만 그 때는 모든 사람이 다 그 때까지 일하고 있는 것 같았고.
여기 마이애미는 일하는 사람-흑인, 히스패닉, 아시안-만 늦게까지 일하고 나머지는 그걸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싼 노동력으로 부자들의 편의만 봐주고 있다고. 그게 기회의 땅일까? grocery에서 시작해서 CEO로 끝날 수 있다는?  아니다, Grocery 에서 시작해 Homeless로 끝나는 삶도 많지 않을까?

돈 아끼느라 제대로 건조를 못 시켰다. 7분에 25센트.21분이나 했는데도 아직 축축하다.
방에 돌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침대에 널 수 밖에 없었다.
어제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던 중국 아이 레이첼과 스위스 애 안젤라가 있다. 동부 어디에서 유학하고 있다가 놀러왔다고.
초췌한 모습. 멕시코에서 땋은 머리가 많이 풀어졌다. 
스위스 친구 안젤라.
레이첼이 좋아하는 한국 노래가 있다고 노트북에서 틀어준다. 나는 모르는 노래인데 중국풍으로 질질 늘어지는 노래다. 그러니까 중국애 레이첼이 좋아하겠지.

추운 겨울에 모든 사람들의 로망 마이애미, CSI 마이애미를 보고 푸른 바다와 멋진 해변 모습에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 그런데 나는 왜 이 곳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걸까? 어차피 따뜻한 남쪽에서 와서 그런가? 다음 기회에는 북쪽에서 내려와보고 싶다. 그러면 정말 마이애미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