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9. 09:56

D+301 080110 에드워드 호퍼를 만나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

아침 식사는 2불을 따로 내야 했다. 본전 생각해서 많이 먹으려고 했는데 빵으로 먹는 식사의 문제는 먹을 때는 질려서 많이 못 먹고 조금 있으면 배고프다는 것이다.
10시에 미술관이 문을 열기에 시간 맞추어 나왔다.
미술관 가는 길에 현대적 빌딩 사이에 낯익은 누각.
차이나 타운 입구는 어디나 똑같다.
스타벅스 간판도 한자로 씌여 있다. 스타의 댓구가 별 성 자라는 걸 알겠고 한자로 커피는 가배라고 쓰고, 나머지 두 글자는 모르겠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 도착, 위풍당당한 겉모습이다.
서관과(West wing)과 동관(East wing)으로 나뉘어 있고 동관에서 호퍼전이 열리고 있다.
워싱턴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다. 그의 대표작 <Nighthawk-야간식당>이 걸려있다.
호퍼를 처음 알게 된 건 이주헌씨가 쓴 어떤 책에서였다.
<Early Sunday Morning> 이렇게 단순한 구도로 일요일 아침, 텅빈 거리의 쓸쓸함을 그려내는 그의 능력에 반하고 말았던 것.
그런데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가 있다니 정말 나는 운이 좋은 것이다. 

입구에는 사람이 별로 없더니 안에 들어가니 엄청난 인파가 있다. 단체 관광객인가, 가이드가 큰 소리로 안내를 하고 있고. 
그래도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요함, 외로움은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Gas>,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길가의 주유소, 그래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주유기를 손보는 주인.  
<New York Movie> 영화를 보러온 즐거운 사람들 뒤로 혼자 있는 좌석 안내원.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집이 있는 풍경을 많이 그렸다. 현재의 실제 사진과 비교해 놓았다.
호퍼는 도시인의 외로움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였다. 혼자 앉아 찻잔을 기울이는 저 여자 모습이 꼭 나 같다.
그동안 책에서 접했던 그의 모든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림들이 나를 위해 이 곳으로 모인 것 같다.
행복하다.
고민 고민 끝에 25불을 주고 그의 화집을 구입하였다. 돌아갈 길이 얼마 안 남았으니 좀 무거워도 되겠지.
지금까지 미술관 투어 중 가장 좋았던 곳은 맨체스터의 로우리 미술관이었다. 알지 못했던 작가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 날의 이야기 보러가기
이번 호퍼 전을 두 번 째로 좋았던 곳으로 기억할 것 같다.

동관과 서관은 아트숍과 까페가 있는 긴 지하 통로로 이어진다. 
까페에서 치킨 텐더를 시켰더나 엄청난 양이 나왔다. 그래도 음식을 남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다 먹었다.
이제 힘을 내어 서관으로 한 번 가보자.
홀에 있는 칼더의 모빌, 미국 작가라 그런지 미국 미술관에는 다 그의 작품이 한 점씩 걸려 있다.
하일라이를 콕 찍어준 종이 한 장, 유용하긴 하지만 그것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언제나 스스로를  엄격하면서도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는 그의 눈.
베르메르 <Woman holding a Balance>,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
역시 베르메르 <A Lady Writing>
<The girl with the Red Hat>
베르메르는 36점의 작품 만을 남겼다는데 여기 세 점이 있다. 대단한 미술관이다.
모네 <Interior, after dinner> 햇빛에 의한 바깥 풍경 그림이 익숙했는데 이런 실내 그림에서도 모네 그림의 특징인 빛의 움직임을 잘 볼 수 있다.
메리 카셋<Little Girl ina Blue Armchair>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눈으로 그린 그림.
드가<Madame Rene de Gas> 발레하는 그림 말고 이런 것은 새롭다.
피사로<Boulevard des Italiens, Morning, Sunlight> 내가 좋아하는 거리 풍경 그림.
마네<The Railway> 아, 이 그림도 여기 있다.
세잔<The Artist's Father, Reading "L'Evenement"> 이 그림도 여기 있네.
또 세잔 <Peppermint Bottle> 다른 정물화에서 보였던 완벽한 구도가 여기서는 좀 비틀어진 느낌.
고흐 <Roses> 흰 장미라...고흐는 노란색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색의 그림을 안 그린 건 아니다.
티치아노 <Venus and Adonis> 욕망으로 가득찬 여인의 뒷모습.
무리요 <Two Women at a Window>수줍은 두 여인, 귀엽다.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The White Girl<Symphony in White, No.1> 하얀색 한 가지로 커튼과 옷자락을 다 표현했다.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Street in Venice> 동네 마실을 나온 듯한 여인, 베니스가 이렇게 생겼던가?
또 휘슬러 <Wapping on Thamses> Wapping 뜻을 모르겠다.

문 닫는 다섯 시가 다 되어 나왔다. 하루종일 미술관을 돌아다녀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지만 떠나기가 싫은 곳이었다.
벌써 어두워졌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저녁에 Capitol을 돌아보기로 했던 계획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미술관으로 워싱턴에 온 의미를 찾았으므로 더 이상의 관광은 별 의미가 없다.

오전에 봐두었던 스타 벅스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두 시간 동안 일기를 쓴다.
밤은 길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이 혼자, 혹은 여럿이 들어왔다 나간다. 모두 호퍼의 그림 속에 나오는 주인공인 것 같다.
나도 슬슬 일어나야겠다. 오늘은 맥주 한 잔이 몹시 그립지만 바에 혼자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