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8. 23:37
D+51 070505 sat 말라리아에 걸리다.
2008. 10. 28. 23:37 in 2007세계일주/킬리만자로
아침에 일어나니 좀 나은 것도 같았는데 문득 드는 생각, 이거 말라리아 아니야?
지역주민이 이용하는 병원에 갔다. 단층의 건물과 정리되어 있지 않은 정원이 아프리카답다.
특히 이 꼬마, 내가 그렇게 예쁘니?ㅎㅎ
호텔로 돌아오면 만나는 사람에게마다'나 말라리아 걸렸어요' 하고 엄살을 떨었다.
감기도 감기지만 이렇게 춥고 떨리는 건 좀 이상하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기는 했지만 웬지 불안하다.
어떻해야 하지? 다음 행선지인 나이로비에 가서 검사해야 하나?
5월10일에는 영국으로 가야하는데 영국에서 말라리아 검사를 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여행하다 아프면 현지의 병원에 가야 한다. 그 지역에 흔한 병은 그 동네 의사가 제일 잘 보고 검사 시스템도 잘 되어 있다.
투어 컴퍼니에 가서 도움을 청해봐야겠다.
가는 도중 첫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삐끼를 만났다.
얘네들은 모두 할 일이 없는지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 거는게 일이다. 아니 삐끼니 그게 할 일이겠지.
말라리아 검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가 병원을 안내해주겠단다. 이거 또 뭐 원하는 건 아닐까?
어쨌든 이제 혼자 다니는 것보다 누구든지 얘기하면서 같이 다니는 게 좋다.
컴퍼니 사장은 그저 감기일거라고 나를 안심시키려고 하는데 내가 꼭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이 곳에서 해결 못하고 계속 아프면 정말 큰일이니까 말이다.
병원에 갔다. 프랭크(삐끼)와 컴퍼니 사장 막내 동생이 같이 가주었다.
외국인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도 있는데 거기는 무척 비싸단다.
토요일인데 환자가 제법 많다. 돌아다니는 여의사도 보인다.
여의사가 많냐고 물으니 탄자니아에서 여성은 마마(엄마)로 가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일하는 여성도 많다고 프랭크가 대답해 주었다. 음, 그렇군.
우선 챠트를 만들었다.
주소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나 참, 아프리카 병원에서 진료 카드를 만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다.
말라리아 검사를 할 거라고 하니 어느 진료실을 가리킨다. 공부 잘했을 것 같이 생긴 전형적인 여의사 타입이 앉아있다.
-아, 전 한국의 내과 의사에요. 아무래도 말라리아에 걸린 것 같아요. 열이 나고 춥고...
들은척도 안 한다. 그 흔한 미소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어디가나 의사들이란...
-예방약은 라리암, 메플로퀸 먹었구요. 잘 먹었어요, 진짜에요...
내 손바닥을 한 번 보더니 말라리아 검사와 혈색소 수치 검사를 낸다.
원래는 바로 돈을 내야 하는데 프랭크가 옆에서 뭐라고 하니 우선 검사를 하고 오란다.
피뽑으러 갔다.
사람들이 줄을 주욱 서 있고 이렇게 쇠창살 안으로 손만 내밀어 피를 뽑는다. 피 뽑기 전에 600실링을 저 창살 안으로 넣어줘야 한다.
이 곳 대부분의 창문에는 쇠창살이 쳐 있다. 뭔가 위험한 동네이긴 한가보다.
어떤 바늘을 쓰나 잘 봤는데 우리가 쓰는 것과 똑같은 멸균 바늘을 쓴다. 에이즈가 만연한 동네이다 보니 그건 철저한 것 같다.
아팠다. 바늘로 찌르는 수준이 아니라 칼로 베는 수준이었다. 아줌마, 인정머리 없게 생겼다.
결과를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 피를 뽑고 있으니 사람들이 나만 쳐다 본다.
30분이 지나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시간은 12시가 되어 가고 병원도 점점 비어가는데. 혹시 의사가 퇴근해 버리면 어쩌지?
농담 따먹기 하면서 기다린다. 프랭크한테 머리가 자라냐고 물으니 자란단다. 이발도 자주 한다고.
전부터 한 번 만져보고 싶어서 그래도 되냐고 했더니 그러란다. 오, 나일롱이 따로 없는 뻣뻣한 머리다.
1시간 넘게 기다려도 결과가 안 나온다. 리틀 캐시가 알아보고 왔는데 아까 잠깐 정전이 되서 더 늦어진다고 한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말라리아가 아니면 우리 돈 내지 말고 도망가자. 나의 말.
그런데...
이게 뭐지? 알아보기 힘든 영어지만 혈색소가 72g/L 이고 말라리아가 있다는 거 아니야? 진짜 내가 말라리아에 걸렸던 거야?
그럼 그 등산의 힘겨움이 다 설명된다. 나는 원래 약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단지 말라리아가, 저 낮은 혈색소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정상 상태로도 올라가기 힘든 5000미터를 평상시 혈색소의 2/3를 갖고 올라갔으니 숨이 안 쉬어지는 게 당연하다.
의사에게 돌아갔다. 심상하게 적는다.
합병증 없는 말라리아(Uncomplicated malaria), 그리고 약 처방.
전문의 시험을 엊그제 봤기에 아직은 지식이 남아있다.
-적혈구의 20% 이상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있으면 입원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냥 약만 3일 먹으면 돼.
-아, 네.
바로 꼬리 내렸다.
그래도 기념삼아 사진은 한 방 찍어야지.
탄자니아 의사 선생님과 한 방, 진료실 풍경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의사에게 바로 만 이천 실링을 지불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500실링을 내면 챠트도 내가 가져갈 수 있단다. 기념품으로 챙겼다.
약 사러 갔다. 프랭크가 안내해 주고 가서 약사에게 얘기도 해 주니 참 편하다. 새치기인지 다른 사람 제치고 앞에 나가 약을 샀다.
약 값 8500실링.
말라리아를 해결하고 안심이 되니-이제 약만 먹으면 된다는 거지-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다.
같이 다녀준 것이 고마워서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 로컬 레스토랑(Eastern africa pub) 에 갔다. 토요일 점심이라 사람이 많다.
바베큐 쇠고기와 구운 바나나,고기가 좀 질겼지만 소스에 찍어먹으니 먹을만하다.
얘네는 소다를 두 병씩 먹는다. 그러니 이빨이 남아나지 않을 수 밖에.
내가 좀 우울해 보였나 보다.
-너 안 죽어. 프랭크의 말
-나도 알아
-말라리아 걸린게 이게 처음이야?
-그럼, 당연하지.
-나는 몇 번이나 걸렸었어. 몇 년전에는 입원도 했었다구.
그래 말라리아는 아프리카에서는 감기 같은 것이다.
호텔로 돌아오면 만나는 사람에게마다'나 말라리아 걸렸어요' 하고 엄살을 떨었다.
모두 '뽈레 사나'(very sorry, 매우 유감이라는 뜻) 하면서 걱정해 준다.
상근에게 전화했다. 킬리만자로 꼭대기를 밟았으나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을 뻔하였다고 보고 하였다.
상근은 지금 국경도시 므완자에 있고 내일 우간다로 넘어간단다. 아루샤에 갔었는데 사기꾼도 많고 분위기가 안 좋단다.
그냥 모시에서 쉬라고 한다. 나도 그럴 생각이다. 몸도 아픈데 낯선 도시에 가서 헤매고 싶지 않다.
모시는 작은 도시고 좀 오래 있었더니 모두가 친구같다.
말라리아를 제일 잘 이해해 줄 승희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감염내과 전공이 아닌가.
예방약이 100% 예방해 주는 건 아니라는 전문가의 말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냔 말이다. 시기도 적절하게.
그레나다 호텔의 모기장 밖으로 삐져나온 발이 문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 모기, 웬지 불안했다.
말라리아 원충이 내 몸으로 들어온 순간을 기억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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