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8 19:53

D+49 070503 thu 킬리만자로 넷째날, 우후루봉에 오르다,5895m

11시 반에 존이 깨우러 왔다. 덜덜 떨면서 자서 그런지 몸도 아프고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다. 어쨌든 출발할 시간이다.
차를 조금 마시고 여행사에서 빌린 등산복으로 무장을 하였다.
바지 세 벌, 셔츠 다섯 벌, 두꺼운 스키자켓, 각반을 차고 바라클라바(테러범들이 쓰는 눈구멍 두 개 입구먼 하나 뚫린 가면 같은 것)를 뒤집어쓰고 두꺼운 스키장갑을 끼고 초콜렛을 챙기고 출발, 내 가방은 존이 멨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출발했나보다. 경사가 거의 70도나 되는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달이 밝아서 헤드 램프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다. 지그재그의 길이 나 있는데 정확하지 않고 미끄럽기조차 하다.
존이 자기 뒤만 따라오란다. 쉬었다 가면 춥고 고산병이 더 잘 오니까 천천히 계속 가야 한단다.
그래, 계속 가는 거야 뽈레뽈레(천천히 라는 스와힐리어) 계속 가다 보면 꼭대기가 나오겠지.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꼭대기는 아직 멀리 있다. 옷을 많이 입어 추운지는 모르겠는데 주머니속 물통 안 물에 살얼음이 끼어있다.
흔들리는 물이 얼려면 몇 도나 되야 하는 걸까?
마지막 몇 백 미터는 그냥 바위뿐이다. 길이 없다. 바위 사이를 뚫고 가는데 해가 뜨고 있다.
그래, 해가 뜨면 좀 낫겠지, 따뜻하고 환하면 좀 낫겠지.
기다리던 해가 뜬다.
드디어 길만스 포인트에 도착, 6시 21분, 5681미터, 이 정도 높이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화산구로 가운데가 푹 파여져 있고 눈이 있다.
아프리카, 적도에 가까운 이 곳에 눈이 있다.
므완자 봉이 저 멀리 보이고,
구름은 한참이나 아래에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보온병의 차 한 잔, 이정도면 괜찮아, 괜찮다.
그래요, 우리 여기까지 왔어요.
별로 즐겁지는 않다.
저 돌길을 거의 기어서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분화구를 반바퀴쯤 돌아 제일 높은 지점까지 가야 한다.
길이라기보다는 눈에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
미끄럽고 눈에 반사한 햇빛 때문에 눈도 부신데 가슴이 답답하고 잘 걸을 수가 없다.
5미터도 못 가고 쉬어야 한다. 쉬어서 숨을 몰아쉬어야 겨우 몇 발짝 더 뗄 수가 있다. 아, 왜 이러지?
본격적인 고산병이 지금 시작되는 걸까? 존은 계속 가야한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돌아가는 건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발이 도저히 떼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온 것 같은데 아직 멀었다.
내려오는 사람이 몇 있다. 나랑 같은 코스로 움직였던 사람들이 아니다. 다른 코스로 올라왔나?
조금 남았다고 힘내라고 한다. 그래, 조금 남았겠지,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그런데 눈길은 끝이 없어보인다.
저기 팻말이 보인다. 마지막 몇 십미터가 죽을 것 같이 힘들다.
9시10분, 5895m, 아프리카의 최고봉, 산소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 킬리만자로 우후루봉을 찍었다.
존은 이런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을까?
빙하가 있다. 내 생애에서 처음 보는 빙하.
저 빙하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 저 얼음의 켜켜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담겨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잠시 스쳐가지만 난 그저 여기 눕고 싶다. 조금만 누워서 쉬었다 가면 안 될까?
존이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재촉한다. 눈이 녹으면 길이 미끄럽단다.
여기가 정상인데, 그렇게 오르고 싶어한 정상인데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내려가는 길은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벌써 눈이 많이 녹아 길이 미끄럽고 한 발 잘못 디디면 분화구 한가운데로 떨어질 판이다.
겨우겨우 기다시피 해서 길만포인트까지 왔다.
이제 키보헛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올라올 때는 지그재그로 올라왔지만 내려갈때는 주욱 미끄러지면 된단다. 그런데 흙길에 먼지에 이것도 쉽지 않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릿길 같고 그나마 몇 발자국 못 가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지금 탈수증, 저혈당, 저 나트륨 혈증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계속 맴돈다. 헬기를 불러야 할까?
가야한다. 내려가서 블로그에 'I climbed Uhuru peak, the highest point of Mt. Kilimanjaro' 로 시작하는 글을 올려야 한다.
상근에게 전화해서 '나 죽을 뻔 했쟎아' 하고 얘기해야 한다.
존이 내 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가기도 하고 내가 썰매를 타듯이 손을 잡고 매달려 가기도 하고 한 번은 업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은 내 힘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 존도 힘들어 보인다.
물병의 물도 다 떨어지고 초콜렛도 다 떨어졌다. 이제 남은 에너지가 거의 없다.
저 아래 오두막 지붕이 보이는데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지났다. 남들은 두 시간이면 내려온다는 하산길이다.
저기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다 오긴 왔나보다. 어, 우리 포터가 오렌지 쥬스를 들고 마중을 나왔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이제 포터가 나를 질질 끌고 갔다. 겨우 키보헛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세 시 반, 15시간이 넘는 사투(?)가 끝났다.
눕고 싶을 뿐이다. 침대에 기어들었다. 안 그래도 추운데 몸이 덜덜 떨리고 열이 있는 것 같다. 감기에 걸렸나?
존이 오더니 오늘 호롱보 헛까지 가야 한단다. 여긴 음식도 없고 오늘밤 여기서 지내면 내일 마랑구 게이트까지 갈 수 없단다.
도저히 못 가겠는데...빨리 고도를 낮추는게 좋고 지금 조금 쉬면 나아질 거란다.
네 시 반에 깨어 수프를 좀 마시고 다섯 시에 출발했다.
타이레놀과 유니독시(항생제)를 먹으니 몸이 떨리는 건 좀 나은 것 같다.
해는 뉘엿뉘엿 져 가고 내가 걷고 있는 건지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숨 쉬는 건 조금씩 편해져 가는데, 날은 점점 어두워지며 아무 불빛도 없고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존은 길을 알고 있는 걸까? 여기서 길을 잃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제 6시간 걸린 길을 세 시간 반 만에 걸어 8시 반에 호롱보 헛에 도착했다. 숨쉬기가 훨씬 편하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힘든 날이 또 올까? 지금까지는 레지던트 1년차 첫날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어떤 일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니 이제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걸까? 이 하루는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하게 될까?
킬리만자로에서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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