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0. 21:01

D+85 070608 fri 세비야 미술관.

어제 늦게까지 놀았더니 9시가 넘어 일어났다. 늦게 식당에 내려가니 씨리얼도 다 떨어져 아침도 못 먹고 나왔다.
돌아가다 코르도바에 들를까 했는데 그라나다와 세비야로 안달루시아 지방은 충분히 돌아봤다고 생각되어 세비야 미술관에 잠깐 들렀다 마드리드로 가기로 했다.
단체 관광객의 행렬.
차가 다니는 도로보다 사람이 다니는 도로가 더 넓다. 이 거리가 너무 좋아.
배고파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니 카페 콘 레체(우유를 넣은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아침 해결. 아침부터 한가로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 관광객은 아닌 것 같은데...
스페인은 셀프 서비스가 아니라 바에서 주문하는 곳이 많아서 주문하기가 좀 어렵다. 말로 해야 하니 말이다.
아직까지는 숫자와 카페 콘 레체 정도를 구사하는 걸로 어찌 넘어가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이유는 아저씨 팔뚝의 털 때문에.^^ 털이 적은 동양 사람이 더 진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털 많은 건 싫어요.
쇼핑가를 걷다 FNAC(프랑스 체인 서점) 에서 몰스킨 노트를 한 권 샀다. 오래 전부터 갖고 싶은 것이었는데 일기장이 다 떨어져 가기 때문.
우리 돈 만 오천원 정도. 우리나라나 영국에서 2만원이 넘으니 스페인이 싸긴 싼 것.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늦어서 11시 반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 2시 30분 버스표를 샀다.
애런은 1시 30분 버스를 탄다고 했으니 못 만나겠군. 좀 아쉬웠지만 이틀 동안 같이 다녀서 더이상 할말이 없으니 안 만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미술관에 갔다.
'안달루시아의 물'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단체로 관람을 와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었다.
중정이 있고,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미술관.
영구 전시는 수르바란과 무리요의 그림이 많았는데 옛날 종교화는 별 흥미가 없어서 그냥 빨리 지나갔다.
맘에 든 몇 개의 그림. 상설 전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좋았다.
12성자 중 한 사람을 그린 것. 가장 잘생긴 모델을 데려다 놓고 그린 게 아니었을까?


반항적인 모습의 소녀도 언젠가,
아름다운 여인이 되겠지.
안달루시아의 물에 관한 그림을 모아놓은 특별전은 좋았다.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전시였다.
특별전 엽서를 한 묶음 사고 뿌듯해 하고 있는 나.
미술관 앞 공원에서 빵과 아이스티로 점심.
버스 시간이 빠듯해 빨리 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승강장에서 서성이고 있다.
-헤이, 애런, 한 시 반 버스 탄다고 그랬쟎아.
-늦게 일어났어. 12시에 왔더니 표가 없더라고.
-난 미술관까지 갔다왔는데...그 가방은 태국에서 산 거야?
-응, 티셔츠는 벨리즈에서 온 거고, 속옷은 미국에서 왔지.
-내 티셔츠는 아프리카에서 온 거고 바지는 영국 헌 옷 가게, 속옷은...말할 수 없지.
-어디서 샀는지 기억 못한 다는 거야, 안 입고 있다는 거야?
이런, 어제도 끊임없이 농담 따먹기를 하며 나를 놀리더니 한 방 또 먹었군.
2시 반에 버스가 왔다. 옆자리 사람에게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해서 같이 앉았다.
버스는 6시간 반을 달렸다. 가끔 얘기하고, 졸고, 서로 지루해하며 마드리드까지 왔다. 으, 역시 오늘은 안 만났어야 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
-잘 가, 그리고 조심해, 세상은 위험한 곳이거든.
-너도 마찬가지야. 병원도 만만치 않게 무섭거든.
-병원 애기 좀 그만 해.
-오, 미안, 미안, 잘 가, 넌 분명히 좋은 의사가 될 거야?
-글쎄...
-분명 그럴 거라구...
인턴 시작하기 전 나도 유럽을 한 달 간 여행했었다. 그 때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얼마나 싫던지...애런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힘들어도 애런은 분명 좋은 의사가 될 것이다.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진짜 스페인을 느낄 수 있었고, 좋은 친구도 만난 짧지만 알찬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