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6. 23:43

D+102 070625 아부심벨 투어

새벽 3시, 모닝콜이 울린다.
대충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챙겨준 도시락을 들고 16인승 미니버스에 탔다.
새벽부터 웬 고생이냐, 꼭 이렇게 일찍 출발해야 되는 거야? 혼자서 투덜투덜.
버스 자리도 좁고 열린 창문으로 건조한 사막의 바람이 불어온다. 투어 예약할 때 에어콘 버스라고 했는데 뭐 이래? 또 투덜투덜.
양쪽은 모래 언덕 뿐인 사막, 그래도 길은 잘 닦여 있다.

꼬박 네 시간을 달려 7시 반에 아부심벨에 도착. 벌써 후덥지근하다.
입구.
수십대의 미니버스가 벌써 와 있고 단체 관광객도 많다.
모두 앉아서 각자 싸 온(호텔에서 싸 준)도시락을 먹고 있다. 나도 마른 빵을 꾸역꾸역 목으로 넘기고 들어간다.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나타나는 건 거대한 호수.
아스완 댐에 의해 생긴 나세르(Nasser) 호이다.
1960년대에 이 호수 때문에 아부심벨이 물에 잠길 위험에 처하자 그대로 이 곳으로 옮겼다는데...
모퉁이를 돌아서자 갑자기 나타나는 거대한 석상.
정말 어마어마하다. 람세스 2세(Ranses II)가 신에게 바친 신전, 아울러 그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해 지은 신전.
20 미터 높이의 람세스 자신의 석상이 있고 그 사이의 작은 석상은 그의 엄마, 부인 네페르타리(Nefertari),그들의 아이들이란다.
3천여년전에 만든 신전, 그 세월을 거쳐 이렇게 온전히 보존되어있다는 게 놀랍다.
사막 기후라 비가 오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다.
내부 신전도 크고 각종 부조와 조각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디 가나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
하터 신전(Temple of Hathor), 높이가 10미터라니 아부심벨 신전보다는 작다.
네 개의 람세스 석상과 두 개의 네페르타리 석상이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꽤 있다. 부탁해서 찍은 증명사진.
주변의 기온이 체온보다 높을 때는 꽁꽁 싸맬수록 시원하다.
정말 거대하고 멋지긴 한데 너무 더워서(헥헥) 충분히 감상하고 즐길 수가 없다.
그 옛날 이 더운 사막에 거대한 신전을 지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사병으로 죽었을까?
나가야겠다, 돌아서는데 어떤 한국 여행객이 자청해서 찍어준 사진. 어색하게 서 있으니 브이라도 한 번 해보라고...
저 거대한 것들을 어떻게 뜯어서 옮겼을까? 인간의 힘은 3000년전이나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왜 투어가 일찍 출발하는지 알 것 같다. 아홉시 밖에 안 됐는데 숨막힐 듯이 덥다.
모두들 지친 얼굴로 미니 버스에 탄다.
다음 코스는 아스완 댐.
댐을 지었다는 준공탑.
좀 작고 이전에 지어진 아스완댐이 있고 아스완 하이 댐이 있는데 이게 아마 아스완 하이댐이겠지?(기억이 안나요)
뭐 이래? 썰렁하쟎아. 8P의 추가 요금을 내고 더위를 뚫고 버스 밖으로 나온 보람이 없다.

돌아가는 길에 필레 신전에 들른다.
호수 한가운데 있어 배를 타고 가야하는데 가격을 각자 흥정해야 한다. 관광객과 보트가 뒤섞여 혼란스럽다.
같은 투어의 미국에서 왔다는 인도 학생들에게 끼여서 3.5P 내고 배를 탔다.
눈 앞에 나타나는 필레 신전.
이시스 여신에게 바쳐졌고 필레 섬이 수몰되자 이 곳으로 옮겨왔다는 신전.
보러간다.
조용하다.
이시스 여신이나, 아니면 클레오파트라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신혼 여행 왔다는 일본 커플.
어떻게 이것들을 분해하고 가져와서 그대로 만들었을까? 정말 대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낮의 햇볕은 숨이 막힐듯이 내리쬐고 희미하게 들리는 호수의 물결소리,
몇 천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때 사람들이 느꼈던 '신'을 나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오늘의 마지막 스탑.
오후 세 시, 지쳐서 버스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완성됐더라면 한덩이 돌로 만든 가장 큰 건축물이 되었을 거라는 42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흠집이 발견되어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아부심벨 투어가 끝났다. 새벽부터 일어나 더위에 돌아다녔더니 무척 피곤하다.
룩소르로 가는 6시 기차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침에 마른 빵 먹고 하루 종일 굶었으니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역 앞의 Biti 피자에 갔다.
손님 한 명도 없고 요리사며 웨이터며 다 늘어져 있다가 내가 들어가니 주섬주섬 일어난다.
이 더위에 음식 만드는 것도 정말 고역이겠다. 내 돈 내고 먹는데 괜히 미안하다.
론니에 좀 비싸다고 나와있었는데 20P, 토핑도 듬뿍 올려져 있고 치즈도 아낌없이 뿌려줘 맛있으니 다행.
에어콘은 없어도 이층에서 역 앞 광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더위도 견딜만 하다.
아부심벨은 한 번 볼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아스완에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 너무 덥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익숙해져서 괜찮을까?  검은 옷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여인들은 어떨까?
난 빨리 북쪽으로 가야겠다.

룩소르로 가는 기차에서 아까 투어하며 봤던 한국인들을 만났다. 방학이 시작해서인지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다.
여자 2명, 남자 2명인데 여기 와서 만났다고.
내가 아직 숙소를 못 정했다고 하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룩소르 게스트하우스에 같이 가잔다.
밤늦게 도착해서 숙소 잡는 것도 일이니 따라가기로 했다.
룩소르 역에 주인장 김태엽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나와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가니 왁자지껄한 한국말, 일행들이랑 라면 끓여 먹고 차가운 보리차를 마시고 있으니 꼭 엠티 온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