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5. 20:39

D+247 071117 파타고니아, 머나먼 그 곳을 향해, 푸에트로마드린-리오가예고스 이동

열 시 버스니 여유가 있다.
열쇠 문제로 탈도 많았지만 싸고 매니저가 친절해서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피신처 호스텔.

오늘 오렌지빛 배낭을 메고 향하는 곳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쭉 내려가서,

리오가예고스(Rio Gallegos)를 거쳐 엘 칼라파테(El Calafate)까지.
리오가예고스까지 1200km, 무척이나 긴 버스 여행이 될 것 같다.
한 시간쯤 걸려 바릴로체에서 올 때도 들렀던 트렐리우(Trelew)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것. 두 곳에서 온 버스를 하나로 합치는 것 같았다.

우왕좌왕, 버스가 언제 출발하지 모르니 다른 데 가서 쉴 수도 없고 짐 어디로 샐까봐 지켜봐야 하고.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갈아탔다. 맨 앞자리에도 못 앉았다. 

대서양 바다를 왼쪽으로 하고 평원을 달린다.

 별로 볼 것이 없는 풍경이 연속적으로 펼쳐지고 지루하다.

어쩌다 마을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립된 도시, 농작물도 자라지 않을 평원, 뭘해서 먹고 살까? 어촌일까?

아, 그런데 석유 시추공이 보인다. 석유가 나는 동네니 먹고 살 수는 있겠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도 100km 넘게 떨어져 있으니 심심하기도 할 것 같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부대끼고 있는 우리 나라 사람만의 생각일까?
석유 시추의 중심도시  코모도로 리바다비아(Comodoro Rivadavia)에서 많은 사람이 내렸다.
아르헨티나는 석유를 자급하는 나라로 석유 생산량의 1/3이 이 곳에서 난다고.

사람들이 내린 틈을 타 맨 앞자리를 확보했다. 이제 좀 낫겠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인데 길가에 빨간 깃발이 펄럭대고 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을 기리는 표시 같다.

직선의 도로가 수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다.
이렇게 넓은 땅덩어리를 달리고 있으면 웬지 마음이 먹먹해진다.  존재하는 것은 이 버스 하나뿐, 지구를 횡단하는 외로운 여행자 같은 느낌이다.

밥도 주는데 샌드위치를 두 개나 주고 치즈가 끼워진 햄버거빵도 준다. 공짜는 언제나 좋아.

흔들리는 버스에서 일기를 쓰시는 대디.

거인이 도끼로 꼭대기를 댕겅 잘라버린 것 같은 산.

장거리 버스 앞 유리는 대개 이렇게 금이 가 있다. 길에서 돌멩이기 튀어서 생긴 것.
앞자리에 앉는 게 좋긴 하지만 돌이 튀어오르거나 사고가 나면 매우 위험한 자리.

어쩌다 만나는 마주오는 차가 무척 반갑다.

아, 지루하다, 지루해.

대평원에 해는 지는데 이 밤을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9시에 허허벌판에 있는 휴게소에 세워준다. 40분간 휴식.

지금은 민영화된 아르헨티나 국영 석유 회사 YPF.

저녁 안 주나? 워낙 늦게 저녁을 먹는 나라이니 아직 기대할 만하다. 우선 배고파서 좀 먹기로 한다. 엠빠나다와 피자.
차가운 피자를 다 먹었는데 전자레인지를 발견했다. 여행 떠나고 전자레인지 본 것 처음인 것 같다.
데워먹었으면 백 배는 맛있었을텐데, 어찌나 아쉽던지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거리 버스 여행에 변변찮은 식사에, 보통 어른이었으면 엄두도 못낼 여행을 즐기시는 마이 대디.

저녁 식사는 주지 않았다.
자다 깨다 하며 힘겹게 가고 있는데 새벽 한 시쯤 버스가 도로 한가운데 갑자기 선다.
또 버스를 바꿔타야 한단다. 왜? 왜? 왜? 조금 기다리니 승객을 반쯤 채운 버스가 와서 선다.
몇 시쯤 어느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거겠지? 주변에 집 한 채 없는 깜깜한 파타고니아 대평원에서 이게 무슨 일이람?
우리가 버스를 옯겨가야 했는데 좌석이 꽉 차고 냄새도 나고 안 좋았다.
버스는 새벽 6시에 리오 가예고스에 닿았다.


*푸에트로마드린-리오가예고스 이동 장거리 버스 20시간, 149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