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 23:16

D+302 080111 워싱턴-뉴욕 이동, 뉴욕 모마(MoMA)

워싱턴 그레이 하운드 터미널에서 비스킷이라는 아침 메뉴를 사먹었는데 완전 기름에 쩔은 빵에 햄버거 패티가 끼워져 있었다. 미국인의 비만이 다시 한 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버스는 쉬지도 않고 4시간을 달렸다. 창밖에는 안개, 가끔 빗방울도 뿌린다. 1시에 뉴욕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비가 퍼붓고 있었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맞으며 걷다가 호스텔 도착했는데 방이 없단다. 엊그제 체크 아웃하며 이틀밤 뒤에 온다고 예약을 하려 했는데 어차피 빈자리가 많다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던 것이다.
그 때 일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리셉션에 있었는데 그런 얘기를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며 아주 불친절했고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브라질리언 가이인데 브라질에서 만났던 유쾌하고 친절한 브라질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다.
아프리카에서는 흑인들이, 중동에서는 아랍 사람들이, 남미에서는 히스패닉들, 모두 나에게 친절했는데 뉴욕에서 만나는 그 나라 사람들은 왜 아무도 친절하지 않은걸까? 이민자의 힘든 삶을 살고 있으니 성격이 점점 팍팍해지는 걸까?

결국 조금 기다려보기로 하고 보스턴-샌프란시스코 비행 스케줄을 바꾸러 아메리칸 에어라인 사무실에 찾아갔다.
돌아온 시간이 4시, 나를 보자마자 'You got it!'한다. 4인용 도미토리, 2불 비싼데 방, 화장실 모두 좁다. 옆 침대의 네덜란드 아가씨 두 명은 유쾌한데 어찌나 짐이 많은지 방바닥에 구두며 옷가지들로 걸어다닐 공간도 없다.
새롬양에게 트렁크를 맡겨놔서 304호에 있는 새롬을 찾으니 205호에 있단다. 분명 내 기억에 304호인데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나중에 만나 보니 새롬이 있던 방에 시끄런 이태리 남자애 세 명이 술에 취해 밤에 들어와서 방을 옮겼단다. 호스텔예약사이트의 리뷰대로 뭔가 예약 시스템, 호실 배정에 문제가 있는 호스텔이다.

방 문제가 해결되고 라면을 끓여 먹고 모마(MoMA, Museum of Modern Art)에 갔다. 오늘, 금요일 저녁이 무료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아 조용히 그림을 감상할 분위기는 못되었다.  
키리코 <Gare Montparnasse-몽파르나스역>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한테 길을 하늘로 올라가게 그렸다고 야단을 맞았던 기억.
음, 역시 나는 그 때부터 초현실주의적인 화풍을 가졌던 것이야. 그래도 미술 점수는 전무후무한 '미'가 나왔었다는 사실.
클림트 <The Park> 키스 같은 작품이 유명하지만 난 클림트의 풍경화가 더 좋다.
고흐 <Starry night>
호퍼 <House by Railroad> 저녁 해를 맞고 있는 기찻길옆 오두막(?), 유년의 풍경.
몬드리안 <Broadway Boogie Woogie,1943년>, 기하학적인 추상화로 유명한 몬드리안, 악보를 보는 듯한 그림, 명랑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그도 처음에는,
이런 그림을 그렸다. <Truncated View of the Broekzijder Mill on the Gein, Wings Facing West, 1902-1903>, 그런데 왜 풍차를 중간에 싹둑 잘라 그린 걸까? 카메라의 프레임을 보고 있는 듯하다. 풍차의 꼭대기를 그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중간에 이런 과정을 거쳐서, <View from the Dunes with Beach and Piers 1909> 몬드리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과 면으로 된 그의 스타일의 추상화를 완성하게 된다.
벤 샨(Ben Shahn) <Handball>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미국인. 우리가 알고 있는 핸드볼이 아닌 벽에 공을 치는 건가? 미국의 뒷골목 풍경.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눈 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갈 수 없는 길이 얼마나 많은지...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 <Seated Woman Being Served Tea by Standing Companion> 뒷배경의 무늬가 신선하다. 캘리포오니아의 햇빛이 연상되는 그림.
자코메티 <The Artist's Mother> 슥슥 그냥 그은 것 같은 선, 단순한 몇 가지 색깔로 통일성을 부여하는 테크닉, 길게 늘여진 조각에서의 느낌이 회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코메티 <The Chariot> 바로 이런 조각처럼.
1,2층을 연결하는 계단 중간에 걸려 있는 마티스의 <Dance I>
보나르 <The Bathroom> 살아있는 것들(사람, 개, 고양이?)의 부드러운 느낌은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무생물(테이블, 창문,타일)까지 부드럽게 느껴지는 그림.
Edouard Vuillard <The Park>, 제작 기법이 'Distemper on canvas'유화와는 좀 다른데 수성도료란다.

유명한 그림은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는 차원인데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뜻하지 않게 맞닥뜨리는 그림들이다.
몬드리안의 풍차 풍경, 보나르의 그림이 제일 좋았다.
20블록을 걸어 호스텔로 돌아왔다. 새롬양을 만나 짐을 찾고 이제 정리가 다 되었는데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뉴욕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