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4. 22:23

D+13 070328 wed 소슬비 사막을 향하여

새벽에 일어나 계속 달리는 날이다.
지루하다.
장기를 두고 있는 요른-마일린 커플. 중국을 여행할때 배웠다고 했다.
조금 큰 마을이 나오면 식료품 등을 사기 위해 멈춘다. 니키가 식료품을 사는 동안 사람들은 맥주와 얼음을 사서 아이스 박스에 담는다.
마을에서 발견한 액센트, 어찌나 반갑던지...!
끝이 없어보이는 길을 하루 종일 달린다.
니키가 내려서 좀 걸어보란다.
네덜란드 의대생, 그리고 나, 복장 완전히 차이난다.
흰 피부가 햇볕에 약해 빨갛게 익어버리는데도 절대 가릴 생각을 안한다.
햇빛 제일 많이 피하는 사람은 일본인, 그 담에 한국인 되겠다.
이런 풍경이 보이는 곳에서 점심시간.

점심은 대개 샌드위치, 음식을 조리할 수 있도록 트럭이 잘 설계되어있다. 만드는 것을 돕는 건 자유, 설겆이는 의무.
갈수록 땅이 평평해지고,
붉은 빛으로 변한다.
고등학교 때 지리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중해성 기후에서 사바나 기후를 거쳐 사막지대를 향해 가고 있는 것.
모래가 눈이며 코로 사정없이 들어와서 깔깔하다.
오후 세 시쯤 도착하여 텐트를 쳤다.
사막에도 나무는 자란다.
조금이라도 그늘을 차지하기 위해 애썼으나 결국 지구는 돌고 있고 태양은 움직인다. 어차피 더워서 텐트 안에 있을 수도 없고.
저기 어딘가에서 사자나 뭐 그런 게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이거 완전 동물의 왕국 배경인데 사자는 어디 있는 거야? 어디 재규어나 늑대나 삻쾡이 같은 거라도...

해가 지면 제대로 된 조명이 없어서 뭘 할 수가 없다. 진짜, 깜깜하다.
대개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게 된다.
오늘은 신혼여행 커플 남아공 사람 이언과 얘기를 해보았다.
3년전 런던에서 호주 여자 일레나를 만나 얼마 전 결혼해서 이 여행이 신혼여행.
전에 무슨 일을 했냐고 물어서 의사라고 했더니 "You are clever" 라고 한다.
그렇지, 내가 한국에서는 smart 하고 clever 하지. 여기서는 shy 하고 신비로운(?) 동양여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근데 얘가 "Do you eat cricket?" 이라고 묻는 것이다.
순간 cricket 이 뭐지? 에? 귀뚜라미 같은 거 아니야?
- 아니, 우리 그런 거 안 먹어.
- 그럼 개나 고양이 같은 건 먹어?
- 아니, 아니 우리는 개를 사육용으로 키워서 먹어. 애완동물을 먹는 게 아니야.
저기 있던 기셀리모도 놀란 듯이 묻는다.
- 보람, 너 개를 먹는단 말이야?
- 아니라니까!!!
이 사람들이 왜 이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개를 먹는 나라' 그것뿐인 것 같다. 우리가 못 사는 나라인 줄 알고.
우리도 충분히 누릴 것 누리고 잘 사는 나라다. 최소한 남아공이나 아르헨티나보다는 잘 사는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것이 뭐가 중요할까? 이들은 언제나 세계를 지배해왔던 백인들이고 우리는 그저 오리엔탈적인 신비롭고, 이상하고, 가난한 동양인들인 걸. 한국에 돌아가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꼭 읽어야겠다. (이런 결심을 했었구나)
뭐 이런 저런 얘기를 이언과 나누고 있는데 일레나가 나타나서 우리 사이에 끼여든다.
이언은 일레나랑 결혼할 수 있어서 자기가 럭키 가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언이 아깝다, 아까워.
서양 여자애들은 동양 여자에게 무척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뭔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그래, 내가 그 심정 이해한다. beautiful korean girl 이니 말이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사막의 일출을 보러가야 한다는데 과음했다. 잘 일어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