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6. 21:36

D+14 070329 thu 붉은 사막에서의 일출

새벽에 캠프가 부산하다. 에고 잠도 제대로 못잤는데 일어나려니 고역이군.
이 캠프가 아마 소슬비 사막에 가까이 있는 유일한 캠프인 것 같은데 캠프의 모든 투어 차량이 캄캄한 밤길을 마구 달려댄다.
우리 운전사 심바가 일등!!!
저기 앞에 붉은 사막의 모래 언덕(dune)이 있다.
모두 차에서 허겁지겁 내리더니 죽을 힘을 다해 모래 언덕을 오른다. 위에서 일출을 봐야 한다니.
말이 좋아 언덕이지 300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사실은 잘 모름) 푹푹 빠지는 모래산을 뛰어오르니 심장이 터질 것같다.
나랑 50대의 하이드룬 아줌마와 매일 담배를 피워대는 리언만 뒤에 처졌다.
역시 운동을 조금 더 한 후 출발해야 했던 걸까?
새벽의 사막은 춥다. 찬 바람에 사람들이 모두 기침을 하고 있다.
겨우 끝까지 올라갔는데 아직 해 뜨려면 먼 것 같다.


놀면서 기다릴 수 밖에.
모래 언덕과 마른 땅 밖에 없는 풍경이다.
무지 춥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가 드디어 떠오른다.

오, 멋지군. 정말 멋지군...아름답다, 붉은 사막,
언제나, 사막과 빙하는 내 로망이었다. 그 로망이 실재함을 나는 지금 안다.
모두들 감동하고 있다.
이 사진 크게 뽑아서 벽에 걸어놔야 하는데...
내려가야지, 해가 뜨면서 금방 더워지기 시작, 아직 맨발의 모래는 차갑다.
올라갈때는 능선을 따라, 내려올때는 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니키가 오믈렛으로 아침을 준비해놨다.
음, 저걸 뛰어올라갔던 거였군.
이 사막의 듄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변하지만 바람의 방향도 매년 일정하기에 결국은 절대 변하지 않는단다.
여기 나미비아의 소슬비 사막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이고.
자 이제 일출을 봤으니 진짜 사막에 대해 알아보러 가자. 가이드 투어. 옵션, 180랜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가이드 아저씨.
우리는 물 2리터를 2시간동안 마셨는데 이 아저씨는 물 한 모금 안 먹고 맨발로 사막을 걸으며 설명한다. 대단한 아저씨.
사막에는 모래만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플레이트라고 식물이 자라는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 플레이트가 서서히 이동하기 때문에
old 와 new 가 있고 오래된 곳의 죽은 나무는 육백년간 썪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단다.
이 나무들은 육백년 전에 죽은 나무들이다.
맨발로 사막의 열기를 느낀다.
마른 땅.
여기는 현재가 아닌 듯한, 실재가 아닌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내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백년이 안 되는 시간을 넘어서 육백년 전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른 땅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시맨.
사막에 물은 없지만 물 대용은 있다. 물을 생각하지 말고 수분의 보충방법을 생각해라.
온도차로 생기는 물방울에 의해 식물이 자라고 그걸 먹는 곤충이 자라고 그걸 먹는 생물이 자라고, 부시맨은 그것을 먹었다고 한다.
먹을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뒤에 남겨두고 가야할때 노인을 먼저 남기고 그 다음에는 여자아이, 남자아이 순으로 남겨두었다. 남자는 사냥을 해서 부족을 먹여살릴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어서.
사람들은 버려진 사람들에 대해 절대로 얘기하지 않았고 애 엄마는 그 날 밤 일부러 연기가 오는 방향에 앉았다고 한다.
눈물이 나도 연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가 있어서.
이 이야기를 듣고 거의 울 뻔했다.
1920년대까지 부시맨은 백과사전의 동물 편에 있었으며 사냥하듯이 죽여도 되었다.
지금은 사막에서 사는 부시맨은 없고 다른 부족과 섞여서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
새끼가 딸린 어미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고 달을 숭배했으며 달에게 감사하기 위해 짐승을 잡으면 춤을 추었다.
이런 아름다운 얘기를 딱딱 떨어지는 악센트로 애기하는데 나 거의 이 가이드를 사랑할 뻔 했다.

긴 오전이었다. 오늘은 나와 하이드룬이 설겆이 담당이다.
-too many dishes, too many.
투덜대며 접시를 닦았다.
오후에는 다시 이동, 가는 길에 작은 계곡에 들렀다.

오전 중에 하도 멋진 것들을 봐서 이런 건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원해서 좋긴했다.
오늘의 숙소는 solitaire 라는 곳이다. 등록된 주민이 여섯 명이라나.
여기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을라나?
바깥 세상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한 쇼가 아닐까?
매점에서 한글로 된 싸인 발견. 어디서 난 걸까?
한국 떠난지 며칠 안 됐는데 하도 멀리 있다보니 우리나라와 관련된 건 무조건 반갑다.
이제는 조금 익숙한 일 텐트치기. 요른은 2분이면 친다는데.
이 스코티쉬 걸들은 한 20분 걸리는 것 같다.
나랑 하이드룬은 한 10분 걸리나?
오늘, 새벽부터 모래산 오르고 땡볕에 사막을 걷고 설겆이 당번까지 피곤한 날이다.
하지만 마음은 어느때보다 뿌듯하다. 붉은 사막의 일출, 내 발에 닿았던 모래의 감촉,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