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7. 21:11

D+16 070331 sat 사막에서 쿼드바이크를 타다.

간만에 침대에서 자니 좋군. 이동이 없으니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8시에 일어났다.
씨리얼으로 아침식사.
오후에 쿼드바이크만 신청했으므로 오전에는 자유시간이다.
사람들은 샌드보딩을 하거나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떠났다.
느지막히 나가 시내를 좀 돌아보았다.

이 도시는 사막에서 뭔가를 하러온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이다. 투어리스틱하다, 기념품 가게, 서양인 입맛에 맞춘 레스토랑들.
점심때가 되고 배가 고프다. 열흘 넘게 샌드위치와 서양음식만 먹다보니 매운 게 먹고 싶은 생각이 났다.
큰 마트가 있다. 지금까지 남부 아프리카는 '스파'와 '디아'로 양분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홈플러스와 이마트처럼.
푸드 코너에서 붉은 색을 골랐다. '칠리?'하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뭘까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짭잘하긴 한데...
으...이건 육회였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안 되겠다. 결국 내 점심은 저 마른 빵껍질뿐이었다.
스워콥문트는 바닷가에 있어서 그런지 안개가 자주 끼고 싸늘한 날씨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행히 오늘은 하늘이 개었다.
이건 대서양.
바다로 향한 긴 나무다리가 있고,
고기를 잡고 있는 소년이 있다.
시간이 되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문에 붙어있던 한글 배너, 나 잘할 수 있겠지?
어제는 하겠다는 말씀이 없으시더니 하이드룬 아줌마가 같이 가자고 한다. 오, 아줌마 대단하신데, 잘 하실 수 있을까나?
봉고차가 데리러 와서 출발.
30명쯤 같이 출발하는 것 같다. 가이드들이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달리면서 속도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뉘어지고 그룹마다 앞뒤에 가이드가 있단다.
대오를 이탈하지 말고 욕심내어 속도를 내지 말라 등등.
혹시 바이크를 고장내는 경우에는 엄청난 수리비가 있다는 공고가 붙어있다.
출발 준비.
모랫바람에 대비해 긴 옷을 입고,
누가 유용했다고 인터넷에 써놓은 것을 보고 거금 2만 5천원을 주고 구입한 버프를 두르고, 간다~!!!!
(실제로 아주 유용했음, 모래가 코, 입으로 사정없이 들어온다.)
어, 이거 생각보다 엄청 빠르다. 바이크는 내 생각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고, 모래언덕은 울퉁불퉁하다.
그래도 멋진걸, 사막의 모래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 멋진걸...좀더 직접 느끼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랄까?
난 중간 그룹쯤에 끼여서 달렸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더 재미있어진다.
하이드룬 아줌마도 내 뒤쯤에서 잘 달리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사막.
그래, 내가 또 10년 무사고의 베테랑 운전사 아니냔 말이다.
해는 바다로 점점 져간다.
이제 돌아가는 길이다. 오늘 일기에는 사막과 바다가 아주 멋졌다고 써야겠다...
언덕을 하나 넘어 내려가며 속력을 내는데 작은 관목들이 길 옆에 있다. 저기로 가면 안 되지, 길로 가야지.
그런데 갑자기 핸들의 콘트롤을 잃었다. 바이크가 나무를 향히 달려간다.
날.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얼굴이 모래에 닿아있다.
음, 어디가 아픈걸까? 내가 살아있는 걸까? 이거 시작한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여기서 벌써 여행을 끝내야 하는 걸까?
어디가 부러지면 여기 병원이 치료를 잘 해줄까?
순식간에 머리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가이드가 달려온다. 나를 붙들어 일으킨다.
팔 다리가 다 잘 움직이는 걸 느끼니 어디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괜찮은 걸까?
바이크는 나무에 쳐박혀있다. 가이드가 다시 시동을 걸어본다. 시동도 걸린다. 바이크도 무사한 것 같다.
-다시 타고 갈 수 있겠어?
-응,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제정신이 아니다. 다시 타보니 나도 바이크도 전처럼 잘 움직인다. 새처럼 날았는데, 아무 일이 없다.
가이드가 나만 특별히 개인 에스코트 해줘서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같이 갔던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 바이크에서 떨어졌어.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아무 일 없었어.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혹 바이크를 고장냈더라면 엄청난 돈을 물어주었어야 하고, 내가 다쳤으면, 오,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도 괜찮냐고 물어보고 간다. 떨어지는 것을 봤던 사람들인 것 같다. 진짜 쪽팔린다.
살아남기는 하였다. 죽다 살아온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다.
사고 경위서를 쓰란다. 앞으로 어디가 아파도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작은 동양여자로 남들보다 잘하지는 못해도 중간쯤은 가고 싶었는데 이게 뭐람.
한국에서 인터넷 서치할때도 다 재미있다는 얘기만 있었는데 난 왜 거기서 떨어진 걸까? 재미는 있었다, 물론.
좌절감이 든다. 운동신경이 좋다고 향상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잘못 알고 있었던 스스로를 파악해가고 있는 것 같다.

숙소에 돌아오니 무지 피곤하다. 여기저기 모래가 씹히고, 몸 어딘가도 아픈 것 같다.
니키가 trash bag party 를 한단다. 그게 뭐야? 귀찮다, 쉬고 싶은데.
같은 방의 스코티쉬 걸들이 까만 쓰레기 봉지를 잘라서 옷을 만들고 있다. 저게 또 뭐하는 거야?
내가 가만히 있으니 이렇게 안 입으면 저녁을 안 준단다. 으~
니키와 스코티쉬걸들이 비닐봉지로 조끼를 만들어주고 안대를 만들어 준다. 해적이란다.
아, 가끔 보면 서양애들하고 놀기 정말 힘들다.
결국 모두 차려입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갔던 세 명의 친구들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를 보고 있다.
스카이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 다시 오려나? 20만원인데 할 걸 그랬나?
아니다. 오늘 살아남을 걸로 족하다. 하느님이 두 번 힘써주시지는 않을 것 같다.
명랑한 라틴 걸들, 마누엘라와 마르티나. 삐쩍 마른 애들인데 힘도 세고 놀기도 잘 한다.
왼쪽의 마누엘라는 나보다 열 살 어린 것 같은데 웬지 나를 귀여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이크에서 떨어졌다고 하니 안쓰럽다는 얼굴로 안아주기까지 했다.
아프리카 부족 컨셉의 하이드룬 아줌마. 오늘 나보다 나았어요, 아줌마.
삐삐 머리를 하고 나타난 도미닉, 귀여워.
의공학 공부를 하러 케이프 타운에 왔단다. 아빠가 의사, 엄마가 간호사이고 영어를 잘 못해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눈동자 안 나온 무서운 사진.
자려고 누웠는데 밖은 아직 난리다. 술마시고 풀에 뛰어들고 등등. 서양애들 파티란 게 이런 건가보다. 재미 별로 없다.
조금 외로운 것 같기도 하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