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9. 14:22

D+207 071008 광산 투어, 포토시-우유니 이동.

일찍 일어난다고 7시 반에 일어나서 내려가니 벌써 식탁은 꽉 차 있고 아침을 먹는 건지 전투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복잡했다. 또 끼여서 빵 두 조각을 겨우 먹고 체크 아웃 했다.
배낭도 그냥 창고 같은 데 던져 놓고 우르르 나갔다. 한 20명쯤 같이 투어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버스는 언덕을 조금 올라가 어떤 집앞에 선다. 들어가니 광부복과 헬멧과 장화, 램프를 나눠준다.
내 평생 이런 옷을 입어볼 줄은 몰랐다. 작은 장화가 없어 다른 데서 가져다 주기까지 했다.
일하는 사람들 농담히고 사람들 사진찍고 분위기가 들뜨기 시작했다.
다시 차를 타고 우선 광부 시장에 들렀다.
앞에 보이는 산이 세로 리코.
실제 일을 하고 있는 광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광부들에게 줄 선물을 사야 한다.
광부들은 하루 8시간에서 15시간 그 이상 일하기도 하며 광산내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고 코카 잎을 씹고 소프트 드링크로 칼로리를 보충한단다. 그래서 사 갖고 가는 건, 콜라, 사이다, 코카 잎, 다이나마이트 등이다.
우리 가이드, 숨막히다는 얘기였나?
코카 잎은 필수.

세로 리코는 500년전에 발견되어 한때 포토시 거리가 은으로 덮였던 적도 있으나 지금은 순은은 별로 없고 납, 아연의 혼합물을 채굴한단다. 회사는 없고 10-15명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일한다. 13-14세부터 일하기 시작해 50세 정도 되면 폐가 망가져 얼마 못산다고.
가이드 Erfa, 전직 광부. 요즘도 투어리스트가 없으면 광산에서 일한다고. 아버지도 광부, 할아버지도 광부.
몸은 힘들지만 벌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이 곳 교사 월급이 2000B 정도인데 그것과 비슷한 수준.
이 지역은 높아서 농사도 잘 안 되고 가축을 키울 수 없어 다른 선택권이 없고 13세쯤 되면 아버지가 데리고 광산으로 가는 게 당연하단다.
우선 광물을 정제하는 공장을 둘러본다.
70%이상이 불순물로 물을 이용해 분리하고 있었다. 은까지 정제하는데는 돈이 많이 들어 그냥 원석 자체로 외국으로 수출한단다.
볼리비아는 세 번의 전쟁을 통해 땅을 많이 잃었고 해안 지역의 영토는 칠레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내륙국이 되었고  세금을 많이 내고 칠레를 통해 수출해야만 한다. 칠레에서 세금을 안 내도 되게 해 준다고 했으나 볼리비아는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단다.
유해 물질이 많이 나올 것 같다. 공기도 탁하고 안 좋았다.

그리고 광산에 갔다.
저기 산 아래가 모두 광산,
양철 지붕의 단조로운 집 풍경이 펼쳐져 있는 포토시 모습.
머리에는 안전모, 헤드랜턴, 허리띠에 코카 잎을 담은 비닐 봉지를 찔러넣고 사이다를 들고 들어간다.
광석을 운반하는 운반차 모습.
처음에는 넓은 갱도를 걸어들어갔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 천장이 낮아져 기어들어가야 한다. 엄청난 먼지가 목을 갑갑하게 하고 공기가 점점 더워진다. 캄캄하고 답답해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작은 박물관이 있다. 광부들이 위험을 피하기를 기원하며 모신 대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웬지 음침하다.
수백만명의 원주민들과 흑인 노예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했고 또 그만큼의 사람이 죽었단다.
노예 무역에 관여한 국가는 영국,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이다.
저 나라 사람들이 여기서 이걸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희미한 죄책감이나마 들까, 아니면 지나간 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을까? 결국 이 곳의 가난은 식민 시대부터 시작된 일련의 역사의 결과가 아닌가?

안으로 들어가 광부들을 만났다.
이 곳 광부들은 하루 종일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분전환이 되기에 투어리스트들이 오는 걸 좋아한단다.
정말 힘들 것 같다. 음악도 없고 같이 일하는 사람도 없이 10시간 넘게 일한다는 게 너무 고독해보이기도 했다.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으로 한 해에 30명 가량의 사람들이 목숨을 읽는단다.
가이드 에르파와 한장, 볼리비아는 진짜 가난한 나라고 부패는 일등.
아이를 많이 낳지만 교욱시킬 수가 없어서 계속 광부로 일할 수 밖에 없고 볼리비아인들은 이동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걸 운명으로 생각하고 산단다. 하지만 요즘엔 좀 바뀌고 있어서 자기도 오래전 결혼했는데 딸 하나 밖에 없다고. 아들 낳으면 광부를 시킬 거냐고 물어보니 그건 잘 모르겠단다.
나가는 길, 단 두 시간의 광산 체험이었지만 햇빛이, 바깥 공기가 이렇게 구원처럼 느껴질 수가 없다.
지금도 저 안에서는 광부들이 자신의 몸을 깎아먹는 힘든 노동을 하고 있다.
나는 그래도 양호한 편인데,
쟤네는 광산에서 구르다 왔나?
이 산은 500여년동안 포토시 사람들을 먹여 살려 왔다.
점점 사람들이 산의 목숨을 빼앗고 있지만 역시 산도 사람들이 목숨을 가져가고 있다.
광물이 완전히 고갈되기 전에 포토시 사람들이 새로운 생존 수단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먼지 묻은 얼굴과 손만 대충 씻고 배낭을 챙겨 터미널로 갔다.
6시 반 우유니 가는 버스, 30볼리비아노. 
시간이 남아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을 먹고 돌아와 기다리는데 내가 탈 버스 회사 사무실에는 모두 현지인 뿐이다.
옆에 짐 싣고 있는 버스에는 외국인 모습도 좀 보이던데.
그런데 저기 어떤 라틴계 남자애가 온다. 나랑 같은 버스를 탈 루이스, 원래 쿠바 출신, 지금은 미국 코네티컷에 사는 친구.
루이스는 칼리지에서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원래 여자친구랑 여행 왔는데 친구는 먼저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쿠바? 오, 대단한 걸, 쿠바 사람이 여행하는 건 처음 봐
-응, 그렇지. 쿠바 여권으로는 여행하기가 좀 힘들어, 거의 비자를 받아야 되거든.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오기는 힘들어. 아버지 형제가 오래전부터 미국에 살고 있어서 5년전에 올 수 있었어. 
 그런데 너랑 같이 앉아 갈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사람들과는 대화 나누기가 쉬운데 볼리비아 사람들과는 좀 어렵네.
그래 주면 내가 땡큐지. 그래서 같이 앉아서 우유니까지 가게 되었다.

결국 우리 버스에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었다.
밖은 어느 새 어두워졌는데 불을 다 꺼버리고 길가에 가로등 같은 건 물론 없어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다.
차는 비포장 길, 올라갔다 내려갔다 엄청 흔들린다. 이렇게 6시간을 가야 하다니, 이거 쉼지 않겠다..
광산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폐쇄공포증에 걸릴 지경, 울렁대고 가슴도 답답해진다.
창밖의 별빛을 보며 마음을 안정시키려 해 봐도 잘 안 된다.
겨우 어느 순간 잠들었는데 흔들려서 또 깨고, 비몽사몽, 점점 추워지고.

그렇게 6시간 달려 우유니에 도착, 밤 한 시.
내리려고 발밑에 두었던 가방과 신발을 찾는데 없다. 가방과 신발 한 짝은 바로 건너편 좌석 밑에 있다. 그런데 또 한짝은?
이 와중에 신발 잃어버리면 정말 큰일인데...루이스가 좌석 밑을 확인하더니 맨 앞 의자 밑에서 내 신발을 가져다 주었다. 얼마나 버스가 흔들렸으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다 웃는다. 찾아서 정말 다행.

이 밤중에 낯선 도시에 떨어졌으니 스페인말을 할 줄 아는 루이스를 졸졸 따라갈 수 밖에.
제일 가까운데 있는 호스텔 벨을 눌렀더니 다행히 문을 열어준다. 한 명 당 30B, 방 보여주는데 목욕탕이 딸려 있는 침대 두 개 있는 방이다. 어, 안되는데, 라고 말하기도 뭐해 얼떨결에 루이스와 같은 방에 묵게 되었다. 
광산 먼지를 씻어내고 따뜻한 침대에 누우니 그저 고마울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안 난다.
아직도 엉덩이에는 버스 진동이 느껴지는데...


*포토시 광산투어, 코알라투어 80B, 광부선물비용 따로. 훌륭한 가이드의 알찬 투어. 먼지가 많이 나니 마스크나 스카프를 준비할 것.  폐쇄공포증이 있거나 호흡기질환 있는 사람은 삼가.
*포토시-우유니 이동, 6시간 비포장길 이동 30B, 저녁 이동 힘드니 오전 버스 이동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