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4. 09:48

D+223 071024 산티아고에서 친구를 만나다.

아레끼파에서 만났던 앤디가 산티아고에서 머물고 있어 라파누이 가기 전에 메일을 보냈더니 오늘 아르마스 광장 남서쪽 모퉁이에서 만나자고 답장을 보내왔다. 친구랑 약속하고 만나러 가는 기분 참 오랜만이다.
지하철을 타고 모네다 궁전(Palacio de la Moneda)까지 갔다.
정부 기관이 모여 있는 곳.
칠레 국기가 휘날리고 경비하는 군인이 많이 보였다.
모네다 궁전.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최초로 선거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아옌데에 의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피노체트가 1973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모네다 궁전에서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고 아옌데 대통령은 스스로 권총을 쏴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1988년까지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수많은 반대파들이 살해되었고 실종되었다.
이후 피노체트는 실각했고 1998년 런던에서 독재 정권하에서 스페인 국민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후 재판에서 치매, 고령 등 이유로 제대로 죄를 묻지 못한 채 2006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참, 오래도 살았다.
지금 모네다 궁전을 보며 그런 아픈 역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르마스 광장. 다른 남미 국가의 광장과 비슷하지만 더 크고, 더 깨끗하다.
대성당. 칠레 카톨릭은 피노체트 군정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앤디랑 만나기로 한 남써쪽 모퉁이, 이상한 조각 작품이 있는 곳이라고 부연 설명을 해 줘서 찾기 쉬웠다.

좀 앉아 있는데 누가 옆에 와서 앉는다. 하이, 앤디, 아레끼파에서 콘돌 투어를 같이 하고 헤어진 지 한 달 만이다.
산티아고의 누나(여동생?)네서 지내고 있는데, 얼마전 강도를 당했다고. 강도?

혼자 축구를 보러갔다. 주변이 좀 위험한 지대고 축구장 분위기도 안 좋았다. 기차를 타고 올 수도 있었는데 남들이 다 걷고 기차도 위험하다고 들어서 걷기 시작.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고 혼자만 키 큰 그링고(Gringo,남미에서 백인 외국인을 일컫는말), 그런 조건들이 다 합해져서 갑자기 몇 명이 달려들어 카메라와 엠피 쓰리와 나이키 로고가 씌여 있는 모자를 채 갔다고. 쫓아 가서 발길질 한 번 심하게 해 주었는데 여러명이 몰려 들기에 도망쳤다. 도망 가서 뒤 돌아보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웃고 있었다고.
웃고 있었다, 결국은 그게 가장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앤디는 돈 많은 외국인으로 보였을 거고 주변 사람들은   강도를 당해도 싸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주에 영국으로 돌아간다는데 익숙한 세계로 돌아가는게 무척 안심이 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또 떠나고 싶어지겠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사람을 살고 싶은 순간이라고.
나도 그 심정 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 틈에서 일정한 틀에 따라 행동하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는 삶, 아무도 나날 빤히 쳐다보지 않는 곳이 나도 가끔은 그립다. 
그래도 앤디가 여행하며 좋았던 순간들을 잊지 않기를...
 중앙 시장(Mercado central)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크림 소스의 해산물, 나중에 가서 느끼해지긴 했지만 리치한 크림 소스가 맛있었다.
모자까지 도둑맞은 앤디. 음식값은 나눠서 냈다, 7000페소. 나 같으면 당연히 사줬겠구만 역시 서양인의 정서는 더취페이.
나중에 한국 오면 꼭 연락하라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땐 내가 밥 살께.

앤디와 헤어지고 추천해 준 박물관(Museo Chileno de Arte Precolombino)에 갔다.
박물관에 좀 질리기는 했지만 달리 할 일도 없고 학생 공짜다. 혹시 영어 가이드가 있냐고 했더니 직원이 자기가 안내해 주겠단다. 그것도 공짜.
페루나 볼리비아보다는 칠레가 잘 사는 나라이다 보니 이런 게 다르다. 페루, 볼리비아에서는 꼭 팁을 줘야 했던 것. 박물관 가이드의 월급은 박물관 입장료나 수입으로 줘야지 왜 관람객의 팁에 의존하게 하느냔 말이다.
전시물도 좋고 영어 안내도 잘 되어 있어 지금까지 다른 박물관에서 봤던 걸 정리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런 박물관도 없을 것 같다.

읽을 거리를 다 읽어버려 서점을 돌아보았으나 무척 비싸고 읽을만한 영어책도 없다. 세금이 17%나 붙어 책이 무척 비싸다고. 왜 국민들에게 읽을 기회를 박탈하는 건지...
론니에 나온 헌책방을 찾아갔으나 그 주소에는 옷가게가 있었다. 어디서 책을 구하나?
퇴근길의 지하철은 우리나라 처럼 무척 붐볐다. 산티아고는 여태껏 거쳐온 다른 남미의 도시와는 많이 다르고 웬지 우리의 서울이랑 비슷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