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2. 20:49

D+254 071124 또레스 델 파이네 안녕~ 나딸레스로 돌아오다.

오늘 일정은 나딸레스로 돌아가는 것 뿐이어서 늦게 일어나고 싶었는데 같은 방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서 8시 전에 깰 수 밖에 없었다.
모두 서둘러 배낭을 싸더니 급히 나간다. 그레이 빙하까지 가려하는 것일까?
어제 아빠랑 들어오니 의문의 눈빛을 보내길래 "Mi Padre" 말해주었더니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던 커플이었다.
호텔을 구할 때도 두 명이라고 말하면 더블 침대방을 보여 줘서 "Dos Camas, Mi Padre y mi"-침대 두 개요-하고 말해야 한다.
음, 마이 대디가 좀 젊어보이시긴 하지...
밤에는 꽤 추울텐데 캠핑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 여행중 가장 좋았던 도미토리 침대.
역시 과자로 아침을 먹고 일찍 나가도 할 일이 없으니 쉰다.
체크 아웃 시간이 되어 대디는 주변을 둘러본다고 나가시고 로비에 자리를 잡았다.
저기 누워 있으라는 얘기일까? 바로 창문 앞에 쿠션이 길게 놓여있다. 
분위기 좋았는데 청소 아줌마가 와서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 소리가 장난 아니다. 
할 수 없이 쫓겨 나왔다. 호스텔 입구에는 여기 묵지 않는 사람은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가 씌여 있었다.
레스토랑은 뭘 시키지 않는 이상 가서 앉아있을 분위기가 아니고 어디 가 있을 데가 없다.  
밖으로 나가보았다.
바람이 정말 세게 분다. 어제보다 훨씬 심하다.
벤치에 앉아 일기를 써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안되겠다.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캠핑장 부엌 건물에 가 봤는데 잠겨 있다. 이용 시간이 딱 정해져 있다.
다시 로비로 돌아왔다. 눈치가 좀 보이지만 나도 어제 여기 묵었단 말이다.
국립공원이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니 룰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는데 또레스는 좀 심한 것 같다.
물가도 무척 비싸고 지붕 밑에 앉아있기가 이렇게 힘드니 말이다.
부엌이 없어서 쫄쫄 굶은 일도 그렇고, 풍경은 정말 멋지지만 그 외는 맘에 안 드는 곳이다.

내가 산장에 남아있는 동안 대디가 가셨던 곳.
어제 저 골짜기 어딘가를 헤맸던 것.
어떻게 이런 호수 색깔이 있을 수 있을까?
파타고니아의 식물.
어디 높은 데까지 올라갔다 오셨나 보다. 산장이 내려다 보인다.
우유니에서 느꼈던 비현실적인 풍경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아침에 북적북적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12시 반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이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배가 세 편 있는데 어차피 버스가 1시 반에 오기에 12시 반 배를 타고 나간다.
배 시간이 다가오자 그 동안 어디 가 있었는지 사람들이 선착장으로 꾸역꾸역 모여 든다.
배는 12시 50분이 되어 왔다.
배 타고 들어올 때부터 카페테리아의 정체가 궁금했다. 커피를 파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마시기 위한 것일까?
그런데 아까 표 팔던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커피와 코코아, 차를 서비스하기 시작한다. 무료!!!
3일동안 밥도 못 먹고, 매일 7-8시간씩 걷고 추위에 떨던 모든 것이 이 커피 한 잔으로 다 보상되는 느낌이다.
들어때는 안 주고 나갈 때만 주는데 비싼 배삯(왕복 36000원)에 대한 불만을 이걸로 잠재우려는 것 같기도.
어쨌든 꿈에서라도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 또레스 델 파이네 안녕~!

배는 한 시 50분이 넘어 도착, 1시 반에 떠난다는 버스가 얌전히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기사 아저씨, 3일 동안 봤더니 무척 친근하다.
5시가 넘어서 뿌에르또 나딸레스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돌아가니 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주인 아줌마가 안 계신데 대디가 막 찾으신다
-왜요?
-얘기가 통할 지 모르겠지만 너 중매 좀 하라고.
허걱, 그럼 여기 남자를 만나서 이 먼 곳에서 살라는...? 음...꼭 그렇게까지...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국, 햇반, 참치 통조림, 삶은 계란, 오이로 저녁을 먹었다. 낼 아르헨티나 가서는 꼭 부페 식당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