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5. 09:51

D+304 080113 브루클린 뮤지엄, 뉴욕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하늘이 파랗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올라가보는 건 다음으로 미룬다.

런던에서도 주말에 지하철 공사 때문에 신경쓰였는데 뉴욕도 마찬가지. 안내판이 씌여 있긴 했는데 잘 이해가 안 되서 플랫폼에서 한참 기다렸다. 나 말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무리도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어쨌든 브루클린(Brooklyn)으로 가는 2.3번 라인을 탔다.
바로 지하철역 앞이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 of Art)이다.
한적한 주택가 같은 브루클린 거리, 미술관에도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입장료는 단돈 4달러, 10달러 전후인 다른 미술관 입장료보다 훨씬 싼 것.
별 기대 안 하고 갔는데 전시도 좋았다.
우선 미국 작가가 수채 기법으로 그린 풍경화 특별전.
윈슬로우 호머(Winslow Homer) <Fresh Air> 여자가 맞고 있는 바람도 신선한 공기일 것이고, 여자 자체도 그럴 것이다.
호퍼 <House at Riverdale> 그의 수채화는 자주 못 보았는데 유화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좋다.
Millard Owen Sheets <Hog Lot>  Hog-Pig, Lot-많은 양, 결국 돼지가 많은 풍경이라는 건데 돼지만 있기에는 좀 많이 아름답다.
John William Hill <West Nyack, New York> 백 여 년 전에는 뉴욕 주변에도 이런 풍경이 있었다.
윈슬로우 호머 <Homosassa River> 이건 꼭 아마존강 같은 걸.

5층의 American Identities라는 상설 전시도 좋았다. 19세기의 것들, 진짜 미국적인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20세기에 보여주는 미국의 오만이다.
유럽 컬렉션은 전시가 안 되고 있었고 이집트 관이 컸는데  대충 훑어보았다. 역시 진짜 이집트 유물은 남들이 다 가져가고 이집트에 남아있는 것은 별 게 아닌 것이다.
페미니스트 예술관이 따로 있었는데 Judy Chicago의 <The Dinner Party>가 인상깊었다.
어두운 공간에 삼각형의 테이블이 차려져 있다.
각자 자리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여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세라믹 작품이다.
조지아 오키프,
버지니아 울프.
뭘 의미하는 걸까,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고 있다는 것을 비꼰 것일까? 어쨌든 1970년대 작품이라데 놀랐고(그 시대에 벌써!) 엄청난 규모라는데 다시 한 번 놀랐다.  
Albert Herter <Korean Actor in a Theatrical Costume, circa 1924> 글쎄...우리나라라기보다는 중국 사람을 그린 것 같다.
마크 로스코 <Subway> 로스코도 벽면을 몇 가지 색으로 가득 채우는 색면 추상을 그리기 전에는 이런 그림을 그렸다.
Jane Dickson <Cops and Headlights V>
Frederick Childe Hassam <Late Afternoon, New York : Winter> 눈이 내리는 뉴욕의 겨울 풍경.
Dana Schuts <Google> 인터넷에 너무 빠지면 누구나 폐인 모드가 된다.
조지아 오키프 <Brooklyn Bridge> 며칠 전에 걸어서 건넜던 브루클린 다리, 오키프는 이렇게 그린다.
왜 작품은 안 찍고 제목만 찍었을까?
'가끔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들이 있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그들의 자리를 찾아 정착민이 된다'
 나도 안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끊임없이 떠도는 삶을 꿈꾸는 것일까, 낯설고 먼 곳에서 정착하길 바라는 것일까?
'Pied A Terre' 임시 숙소라는 뜻, 여행 내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등에 지고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끌고 다니지만.
가진 게 많은수록 덜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Fukami Sueharu <Shinsho(Infinity) II>
뿌듯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왔다.
영화 추격씬에서 많이 본 외벽의 비상계단이 신기하다. 
브루클린 사람들은 브루클린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이 강한 것 같다. 미술관 전시도 그렇고 서점에도 브루클린에 관한 책이 많았다.

브루클린을 좀 돌아볼까 하다가 우유니에서 만났던 루이스가 호스텔로 전화한다고 메일을 보냈기에 일찍 맨하탄으로 돌아왔다.
마이애미에 도착한 후 루이스에게 메일을 보냈고 시카고에서 답장을 받았다.
-지금 어디 있다고? 마이애미에 있다고? 나도 마이애미에 있어.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메일 확인을 못했어. 이걸 읽는대로 바로 전화해.
-난 이미 시카고에 와 있어. 나 마이애미에서 정말 외로웠는데 널 만났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이후 계속 이메일을 교환해서 내가 뉴욕에 있을 즈음 루이스도 학교에 돌아가 있을 거라 한 번 만나기로 했었던 것이다.

호스텔 리셉션에 혹시 나를 찾는 전화가 오면 바꿔달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큰 슈트 케이스를 가진 여자애가 있다. 나랑 같은 방에 묵을 거라는 고은 양, 큰 슈트케이스를 낑낑대며 같이 방으로 나를 수 밖에 없었다.
방에는 다른 방에 있던 새롬양이 옮겨와 있었다. 또 남자애들이 그 방으로 들어와 방을 바꾸었다고. 그래서 세 명의 한국 여자가 한 방에 묵게 되었다.
고은양은  교환 학생으로 뉴욕에 왔는데 JFK공항에서 호스텔까지 택시비로 190불이나 줬단다. 누가 합승하는 척 하며 그 돈을 군말없이 내는 걸 보여주고, 이미 낸 지폐를 바꿔치려 하기도 했다니 아주 제대로 사기에 걸렸던 것.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비싼 수업료를 낸 셈치라고 위로해 주었다. 뉴욕에도 사기꾼은 있다.

두 시간째 수다를 떨고 있는데 루이스에게 전화가 왔다. 기차 타고 New Haven으로 와서 택시 타고 오면 된단다. 이메일로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우유니에서 만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만났고 마이애미에서 스쳤던 루이스를 다시 만날 수 있겠다.
기분이 좋아져서 맥주를 사다가 감자칩을 안주 삼아 셋이 둘러 앉아 마셨다. 거의 엠티 분위기, 물론 얘네는 내 조카뻘쯤 되지만 말이다.